강종수*이동원 목사+목사님들설교

[스크랩] 감격의 신앙(딤전1장12-20) / 한경직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8. 9. 16:50

감격의 신앙(딤전112-20)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十五)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 여러분의 기도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그 동안 3주일 간 여행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가운데 평안히 본 교회로 돌아와서 다시 여러분과 같이 하나님께 예배하게 될 때에 더욱 감사를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저는 미국 남장로교회에서 선교 정책을 다시 연구하기 위해서 그 연구회를 개최하였는데 거기에 참여하고 돌아왔습니다. 남장로교회에서 우리 한국에 선교사를 보낸 지가 꼭 < >년입니다. 1892년에 개척 선교사 일곱 사람을 한국에 파견하였던 것입니다.

 

한국뿐만 아니고 세계 각처에 보내는데 이번에 세계 각처에 있던 선교사들과 또 그 지방 대표들과 또 미국의 유수한 교파에서 외국에 선교하는 대표들과 또 남장로교 안에 있는 신학교 교장들과 그 유력한 교수들을 합해서 약 140,50명쯤 아마 모인 것 같습니다.

 

몬트리트라고 하는 곳은 그 남장로교회에서 특별히 여름에 수양하기 위해서 건설한 아주 아름다운 휴양처올시다. 400명이 평안히 유할 수 있는 기숙자가 있고 모든 집회를 가지기에 매우 편리한 곳이었습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선교사 세 사람, 또 우리 한국 교회를 대표해서 네 사람이 참석하고 돌아왔습니다. 우리 종교 교육부 총무 되시는 안광국 목사, 또 순천에 계신 김형모 목사, 기독교장로회 대표로 조승제 목사, 이 사람, 이렇게 네 사람이 참석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안광국 목사님과 같이 워싱턴과 뉴욕과 피츠버어크와 로스엔젤리스 등 몇 곳을 다니면서 특별히 워싱턴과 로스엔젤리스에서는 주일을 지내면서 여러 교포들을 만날 수 있었고 또 영락교회 여러 교우들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 평안히 계시고 또 여러분에게 안부를 전해 주시기를 부탁하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잠깐 읽은 성경 말씀을 생각해서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12절부터 제가 몇 절을 다시 읽을 때에 여러분 자세히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주시는 말씀 가운데 몇 절입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 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 자요 포행(暴行) 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矜恤)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 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고 세상에 임하셨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자기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자기의 흉금을 털어놓으면서 감사하다고 하는 말씀을 합니다. 자기가 본래는 훼방 자요 핍박 자요 본래는 포행 자이었는데, 그 사실입니다. 사실 그는 교회를 핍박하고 여러 가지로 교회를 잔해 한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풍성해서 모든 죄인을 구원하여 주실 때에 죄인의 괴수가 되는 자기까지도 구원해 주신 것을 생각할 때에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 없다고, 그 뿐더러 자기와 같이 훼방 자이었고 핍박 자이었지마는 긍휼 하심을 더 베풀어서 귀한 직분까지 맡겨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 것을 생각할 때에 그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을 통해서 사도 바울의 심정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그 감격이 지극한 정을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감사와 감격의 정은 여기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사도 바울의 모든 서신에도 역시 나타납니다. 그리해서 고린도 전서 158-9절을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 여러 사도들에게 나타난 이야기를 적다가 절에는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맨 나중에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여기에도 이렇게 자기가 포악하고 훼방하고 핍박하던 이런 자인데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뿐더러 이렇게 귀한 직분을 맡겨 주셨으니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한가 하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을 우리가 살필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도 역시 이런 글귀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로마서 58절에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하는 말은 사도 바울이 자기 자신을 깊이 생각한 것을 나타내 줍니다.내가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

510절에 보면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하는 말을 썼습니다.

 

이 글귀를 쓸 때에도 역시 자기 자신을 많이 생각한 줄 압니다. 내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는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화목의 길을 열어 주셨으니 이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가 하는 의미입니다.

 

일생을 주님께 몸 바쳐서 천신만고를 겪으면서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를 봉사한 사도 바울의 깊은 심령 속에는 이 감격의 신앙이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깊은 감격의 심정이 있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감격의 신앙은 그로 하여금 복음 전파 자로 만들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파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함이로다.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

심지어 이런 말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큰 은혜를 받고서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깊은 감격의 신앙은 그로 하여금 교회를 봉사하며 만인을 봉사하는 봉사자를 만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강권하였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로 함께 우는 자를 만들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과부들을 극력(極力) 구제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하게끔 만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깊은 속의 그 감격의 신앙은 그로 하여금 큰 수난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산의 위험함과 물의 위험함과 길의 위험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가는 곳마다 유대 사람의 핍박을 받고 이방 사람의 비난을 받으며 혹은 매를 맞고 혹은 감옥에 갇히며 갖은 고난을 당하는 수난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깊은 감격의 신앙은 이런 가운데서도 항상 그로 하여금 승리의 생활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이기고도 남음이 있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항상 즐거워하였습니다.

항상 찬송을 불렀습니다.

범사에 감사하였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외친 것입니다.

이러한 깊은 감격의 신앙은 그가 마지막으로 로마 들 밖에서 붉은 피를 뿌려 최후로 자기 신앙을 순교로써 간증한 것입니다.

 

그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깊은 감격의 신앙입니다.

우리 다 같이 기억하십시다.

참 신앙 생활이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이 감격의 신앙 가운데서 만 분의 일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려는 노력에 불과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신앙도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베드로 전서 118절에 보면 이런 말을 기록하였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흠 없고 점 없는 그리스도의 피로 너희들이 구속을 받았으니 너희들이 어떻게 살아야 마땅하겠느냐 하는 그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무한한 감격의 심정을 우리가 이 말씀 가운데서 살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역시 사도 요한의 신앙입니다.

 

그는 요한 일서 316절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그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주금 내려가서 419절에는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 사랑의 감격, 그리스도의 은혜의 감격이 사도 요한으로 하여금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도를 만든 것입니다.

 

이 감격의 신앙을 우리가 생각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이와 같은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사도들의 신앙만이 아닙니다. 모든 교우들과 모든 선지자들과 모든 참된 성도들의 공통한 신앙의 특색이었습니다.

 

어거스틴도 일단 회개한 다음에는 그 일생을 통해서 이 감격이 마음 가운데 있었습니다. 내가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인데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용서하시고 이렇게 구원하여 주셨으니 내가 무엇으로 이 은혜를 보답할까 하는 마음입니다.

 

17세기에 피난민의 적은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우리 신교도 가운데 세계적 선교 운동을 일으킨 진젠도르프의 신앙의 특색이 또한 이것이었습니다.

그의 마음 가운데는 언제든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그 사랑의 감격이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격의 신앙이 그로 하여금 그와 같은 봉사와 사업을 하게 만든 것입니다.

 

지금 독립된 인도네시아라고 하는 나라가 있지마는, 그 인도네시아란 나라에 가면 바탁 교회(Batak Church)라고 (그 이름이 좀 별 하지마는) 아주 인도네시아 사람으로 조직된, 어느 다른 선교 부의 도움을 별러 안 받는 독립된 큰 교파가 하나 있습니다. 아마 세례 교인 수 약 50만 되는 큰 교파입니다.

 

그런데 이 교파는 유럽에서 온 어떤 청년 한 사람이 처음에 복음을 전파해서 세웠다고 합니다.

유럽 북부에 있는 어떤 청년이 소년 시절에 중한 다리의 병을 만나서 그 때 의사들 생각에 이 아이의 생명을 구하려고 하면 이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겠다고 하는 그런 결론을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해서 자기 부모도 깊이 생각하고 이 아이도 깊이 생각하고 결국 이 두 다리를 자를 것이냐, 어떻게 할 것이냐 하고 많이 생각하는 가운데 이 아이가 한 번 하는 말이, 어머니,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고칠 수 없는 병도 다 고쳐 주셨는데 내 다리도 예수님의 능력이면 고칠 수 있지 않겠어요? , 이것 어떻게 고칠 수 없고 내 다리를 자를 수밖에 없습니까?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는 그저 예수님께 다리를 자르지 않고 이 다리를 꼭 맡기고 나는 예수님께 기도를 하겠습니다.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와 그 아이가 함께 간절히 그 다리가 낫기를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다리가 나았습니다.

그리하여내가 어떻게 하면 이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아직까지도 복음을 알지 못하는 나라, 복음을 듣지 못한 나라, 다른 사람이 가보지 못한 지방, 이런 곳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겠다.

 

이렇게 작정을 하고 오래 전에 인도네시아에 혈혈단신으로 나와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해서 그런 큰 교회가 섰다고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건강에 감격한 심정 가운데서 일생을 하나님께 바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바친 신령한 제자를 축복하여 주신 것입니다.

 

왜 우리가 다 같이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부모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때가 많으며 우리가 다 같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감격이 부족할 때가 많습니까?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줄 알지마는, 그저 보통 쉽게 말하면 그저 사람이니까 다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으로 우리가 은혜를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은혜를 종종 깨닫는다고 할지라도 곧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면서만족의 근원 하나님이라는 찬송을 부르지마는 우리가 그 은혜를 깨닫고 부를 때가 많지 못합니다.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하면서 이 십자가라고 하는 말을 입으로 부르면서 노래하지마는 사실 십자가를 통해서 오는 은혜가 너무 클 때에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대체로 은혜가 너무 클 때에 그 은혜를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아마 갑자기 우리 한국 같은 데서 해가 한 열흘이나 보름 뜨지 않다가 처음으로 해가 뜬다고 할 것이면 아마 대단히 감사하다고 할 것입니다.

 

사실 북극 지대에 가면 그런 지방이 있습니다.

어떤 데는 몇 달 후에 해가 한번 뜹니다.

그런 지방에서는 해가 한 번 뜨게 되면 크게 축하를 하고 감사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같은 데는 뭐 그저 매일 해가 뜨니까 별로 그걸 가지고 감사한 생각이 나지 아니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그 은혜 가운데 살게 되어서 물고기가 물의 은혜를 모르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어려운 때가 많습니다. 공기도 너무 많으니까 공기 귀한 줄 모릅니다.

 

물도 너무 많으니까 물 귀한 줄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이 우주, 하나님의 주신 하늘 나라, 하나님의 주신 땅, 하나님의 주신 건강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으로 살지마는 그 은혜를 잊어버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어떤 때 잠깐 깨닫기는 깨닫지마는 곧 잊어버립니다.
그러기에 우리 한국에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에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에 새겨서 그 며칠을 가겠습니까?

열 번 주다가도 한 번 안주면 열 번 준 것은 잊어버리고 한 번 안준 것은 기억한다.그것이 우리 타락한 인간의 성품이올시다.

 

토리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에 그 미시간 호라는 호수에 한 번은 큰배가 파선을 당해서 많은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그 가운데 헤엄 잘 치는 사람이 하나 있어서 혼자서 열 일곱 사람을 건져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굉장히 보도가 되고 여러 사람이 그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로스앤젤리스에서 토리 박사라고(여기 한국에 나왔던 그이의 바로 아버지가 되겠습니다)그 때는 그가 지금 유명한 빌리 그래함과 같이 유명한 목사이었는데, 그이가 로스엔젤리스에서 한 번은 설교를 하면서 그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참 이렇게 용감한 것을 우리가 배워야 된다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도 힘을 써야 된다고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 설교를 하고 나니 그 설교를 듣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뜻으로 손을 드느냐고 하니까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하였습니다.
열 일곱 사람이나 구원한 그 사람이 바로 그 자리에 와서 토리 박사의 설교를 들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토리 박사가 너무 감사해서 강단으로 좀 올라오라고 해서 울려다 세워놓고 이 분을 소개하면서 아주 참 용감한 일을 했다고 칭찬을 하고 마지막에 묻기를 이와 같이 좋은 일을 했는데 그 일을 한 후에 특별히 혹 무슨 느낀 바가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조금 생각하더니 뭐 별로 특별히 느낀 바는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내가 그 때 열 일곱 사람을 구해 주기는 주었는데 그 사람 가운데 한 사람도 나한데 와서 고맙다고 말한 사람은 없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보통 인간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이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고, 우리가 어떤 때에 은혜를 깨듣는다고 할지라도 이 은혜를 항상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여러분, 은혜를 깨닫고 기억할 수 있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 우리가 기도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전에 어떤 성자는 이렇게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 주님이시여, 모든 은혜를 내게 풍성히 주셨으니 이제 한 가지 은혜를 더 주셔서 감격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이 은혜까지 우리가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늘을 볼 때에도 감격한 마음으로 볼 줄 알고, 들을 바라볼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한 마음으로 곡식으로 덮인 들을 바라볼 줄 알고, 가을에 단풍을 바라볼 때에도 감격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길을 가다가 예배당을 볼 때에도 감격한 마음으로 그 예배당을 바라보고, 높이 솟은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으로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특별히 독립된 울이 한국의 태극기를 바라볼 때마다 감격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내 사랑하는 부모, 내 사랑하는 처자, 내 사랑하는 친구들, 모든 다른 동포들을 바라볼 때에도 감격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 감격의 신앙,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모든 것을 바라볼 때에 감격에 넘치는 심정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와 같은 은혜를 우리가 더 받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이 앞으로 한 주간 감사 주일을 지내는 동안에 우리 하나 하나가 한 가지 은혜를 더 받아서 이 감격의 믿음을 받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감격의 신앙이 있는 이에게는 불평이 없습니다.

 

이런 이는 아무리 수고를 하고도 대우를 생각지 아니합니다.
이런 이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원한을 품지 아니합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이는 남의 죄를 용서합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이는 범사에 감사합니다.

감격의 은혜를 우리가 받아야 되겠습니다.

한경직 목사(서울 영락교회)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메모 : 한경직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