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예배를소중히하는사람들이복받는사람들]/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6. 21:47

060108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2:1-4)

성경본문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지난 2005년도에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래서 2006년 새해를 맞으면서 올해는 또 어떠할까 하는 걱정과 염려와 불안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눈을 들어서 멀리 내다봅시다. 오늘 아침에 신문을 받아 보았더니 중국 사회과학연구소에서 내놓은 세계국력비교에 의하면 우리나라를 세계 9위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항목이 있습니다.  특별히 IT 정보통신환경은 세계 2위에 해당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5 12월 초에 미국 골드만삭스 은행에서 펴낸 2005년 보고서 BRICs는 얼마나 견고한가’라는 주제의 보고서에 의하면, BRICs라고 하는 것은 2003년 골드만삭스 은행에서 만들어낸 신조어지요. Brazil, Russia, India, China. 앞으로 세계 강국으로 부상할 나라들이지요. 이 영향력이 어떠한가 하는 보고서에 BRICs만은 못하지만 그러나 주목할 만한 나라가 있다. 그래서 NEXT 11을 뽑았습니다. 한국을 비롯해서 여러 나라들이 들어있는데 인도네시아도 포함되어 있어요. 앞으로 뻗어나갈 나라들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그 11개 나라 중에 특별히 한국은 아주 독보적인 나라다, 기술이나 인적자원은 사실상 선진국 수준에 올라와 있다고 평가되지만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성장 잠재력이 아직도 무한한 나라다. 그래서 NEXT 11에다가 포함시켰는데요. 그들의 전망에 의하면 2025년이 되면 1인당 국내 총생산 즉 GDP, 한국은 51,923달러가 될 것이다. 이것은 미국, 일본 다음에 해당되는 거예요. 3위가 될 것이다. 개인적인 삶의 여유가 그렇게 될 것이다. 2050년이 되면 국가총생산량으로 말하면 중국이 드디어 미국을 추월하게 되는데 개인 GDP를 가지고 얘기한다면 미국 다음으로 한국이 될 것이다. 81,462달러가 될 것이다. 믿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30, 40년을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내어 놓은 결과지요. 물론 여기에는 많은 변수가 있지요. 특별히 한국의 변수는 뭐냐? 급격히 노령화 되고 있다는 것이 약점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빨리 애를 좀 더 낳으세요. 와서 보니까 인도네시아에서는 애 낳아도 되겠던데요. 늦둥이들이 인기가 있다고 하는데 많이 좀 낳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2050년에 가장 잘사는 나라 중에 하나가 된다는 거죠. 오늘 여러 가지로 힘듭니다. 발끝만 볼 것이 아니라 눈을 들어서 세계 여러 나라의 전문가들이 우리나라를 주목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한번 눈 여겨 봐야 되겠습니다.

경제적으로 악바리같이 열심히 일하는 이 사람들이 이루어낼 삶은 이러한데 여기에 발맞추어서 그 삶의 내면, 즉 경제가 그릇이라면 넉넉하고 여유 있어 보이는 그 삶 속에 담겨야 할 삶의 본질, 그 내용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과연 오늘 우리의 모습 그대로 충분한가? 그저 이렇게만 나가면, GDP만 올라가면 정말 행복할 것이냐? 그것은 아니지요. 현대인의 속성을 즉각성, 지금 당장이란 말이죠. 그리고 1회성, 빨리 얻는 것만큼 또 빨리 싫증을 내고 버리는 이것이 현대인의 속성인데, 한국 사람들이 여기에 또 앞장서고 있죠. 그래서 어떤 분은 사설에서 다시 월드컵의 해를 맞으면서 한국 사람의 냄비 근성을 이야기하는데요, 너무나 냄비 근성의 부정적인 것을 이야기하지 말자. 끓어올랐다가 빨리 식어버린다. 그러나 왜 빨리 식는 것만 얘기하느냐, 빨리 끓어오르는 것은 왜 얘기하지 않느냐? 듣고 보니 그래요. 길거리 응원도 그랬습니다만, 뭐 누가 사전에 계획하고 한 게 아니었거든요. 갑자기 마음이 모이면서 순식간에 온 나라가 끓어올랐거든요. 그러면서 지도자를 잘 만날 때 그렇게 순식간에 끓어오르는 그 열정과 창의력을 아름다운 결실로 이끌어 갈 수 있다 라고 하는 주장을 했습니다.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죠. Quarterism이라고 해서 Quarter 15, 요즘 사람들의 모든 단위는 15분이라는 거죠. 광고도 다 15초 단위로 가는 거지요. 15초 주목하고는 마음에 들면 15초 연장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15초 만에 채널을 돌려버려요. 사실 저는 15초도 안 걸려요. 여기 얼마나 채널이 많습니까? ! 3~4초면 결정 납니다. 저건 아니다, ! 그 몇 초 사이에 보는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니 얼마나 자극적이고 얼마나 말초적이 됩니까. 그래서 신앙의 위기가 여기 옵니다. 주일 예배 가는 것도 꼭 주말 소풍 가는 기분으로 그리고 뭔가 하나님과 조용한 가운데서 만나는 것 보다는 좀 바글바글 들떠있는 기분 좋은 이벤트를 원하는, 그리고 교회도 최신유행을 따라가는 이런 것을 선호하는 우리들의 경향이 있지요.

제가 성지순례를 다녀오면서 느꼈던 것은, 성지순례라는 것도 미리 가기 전에 공부도 좀 해놓고 그 의미가 뭔지를 알고 가서 눈으로 확인하면 성지순례가 돼도, 준비 없이 가면 그것은 어지간한 자연을 보러 가는 그런 관광지보다도 훨씬 못한 형편없는 관광지가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신 ‘비아 돌로로사’ 고난의 길이라고 하는 곳도 지금 가보면 지금 완전히 시장터가 되어버렸어요. 시장 한복판에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는 거예요. 하긴 2000년이 지났으니 어떻게 됐겠어요. 완전히 다 바뀐 거죠. 그러나 그 바뀐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그런 안목이 없다면 성지순례마저도 시시한 여행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는 한다는 말이 ‘에이, 기대했는데 이게 뭐냐.’ 여기에 신앙의 위기가 있어요.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한 순간에 결론이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끝나는 날까지 한평생 동안 우리로 하여금 꾸준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따라올 수 있도록 그렇게 마련해 놓으신 길이기 때문 이예요.

여러분, 이번 화요일 110일은 이 나라 공휴일입니다. Idul Adha’라고 해요. 그건 뭐냐? 흔히 우리가 알기로는 양을 잡고 소를 잡는 날이라고 알고 있죠. 사실은 창세기 22장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그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올라가서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스마엘이 있고, 이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의 후예라고 자처하는 이슬람사람들은 그 모리아 산에서 있었던 사건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의 사건이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잡아 죽이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셔서 이스마엘이 양으로 변하도록 그런 역사를 일으키셨다 라고 하는 것이고, 이삭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은 창세기 22장에 있는 대로 이삭을 잡아 죽이려고 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것을 말리시면서 이미 저 나무 수풀에 양이 걸리게 하셔서 양을 대신 제물로 바쳐드렸다. 그 사건이에요. 그 사건을 기억하는 날이에요.

아브라함의 그 사건은 뭡니까? 그건 예배죠. 예배의 모델을 말합니다. 순종하지 않고는 온전히 예배드릴 수 없는 모습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 나올 때에 어째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만 나왔겠습니까? 마음의 상처도 있습니다. 어젯밤에 괴로웠던 일들도 있습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몇 년째 묵은 문제도 있습니다. 또 사람은 연약해서 잘 나가다가도 교회 바로 문 앞에서 부부가 싸울 수도 있어요. 그러면 누구 하나가 삐쳐서 ‘나 교회 안가’ 하고 돌아갈 수도 있어요. 그래도 여러분은 시치미 뚝 떼고 앉아 있으면 됩니다만, 목사의 고민 중에 하나는 토요일 밤에 부부 싸움을 하면은 이거 아주 심각해집니다. 아주 갈등이 일어나요. 주여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이 밤에 일어납니까? 그럼 내일 설교해야 됩니까, 말아야 됩니까? 해야지요. 그건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해야 되는 거지요. 그러나 여기에 갈등이 있어요. 문제가 있고 갈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끌어안고 올라가는 순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셔서 사흘 길 걸리는 모리아 산에 갔으니 그 사흘이 아브라함에게는 지옥과 같은 사흘이었을 거예요. 정말로 마음을 찢는 사흘이요, 회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 사흘이었을 거예요. 더더욱 이제 산에 올라갑니다. 이제 마지막 순간에 뭐라고 얘기해야 될까요?

어느 목사님이 등산을 좋아해서 혼자 등산을 하다가 미끄러졌어요. 막 굴러 내리다가 절벽에서 떨어졌어요. 정신 없이 떨어지면서 팔을 휘젓다가 가까스로 소나무 등걸을 붙들었어요. 손에 피가 흐릅니다. 보니 절벽 중턱에 대롱대롱 매달린 거예요. 그러니 어떻게 했겠어요. 사람 살리라고 소리치는 거예요. 그 위에 사람 없어요? 그런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와요. 왜 그러느냐? 하나님이세요. 하나님, 내가 지금 여기 있습니다. 나를 좀 살려 주십시오. 하나님, 나를 붙들어 주시고 구해주시면, 내가 목숨을 다해서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래 내가 너를 구해줄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아라. , 이제 그 손을 놓아라. 아니 하나님, 이걸 놓으면 어떻게 됩니까, 떨어질 텐데요. 글쎄 걱정하지 말고 그냥 놓아라. 내가 너를 구해주겠다. 목사님이 화가 났어요. 잠깐 가만히 생각하다가 다시 고개를 쳐들고 말합니다. 거기 다른 사람 누구 없어요? 그게 우리의 고민이에요,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우리가 부르짖는다고 하나님이 그때그때 속 시원하게 응답하시지 않아요. 나중에 우리가 나의 지식과 능력과 이런 것을 다 포기하고, 겸손히 무릎 꿇는 그 시간에 비로소 우리는 정말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죠.

대학입시가 이제 어지간히 끝났습니다마는, 자녀들을 입시에 내보낸 부모들의 마음이 오죽합니까. 얼마나 간절히 기도합니까. 그러나, 그 모습은 너무나 간절히 기도합니다마는 아직 그 안에는 자기 나름의 복잡한 계획과 생각이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에는 너무나 꽉 들어차 있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거예요.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사흘 길, 그 죽음의 길, 괴로운 길, 인내의 길, 고통의 길을 사흘 동안 올라가서 정상에 서는 순간 비로소 하나님이 준비하신 놀라운 응답을 정상에서 발견하게 돼요. , 하나님은 저쪽에서 양을 끌고 올라오신 거예요. 산을 이쪽으로 올라갈 때, 하나님은 저쪽에서 양을 끌고 올라오셨어요. 정상에 서기까지는 저쪽이 보이지 않았던 거예요. 정상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새로운 은총을 알게 되고 놀라운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1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새해 들어 뭘 계획하셨습니까? 지금 그 계획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1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또 한 주는 어떻게 살 것인가, 또 하루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모든 것을 관통해서 흐르는 삶의 리듬이 있어야 되는 것이죠. 영적인 리듬이 있어야 되는 것이죠. 오늘 이사야서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 세상이 가장 아름다워질 그 종말의 모습을 환상 가운데 봅니다. 그것은 세계만방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다 예루살렘 산을 향하여 올라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그런데 우리는 그 예배를 이렇게 주일마다, 또는 날마다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삶을 예배로 이해해야 해요. 순례자라고 하는 것은 예배드리는 자들 이예요. 여러분 이번 ‘Idul Adha’는 이슬람의 가장 큰 절기 중에 하나예요. 그래서 이미 시작됐어요. Idul Adha' 1 10일 이날이 이슬람 사람들 성지순례에 아주 하이라이트예요. 그래서 앞뒤로 붙여가지고 지난 8일부터 시작해서 12일까지 5일간 지금 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 250만 명이 모여 있어요. 160개국에서 모였어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데도 불구하고 몰려들어요. 그 사람들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성지를 순례하는 것은 신앙인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년 몰려들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라마다 참가인원을 제한할 수밖에 없어요. 인도네시아는 19만 명이예요. 이때 성지순례를 하는 것을 진짜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지금 성지순례하려고 다 모여들었어요. 아브라함의 예배를 그들이 새롭게 나름대로 전통을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는 어떻게 예배하고 있습니까?

구약성경에 보면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어요. ‘너희는 일 년에 세 번 모두 한곳에 모여서 하나님의 산 예루살렘에 모여서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서 예배하라.’ 그 세 가지가 뭐냐? 봄에는 유월절, 초여름에는 오순절, 가을에는 초막절 이예요. 그러나 신기하지요? 우리나라 명절하고 일치해요. 우리도 구정이 있어요. 유월절하고 일치하는 거예요. 오순절이 있어요. 오순절은 정확하게 사월초파일 이예요. 사월초파일 이라는 게 뭡니까? 이른 열매들을 거두고 추수 감사하는 그런 절기가 불교가 들어오면서 사월초파일이 된 거예요. 농경문화 속에서 이건 아주 중요한 한때의 쉼을 얻는 명절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추석이 있어요. 우리도 조상 전통의 명절이라고 이어 받아서 내려왔어요. 그래서 고향도 찾아가고 했습니다만, 그 안에 고향을 찾고, 가족을 만나고 부모를 만난다고 하는 그것을 넘어서서 그 안에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는 신앙의 비밀만 빠져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고향가려면 표도 벌써 한 달 전부터 끊어야 되잖아요. 이미 그때부터 마음은 고향에 가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지를 향해서 유대인들이 모여들 때 이미 저 먼 자기 고향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모여들 때 이미 출발부터 예배는 시작된 것이죠. 우리가 주일날 여기 옵니다. 어떤 분은 예배가 어제 밤부터 시작된 분이 있고, 어떤 분은 오늘 아침에 시작된 분이 있고, 어떤 분은 마지못해 왔으니까 차에 올라앉는 순간부터 시작된 분이 있고, 마지막에 돌아온 탕자 같은 분은 교회 문간에서 마음을 돌이켜 잡았겠죠. 언제부터 예배가 시작되었습니까? 예배는 출발부터 시작된 거죠.

여행에는 위험이 있어요. 모든 게 불확실해요. 긴장도 돼요. 그러나 반면 기대도 있고 흥분도 있습니다. 사실 집에서 여기로 출발했습니다만 다른 각도로 보면 의심으로부터 출발을 해서 믿음에 이르는 길이예요. 또 어린 유아기로부터 사춘기로 해서 성년에 이르는 길이예요. 어느 집안이나 보면 사춘기의 우리 청소년들은 삐딱할 수밖에 없어요. 좀 적극적인 애는 부모한테 막 대들고 그러지만 또 소극적인 애는 아예 입을 닫고 ‘나는 너하고 이제 말도 안 한다, 내가 지금은 할 수 없이 밥 얻어먹고 있지만 두고 봐라 내가 어떡하든지 기회만 닿으면 내가 나간다’. 사실 저도 고등학교 시절에 제가 워낙 소극적이라서 부모님에게 그냥 얼굴을 붉히고 맞대고 이러진 못했습니다만 친구 집에 가서 일주일을 잔 적은 있습니다. 왜 그렇게 친구 집이 맘이 편한지 모르겠어요. 근데 왜 이렇게 우리 아버지 집은 맘이 불편한지 모르겠어요. 왜 그럴까요? 나를 찾느라 그래요. 그게 잘못된 게 아닙니다. 이제까지 내 부모의 밑에서 그 사고방식과 그 문화와 그 모든 것 속에서 나를 의지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도대체 내가 누구냐 라는 그 물음에 스스로 견디기 어려워서 나를 찾기 위해서 잠시 있던 자리를 떠나는 거예요. 그거 이상하게 여기지 마세요. 아 중고등학교 애들 삐딱하게 나가는 거 당연하지요. 그래서 좋은 방법이 있어요. 주일날 용서해 주세요. 주일날은 나갔다가 들어오는 아들을 야단칠 일이 있어도 내가 오늘은 주일이니까 참는다. 이건 아주 중요한 겁니다.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신학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까 네가 내 아들이지만 내가 너를 낳았고 내가 너를 먹이고 기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명령하셨으니 내가 참는다. 아주 훌륭한 신앙고백이죠.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떠나면서 이들은 노래를 부릅니다. 시편 120편부터 시편 134편까지 15편의 노래는 모두 다 제목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예요. 제가 어린 시절에 교회가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었어요. 우리는 어린 시절에 힘이 펄펄 솟으니까 단숨에 뛰어 올라 가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힘겹거든요. 슬렁슬렁 올라옵니다. 입 다물고 올라오려면 괴롭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요, 찬송을 부르며,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찬송을 부르면서 올라오는 거죠. 그러니 한 달이 걸리고 보름이 걸리고 열흘이 걸리는 그 성지 순례길을 올라오면서 모든 유대인들이 찬송을 부릅니다. 그리고 서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합니다. 찬송이요 기도가 있고 교제가 있고 나눔이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에요.

그럼 일 년에 세 번, 하나님께 모여서 예배하고 또 흩어지고 한 주간 함께 예루살렘에 모여서 예배와 축제를 행하면서 살다 보면 일 년이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더불어 산 일 년이었다. 일 년을 압축하면 하루가 돼요. 아침에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점심에 반가운 사람들 만나서 음식을 나누면서 서로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밤에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게 바로 봄에 구원을 감사하는 유월절, 그리고 중간에 주신 그 열매를 감사하면서 하나님 앞에 헌신을 새롭게 다짐하는 오순절, 그리고 가을에 추수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초막절. 구정, 사월초파일, 그리고 추석과 맥이 통하는 것이죠. 한 주간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주일로 하루를 시작하죠, 수요일에 모여서 우리가 또 예배하죠, 그리고 토요일에 한 주간을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은혜를 사모하는 거죠. 일 년을 다시 반대로 늘여 놓으면 그것은 한평생이 되는 것이죠. 종말론적 신앙이 되는 거죠.

며칠 전에 미국에서 탄광 매몰사고가 있었습니다. 12명의 광부들이 죽었습니다. 나중에 시신을 수습하는 가운데 보니 그들에게 남겨진 메모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 마틴 롤러 주니어라고 하는 사람은 이런 글을 썼습니다. ‘우리가족 모두에게 천국에서 만나자고 말해주렴. 지금까지의 삶이 나쁘진 않았어. 나는 이제 잠자러 가는 거야. 모두를 사랑해.’ 언제 무슨 일이 있을는지 아무도 장담을 못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이 내게 왔을 때 담담하게 그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이게 바로 예배자의 진정한 모습이죠. 옛날에 유대인들이 적과 싸울 때, 적들이 유대인은 안식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예배만 드린다는 걸 알고 안식일에 결정적으로 공격해 왔어요. 마사다 요새를 로마군이 마지막으로 공격하는 D-day를 잡을 때도 안식일로 잡았어요. 그때 유대인들은 싸우기 보다는 죽는 것을 택했어요. 그래서 집단자결을 했습니다. 칼을 뽑아 들고 적을 치지 않고 집단자결을 했어요. 우리가 보기에,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죠. 어리석지요. 그러나 놀랍게도 오늘날 그 어느 민족보다도 가장 강한 민족으로 유대 민족을 꼽을 수 있는 것은 그들 모두에게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사고방식, 지역이 다를지라도 신앙으로 하나 된 그 분명한 중심이 있기 때문이죠. 예배를 소중히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복 받는 사람들입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새해를 맞아서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날들을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립니다. 새해 들어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고 많은 계획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며, 예배 속에서 내게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듣는 이 놀라운 비밀만큼은 양보하지 않게 하시고 하루도 예배의 삶으로, 한주간도 예배의 중심으로, 그리고 올 한해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하면서 주를 따라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