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와 보라[이건희시대,오늘날의 리더십=관점의변화+영향력행사]/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6. 21:34

051225와 보라 (1:35-42)

성경본문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시쯤 되었더라.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강준만 교수라고 하는 주목 받는 비평가가 있습니다. 그는 <이건희 시대>라고 하는 책에서 우리의 시대를 구분 할 때,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렇게 구분 지어서 말하지만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그건 다 이건희 시대다. 1987년 이병철 회장이 별세하면서 그 뒤를 이어 46세 나이로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건희는 제 2차 창업을 주장하며 한국의 일등에 안주 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되자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 움직여주지 않죠? 그래서 1993년에 다시 한 번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내놓으며 신 경영을 주장했는데, 그때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는 다 바꿔라.

IMF가 터졌을 때, 다른 기업은 다 무너지고 흔들렸습니다마는 오히려 삼성은 우뚝 섰습니다. 2002년 뉴욕의 월스트리트 증시에서 삼성전자의 시가 총액이 65조로 나왔는데 처음으로 63조의 sony를 제쳤습니다. 일본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고 한국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환호였습니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니까 일본 가전업계에서 왜 우리에겐 이건희 같은 인물이 없는가? 우리 회사 사장들은 부지런히 뛰어다니기는 해도 10 20년 내다보면서 깊이 생각하고 궁리하는 사람은 왜 없는가? 라고 탄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삼성이 독주하게 되고 이건희 시대라고 일컬어지게 되는 이 숨은 비밀은 무엇이냐? 그는 기업을 아버지로부터 넘겨받기 이전부터 이미 제너럴 일렉트릭 그리고 그 회장이었던 잭 웰치를 주목하면서 그를 분석하고 연구하게 하고 그 강점을 벤치마킹 하게 했던 것이죠. 그래서 GE가 주장하는 넘버원 경영, 스피드 경영, 씩스 씨그마 경영을 그대로 도입해서 일등경영, 속도경영, 질 경영이라는 표현으로 바꾸어서 적용했던 거죠.

배우지 않고 저절로 되는 법은 절대로 없죠. 누구에게 배웠느냐? 최고에게 배워야 한다. 그래야 그것을 넘어 설 수 있는 것이죠. 93년에 애니콜이 한국시장을 장악했습니다마는 애니콜의 품질 문제에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공장에서 만들고 있는 제품은 말할 것도 없고 시장에 나가 있는 모든 제품을 수거해가지고 15만대의 휴대전화를 공장 마당에 쌓아놓고 다 망치로 깨부수고 다 불 질러 버렸습니다. 그 가격이 500억 원이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삼성의 휴대폰은 조만간 세계의 1위를 충분히 탈환할 수 있다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죠.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도전을 주는 내용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란 무엇이냐? 예수님을 힘써 배우고 따르는 사람이다. 예수님을 힘써 배우고 따르는 것은 돈을 많이 벌고 기업을 운영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총체적인 인생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가, 나 자신을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답을 얻기 위한 것이죠. 왜 그럴까요. 우린 언젠간 죽을 몸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을 것이냐? 한 해가 시작된 지 며칠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제 며칠 안 있으면 이 해도 막을 내리게 됩니다. 흐르는 세월을 막을 길은 없습니다. 누구나 다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언젠가는 다 죽을 인생이기에 미리 그 죽음을 준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내 죽음의 준비가 확실해지면 오히려 죽음의 빛 가운데 오늘의 내 삶은 새롭게 살아 움직이게 되는 것이죠.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 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 물음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오늘 여기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초청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어요. 여기 안드레라는 사람 이야기가 나와요. 원래는 세례요한의 제자였어요. 그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세례요한이 말했어요. 저분은 세상 죄를 지러 오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 이제까지 듣지 못했던 새로운 말씀에 그 말씀을 마음에 품고 예수님을 좇게 된 거예요.

여러분, 시작은 이런 거예요. 교회에 나왔습니다만 어떤 분은 여자 꽁무니를 좇아 나오고, 친구에게 끌려 나오고, 여러 가지 자기 동기를 가지고 나와요. 그러면서 조금씩 들어 봅니다. 뭐 들어서 나쁜 말씀이 있느냐. 다 좋은 말씀이지 이럽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라는 저 밖에서 듣지 못한 새로운 말씀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예수님을 눈을 씻고 바라보게 됩니다. 안드레가 예수님께 직접 묻습니다. 주님 어디 계십니까. 주님이 말합니다. ‘와 보라’ 교회에 한 발 내디딘 사람이라면 이제 마음을 활짝 열고 예수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교회에 여러 사람이 있고 많은 일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많은 행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것을 발판으로 예수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르심을 들어야 합니다. “와 보라.” 라고 하는 예수님의 초청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가서 그와 함께 있으며 그를 보며 그와 머물렀다. 그리고는 자기 형에게 좇아가서 형을 찾아내서 말합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났다.’

내가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답이 되신 그 분을 만났다. 이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뭘 얼마나 많이 하느냐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이 고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생명의 주인을 만났다.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나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시는 그 분을 만났다. 그리고는 자기 형을 데리고 예수께로 나온 것입니다 . 그때 예수님이 시몬을 보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게바라 하리라. 너는 장차 베드로라 하리라. 이게 다 같은 말이에요. 반석이란 말이에요. 너는 지금 한낱 고기를 낚는 보잘 것 없는 어부지만, 그러나 너는 이제 세상을 뒤흔드는 반석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안수집사, 권사, 집사, 장로, 목사 모두 다 교회의 일꾼입니다. 또한 리더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믿음과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일꾼으로 세워라. 여러분들이 다 기도하고 투표하고 표를 주어서 세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를 비롯해 우리 모두가 다 나름대로는 주님의 부르심이 있고 각자 열심이 있겠습니다마는 주목해야 될 문제가 있습니다. 믿음의 문제입니다.

일본 교회는 우리나라 교회보다 훨씬 먼저 시작했어요. 그런데 일본 인구의 1% 도 안돼요. 그래서 일본의 목회자들이 그게 너무 의아한 거예요. 사실 솔직히 제가 한국 사람이지만 반듯하게 사는 모습으로는 일본사람들이 좀 나은 거예요. 그래서 일본교회 목사님들이 세미나를 할 때 곽선희 목사님께 물어 봤어요. 우리 일본교회는 한국교회보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를 먼저 받아들였는데 왜 한국교회는 부흥했는데 일본교회는 부흥되지 않을까요. 그때 목사님이 말씀하셨어요. 일본교회는 처음부터 예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아주 극단적이 표현이기도 하고 과장법이기도 하지요. 왜 예수가 없었겠어요? 그러나 역설적으로 말하면 처음부터 예수가 없었습니다. 깜짝 놀랐지요. , 이게 무슨 얘기 입니까? 예수가 없다니! 일본교회 리더들은 예수님을 믿을 때 그만 자기가 작은 예수가 되어버렸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 그 열심과 그 모습 때문에 우리에게 은혜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오히려 가려버렸습니다. 사람이 충성하고 헌신하고 봉사할 수는 있어요. 더 나아가서 어떤 사람은 신앙을 위해서 금식하고 고행하고 자기 재물을 다 팔아서 거지같이 가난한 사람들과 들어가서 살고 그러할 수 있어요. 그런 사람도 필요하지요. 그러나 엄밀히 말한다면 그러한 인간의 열심과 공로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으로 인간의 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에요.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져야 하는 거예요.

진정한 지도자란 허물이 없고 능력이 많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흠 없고 능력 있는 사람을 골라 뽑으려고 애를 쓰지만 성경을 잘 들여다보세요. 하나님께 그토록 사랑을 받았다는 다윗을 보세요. 그는 허물 많은 사람이었어요.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도 실수하고 넘어지고 그럴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오,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하나님 나는 연약합니다. 내게 은혜를 주옵소서.’ 다윗은 왕의 자리에 있을 때 한 여인을 간음하게 되고 그 여인의 남편인 부하 장수를 죽이는 엄청난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군주 시대에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책망하실 때에 마음을 찢고 엎드립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합니다. 그토록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어 왕 위에 올랐으면 도덕적으로 반듯한 사람이 되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고 그 주어진 기회를 또 그릇되게 사용해서 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책망 할 때 엎드려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위로하실 때 우리 같으면 부끄러워서 더 이상 못하겠다 하고 사표 내고 떠났을지 몰라요. 그러나 하나님이 불러주셨고 하나님이 세워주셨기에 묵묵히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립니다. 너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왕으로서 맡겨진 일을 감당하라. 그게 은혜예요. 일하다가 기분 나쁘다고 사표 내고 떠나가는 사람은 일꾼이 아니에요. 그건 이제까지 자기 고집으로 일 한 거에요. 자기 기분으로 일 한 거에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는 헌신하고 사명을 받지요. 그러나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 앞에서는 기분으로 일하는 거지요. 추켜주면 신이 나고 격려해주면 힘이 솟구쳐서 다 그렇게 일하는 거예요. 그게 사람이에요. 그러나 그 깊은 중심에는 하나님을 만나는 그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결정적 이유는 허물이 많아서예요. 실수가 많아서예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의 장점이 뭐냐. 하나님이 용서해 주면 낯이 두껍게도 “아멘” 하고 일어나서 과거는 잊어버리고 또 열심히 일하는 거지요. 그래야 하나님이 쓰셔요. 그게 복음적인 삶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생명 언젠가는 하나님이 불러 가실 생명이고 하나님이 내 아버지예요. 아버지 앞에서는 자식이 부끄러울 것도 없어요. 생명을 받고 온전한 은혜로 사는 거예요. 넘어졌다가도 또 일어나서 살아야 되는 거예요. 일꾼은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리더에게는 꼭 지혜가 필요 합니다. 오늘날 리더십은 뭐냐? 두 가지를 말해요. 하나는 관점(perspective) 이에요. 어떤 사람이냐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 내 인생에 해답을 얻었다. 이런 사람에게 진정 행복은 인생관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는 것이지요. 이제까지 돈을 우선으로 생각하던 사람이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거예요. 우리가 연약 해서 갈등이 있지만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사랑 받는 존재요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인간극장 다큐멘터리를 보고 마음 아픈 것이 있었습니다. 토목과를 나와서 번듯한 직장에 잘 다니던 사람이 IMF에 그만 실직을 하고 말았어요. 직장을 가지지 못해요. 그래서 하루아침에 일용직 노동자가 됐어요. 페인트 칠 하는 것을 배워가지고 일하는데 날마다 일 하는 게 아니잖아요. 건축경기가 나쁠 때는 일하는 날 보다는 쉬는 날이 더 많아요. 그러니 전처럼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안정된 생활이 갑자기 무너지니 얼마나 고통이 심합니까. 아내가 집을 나갔어요. 어린 삼 남매를 놔두고 나갔어요. 이 어린 삼 남매를 끌어안고 살아가려니 너무너무 힘들어요. 그 아픔과 괴로움과 답답함을 술로 달랩니다. 그는 나중에 알코올 중독자가 돼서 병이 들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떻게 간수할 수 없어서 보육원에 보내요. 자기는 일 따라서 지방으로도 가야 하기 때문에 주말에만 아이들을 만나요.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으면서도 그늘이 있어요. 이제 서른일곱이 된 아빠의 어깨가 늘어졌어요. 제목은 <내일은 맑음>이라고 했습니다만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몰라요. 아내 없으면 하루아침에 삶이 무너지는 거예요. 다 이유가 있어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남편을 붙여 주신 거예요. 아내와 남편과 아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여러분 우리 주위를 보십시오. 한 순간의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실직하고 어려움 가운데 빠진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알고 보면 나 잘나서 내 능력으로 사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은혜로 사는 사람 이예요. 열심히 일하면서도 지혜를 구하는 거죠. 결론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다. 내 아내보다 저 여자가 더 예쁜 것은 객관적으로 맞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나에게 짝지어준 사람이다. 이렇게 믿음으로 결단을 내리고 사는 거죠.

리더의 특징 또 하나는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기에 그는 영향력을 행사해요. 이런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요. 이제부터 내가 너를 게바라 하리라. 너를 반석이라 하리라. 너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드러내리라. 리더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드러내는 분이에요. 그래서 정말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은 누구냐? ‘나를 따르라.’가 아녜요. 사람을 예수님께로 이끌어 내는 사람이에요. 나의 허물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오늘도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을 사랑하신다 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 예수님과 늘 머무는 사람. 그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이에요. 예수님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일꾼이 되는 것이죠.

 

기도

하나님, 우리를 자녀로 부르시고 이끌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참으로 믿음이 부족한 우리들을 은혜와 사랑으로 덮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와 보라 말씀하신 대로 날마다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내가 주님을 만났다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오늘 내게 주신 이 모든 것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