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풍요 속의 굶주림[하늘에속한사람=중국윈형제,고통은선물이다]/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6. 21:23

051120 풍요 속의 굶주림 ( 8:11-13)

성경본문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는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화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 때에 밭 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영국의 수학자이며 과학자이고 철학자인 버트란트 러셀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의 유명한 강연이 있습니다. ‘왜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Why I'm not a christian?) 1927년 영국의 비종교인 협회에서 했던 유명한 강연이죠. 그는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을 비판하며 기독교인이란 무엇이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인생을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기독교인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정의이다. 기독교인이란 최소한 하나님과 영생을 반드시 믿어야 하고 두 번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어떤 믿음이 있어야 기독교인이 아니겠는가? 정확하게 정의하고 있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는 그런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나는 왜 하나님과 영생을 믿지 않는가? 왜 예수가 대단히 수준 높은 도덕적 인물이지만 지구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하는 자기의 논리를 증명합니다.

전통적으로 교회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들었던 여러 가지 철학적인 명제들을 하나하나 드러내어서 논리적으로 반박합니다. 제일원인론 모든 만물에는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을 계속해서 추구해 올라가면 맨 마지막으로 궁극적인 실체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제 일 원인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신이 아니냐 라고 설명해 온 것에 대해서 제 일 원인이 하나님이라고 말하지만 그 물음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느냐 라고 하는 우리의 물음은 그칠 수 없다는 것과 또 모든 만물이 반드시 원인이 있다 라고 얘기할 이유가 뭐 있냐?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 라고 하면 틀린 것이냐? 자기의 논리가 있어요.

또 모든 만물에 자연법칙이 있고 그 법칙을 하나님이 만드셨다. 자연 안에 어떤 질서를 드러내는 법칙이 있지만, 반드시 그 법칙을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이 명령하셨다 라고 말할 것은 또 뭐냐? 하나님이 그 법칙을 만드셨다면, 왜 그 법칙만 만들었는가? 어떤 이유가 있어서 만들었다면, 하나님이 그 이유에 매이는 존재가 되므로 절대적 자유자라고 하는 하나님의 존재는 또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인간을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드셨다 라고 하는 그 목적론에 대해서도 다윈의 진화론에 의하면 모든 생물은 그 환경에 맞게 변화되고 진화되는 것이 아니냐? 꼭 목적이 있어야만 할 것이냐?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볼 필요가 어디에 있느냐? 세상에 이렇게 악이 창궐한대 이것을 심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존재해야 한다 라고 하는 정의론에 대해서도 꼭 그렇게 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에 대해서도 그 말씀들을 조목조목 비판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을 말하신 것에 대해서도 그것은 인간 예수가 잘못 판단한 것이다. 그것은 빗나간 예측이었다. 또 지옥을 말하고 심판을 얘기한 것에 대해서 사랑을 얘기하는 예수가 지옥을 얘기하고 심판을 얘기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나 잔인한 교훈이다. 오른뺨을 치는 자에게 왼뺨도 들이대라는 것에 대해서도 그러한 정신은 이미 예수 이전 600년 전에 춘추전국시대에 노자라든지 묵자라든지 인도의 석가에게서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는 사상이다. 결국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종교란 인간의 자기불안 때문에 만들어 낸 것이다. 신이란 자유의지에는 전혀 불필요한 것이요, 고대 동양의 군주제 사회로부터 흘러 들어온 것이다. 자 이제 우리는 발전하는 과학과 인간의 지성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세상을 정복하자. 이게 왜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닌가라고 하는 강연의 요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인간의 신체에 대해 연구한 것이 의학이라면 그 의학 서적이 얼마나 방대합니까? 인간의 다양한 몸의 구조와 변화를 압축해서 설명해 놓은 것이 의학입니다마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다시피 그러면 그 책대로 쓰여 지고 만들어진 그 모든 것을 묶으면 그것이 인간이냐? 그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그것을 다 조합하여 만들어 내면 그것이 온전한 인간이냐? 그것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 21절에 말씀하신 대로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를 만나주실 수밖에 없었다라고 하는 그 말씀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간밤에 불구경을 했어요. 모두가 다 불구경을 했어요. 그러면 집에 가서 얘기를 합니다. 몇 시에 어디에서 어떻게 불이 났는데 사람이 몇 명이 다치고 또 불 난 여러 가지 장면들을 설명합니다. 함께 보았습니다마는 표현이 모두 달라요. 분명히 그 사실이 있었습니다마는 표현이 다른 것 같이 인간의 정교한 논리 끝에 결론으로 인간은 하나님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 사건에는 반드시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그 사건이 있고 나서야 내가 만난 하나님을 이야기하려고 인간의 부족한 철학과 논리를 가지고 나름대로 설명한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만났을 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장성하고 다 큰 인간이 어떻게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네가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율법에 정통한 자로서 어찌 아직 이것도 알지 못하느냐? 성령으로 난 사람은 이러하다. 마치 바람이 불되 사람이 그 바람을 느끼지만 그 바람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 하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 또한 그러하다.

인간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 구원, 지배, 능력이 한 생명을 하나님이 부르시는 이 사건 속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것을 해석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내가 만난 하나님을 보다 더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어요. 그 논리가 하나님을 전부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그러기에 신앙고백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내가 만난 하나님의 그 뜨거운 고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번 휴가를 갔을 때 치과의사인 사촌 동생 집에 하루 머물렀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서가에서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책을 뽑아들었더니 그 친구가 이렇게 말해요. “그 책을 지금 뽑아들면 오늘밤 잠을 못 잘텐대요.” 그러니 제가 그것을 어떻게 그냥 내버려둘 수가 있겠습니까? 뽑아서 한 장 읽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 날 당장 그 책을 샀습니다. 그것은 중국이 공산주의 정권아래서 기독교를 말살한 이후에 하나님께서 중국의 가정교회를 어떻게 일으키셨는지 하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한 사람의 고백을 통해서 증언한 것입니다.

거기에 주인공 윈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윈형제로 불리는 사람으로 1958년생인데 1974년 열 여섯 살에 아버지가 암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 가난한 가정에서 아버지가 병들어 눕게 되고 이제 곧 죽게 되니 그 엄마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제 남편이 죽고 다섯 남매를 끌고 이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려니 좌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살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주님께서 그 엄마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 엄마는 1949년 중국이 공산화가 되기 전에 선교사들을 통해서 10대에 교회 나가고 예수를 믿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1949년 공산화 이후에 모든 교회가 폐쇄되고 모든 성경은 불살라지고 모든 선교사가 추방당하고 중국의 목사나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하고 핍박당하고 모든 것이 다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신앙을 잃어버렸는데 그 날 밤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그 음성을 듣고 벌떡 일어나서 그 자녀들을 깨웁니다. 그리고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이야기합니다. 이제 우리의 희망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며 누워있는 남편에게 가서 밤을 새워 온 가족이 기도합니다. 간단합니다. ‘하나님 남편을 살려주세요.’ ‘하나님 우리 아빠를 살려주세요.’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셨어요. 놀랍게도 어떤 의학으로도 고침 받을 수 없었던 그 아버지가 차츰 회복되고 결국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날 밤에 그 사건으로 그 가족들이 모두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여기 윈이라고 하는 사람도 열여섯 살에 그 사건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사람은 너무 가난하고 아버지가 병들어 누워서 학교라고는 단 3년밖에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공부라고는 해보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가 은혜를 입고 그 아들이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이제 그 집이 교회가 되는 겁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친척들을 몰래 초청합니다. 문을 닫아걸고 내가 만난 하나님, 우리가 만난 예수님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주님을 영접합니다.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중국 공산정부의 극심한 박해로 약 30여회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장기적으로 3번이나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런 고통 속에서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이런 일화가 있어요. 열여섯 살에 예수님을 처음 만나서 어머니에게 묻습니다. “어머니, 성경이라는 것이 있다는데 성경이 어디 가야 있습니까? “글쎄, 나도 모르겠다. 한 번 기도해 보자.” 기도하는 가운데 어머니가 생각을 해 냅니다. 예전에 목사님이었던 분이 저 멀리 마을에 산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아들과 함께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에게 성경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도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네가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다. 그러니 기도하라고 어머니가 말합니다. 윈이라고 하는 소년이 하나님께 성경을 구합니다. 100일 동안을 하루에 저녁 한 끼만을 먹으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게 꼭 성경을 주십시오.’ 나중에는 ‘하나님 성경 안주셔도 좋습니다. 그냥 보기만이라도 하게 해주십시오. 100일 만에 하나님이 응답하셨어요. 어떤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어 밤에 몰래 성경을 가져다 놓게 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귀하게 성경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성경을 읽다 못해 다 외웠습니다. 마태복음을 다 암송합니다. 사도행전도 다 암송합니다. 이렇게 다 암송하여 마음이 뜨거워지니까 그 때부터 하나님이 그를 들어 말씀이 필요한 곳에 그를 보냅니다. 그는 사람들을 모아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외운 성경을 그냥 암송하는 데 거기에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오늘날 중국의 공산정부가 관리하는 삼자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지하교회들이 있습니다. 탄압을 받는 지하교회 가정교회가 있습니다. 지금 중국 그리스도인들은 1 2천만을 헤아립니다. 놀라운 부흥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이 사람은 감옥에 세 번째 들어갔을 때 기적적으로 탈출을 해서 독일의 도움을 받아 지금 잠자고 있는 서양교회들을 일깨우면서 중국교회와 연합해서 이제 예루살렘까지 이르는 마지막 실크로드를 따라서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전할까 하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만날 때 그들이 묻습니다. 당신은 어떤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습니까? 그러면 그는 “네, 저는 개인 헌신 성령 성경학교에서 공부를 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농담이기도 하지만 진지하게. 그것은 무슨 말이에요? 감옥에서. 감옥에서 주님을 만나고 깊은 주님의 뜻을 발견했어요. 그런 뜻이지요. 어떤 교재를 가지고 공부를 했습니까? “네, 저는 사슬과 족쇄와 가죽채찍으로 했습니다. 고통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를 듣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정말 끔찍한 세월을 보냈군요.” 그러나 그는 정색을 하며 “아니요, 비록 채찍과 족쇄와 아픔이 있었지만 그럴수록 더욱 더 하나님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셔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지켜주셨습니다.

참으로 끔찍한 고통은 뭐냐?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알지 못하는 그 삶이야말로 진정한 고통이요, 그 삶이야말로 고난의 삶이다. 여러분, 오늘 성경이 말합니다. 보라 이 땅에 기근이 있도다. 양식이 없어서 굶주리는 것이 아니요, 물이 없어서 목마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굶주림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마시지 못한 목마름이라.

여러분, 말씀이 내 손에 있고 내 입술에 있는데 어찌 굶주림이 있고 어찌 목마름이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이런 기회가 우리 앞에 열려있다고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감사한 것이지요. 올 한 해 공부하고 그래서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또 사업에서 돈을 벌고 또 병에서 다시 건강을 회복할 때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나를 붙드시고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의 무지함과 우리의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내버리려고 작정하셨다면 우리는 벌써 다 쓰레기통 속에 들어가야 할 인생들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끝내 우리를 외면하시지 않으시고 붙드시고 지켜주셨던 것이지요.

제가 며칠 전에 책상에서 갑자기 일어나다가 무릎을 심하게 부딪쳤어요. 어찌나 정신이 번쩍 나고 눈물이 핑 도는지. 그 때 순간 <고통은 선물이다.>라는 책을 감동 깊게 읽은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했습니다. 이렇게 아프니까 정신을 바짝 차려서 다음부터는 조심스럽게 일어나는 것이지요. 고통을 주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완전히 망하지 않도록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의 제어장치예요. 오늘 한 해 고통이 있었습니까?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그 고통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은 아주 명쾌하게 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추수 감사주일에 하나님 앞에 예물도 드리지만 다시 한 번 우리의 다짐과 현실을 돌이켜 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개구리 세 마리가 큰 나뭇잎 위에 앉아서 큰 강물을 내려가고 있어요. 그런데 햇볕이 너무 뜨거워요. 그 중 개구리 한 마리가 말합니다. “너무 뜨거워 못 견디겠네. 당장 물 속에 뛰어들고 말거야.” 여러분, 이제 나뭇잎에 개구리 몇 마리 남았습니까? 두 마리가 남았습니까? 아니요, 세 마리가 그냥 그대로 있습니다. 뛰어내리고 말 거야 라고 했지만 아직 뛰어내리지 않았습니다. 다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천할 때, 그때부터 달라지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모든 것이 풍성하고 넉넉한 우리의 삶인 듯하지만 그러나 정작 우리 안에 목마름이 있고 굶주림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이 주어지고 하나님의 놀라운 십자가 구원의 은혜와 사랑이 있건만 때때로 우리는 홍수 속에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한 자 같이 말씀을 듣는 듯 하나 우리의 귀는 닫혀있고 우리의 마음은 상하여 있고 우리는 보다 더 편안한 것을 찾고 나아가지만 우리의 영은 메말라지고 갈급해짐을 주님 앞에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의 불신앙을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한없는 은혜로 우리를 일깨우시고 붙드시고 우리와 함께 가기를 원하셔서 기다려 주시는 주님, 그 은혜를 감사 드립니다. 주님 앞에 마음을 활짝 열고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이 되게 해 주시고 이것이 주님 앞에 드리는 감사의 예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