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교회의 축복[알수없는놀라운은총=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음]/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6. 22:06

060122 교회의 축복 ( 133:1~3)

성경본문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여러분도 신문 보도를 통해 다 아시겠습니다만 며칠 전에 KTX 고속철도 열차와 지하철이 다 운행 중단 되었습니다. 그 원인은 한 역에서 지붕 공사를 하면서 케이블을 옮기던 중에 한 사람의 실수로 케이블이 떨어져 가지고 5만 볼트 고압선을 건드리는 바람에 모든 것이 올스톱 된 것이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계획의 차질을 빚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설명을 더 들어보니, 만약에 그때 열차가 그 아래로 지나가고 있었다면, 5만 볼트 고압선이 열차 지붕을 치는 경우가 생겼다면, 엄청난 대형 참사가 일어났을 것이다 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사람이 부주의 한 것이 상상키 어려운 엄청난 재앙을 던져주는 그런 세상이 된 것이죠.

또 하나, 노점상을 하는 사람이 몰래 물을 빼어 쓰고 있었는데, 지하수를 빼어 쓰려고 깜깜한 밤에 사람을 불러다가 불법 공사를 하다가 그만 가스관을 건드리는 바람에 그 동네 수천 가구가 추운 겨울에 한 밤중 내내 추위에 떨었다 하는 것이죠. 자그마한 이기심이 불특정 다수에게 재앙을 던지는 그런 세상이 된 거예요. 현대 기술 문명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이건 양날의 칼이에요. 단추 하나를 누르므로 모든 것이 돌아가고 아주 편리하지만 누군가 잘못 누른다면,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누른다면 어마어마한 재앙이 되는 것이죠. 부주의와 이기심.

제가 오래 전에 토요일 오후에 경기도 이천에서 게릴라성 폭우를 만났어요. 비가 너무 심하게 와서 안 되겠다! 이천에 미란다 온천 호텔이 있으니까 잘됐다 그럼 가서 온천하고 나오면 그새 다 해결이 되겠지 하고는 온천을 하고 밥을 먹고 저녁 무렵에 나와 보니 여전히 비가 내려요. 안 되겠다! 무엇보다도 오늘 집에 못 들어가겠다. 차를 끌고 나왔는데 더 심해요. 제가 길을 모르는 사람이 아닌데 가다 보니까 엉뚱한 길로 가고 있더라고요. 표지판이 안보였어요. 안 되겠다! 어디 빨리 몸을 좀 피해야겠다. 주유소가 보이길래 거기 마당에다가 차를 세워 놓고 차 안에서 한참 기다리고 있었어요. , 이러다가 이거 집에 못 들어가면 내일 주일 아침 설교인데 이거 큰일 났네. 이거 누구한테 부탁을 해야 되지? 그러나 그건 배부른 고민이었어요. 계속 비가 오니까, 이야기가 달라지더라고요. 아하, 이러다가 사고 나고 이러다가 죽는구나. 다행히 몇 시간 쏟아 붓던 비가 갑자기 감쪽같이 멈췄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보니까 국도 변에 가로수들이 다 넘어져 있더라고요. 엄청난 비가 온 거죠. 그날 밤에 뉴스를 보았더니 용인 이천 지역에 대단한 비가 쏟아졌다는 거예요. 그리고 용인에 엄청나게 큰 피해가 났는데, 그것은 아파트 난개발로 인해서 피해가 대단했다고 하는 것이죠. 사실은 사람들이 환경을 파괴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기상 변화를 일으켜서 고스란히 되돌려 받는 구조를 가지게 된 것이죠.

환경 파괴만 그렇지 않습니다. 요즈음 달러가 자꾸 떨어진다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나 학자들의 진단에 의하면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고 하는 것이지요. 전 세계 인구 중 미국 사람은 5%에요. 그런데 전 세계의 소비량의 40%를 미국 사람이 쓰고 있는 거예요. 그야말로 펑펑 써대는 거예요. 흥청망청 써대는 거예요. 미국은 재정적자, 무역수지적자로 인해서 큰 위기를 안고 있습니다. 국채를 발행해서 빚을 내가지고 지금 그것을 감당하고 있는 거예요. 세계에서 가장 빚 많은 나라가 미국이에요. 85천억 달러라고 합니다. 학자들은 지금 위기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 달러가치가 어느 날 한 순간 폭락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매물을 내다 팔 것이다. 그러면 미국 경제에 금융위기가 오고 미국 경제가 무너지는 순간 전 세계의 경제는 다시 한 번 대공황을 맞게 될 것이다. 이기심이죠. 이기심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거 내가 하나 더 먹으면 내 배는 부를지 모르지만 그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거예요. 영적인 무지에요. 목적과 방향을 상실한 삶이 이기심을 찾게 되는 것이죠.

오늘 하나님이 말씀 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복을 명하였노라. 이 복은 곧 영생이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오래 산다는 이런 시간 개념의 영생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말한다면 나의 과거가 올바르게 해석되고 나의 미래가 올바르게 전망되고 그래서 오늘을 가치 있게 소중하게 살아갈 때 그것이 영생이지요. 그래서 사실 어떤 사람은 천국도 매력이 없대요. ? 아니 이 짧은 칠십 년 팔십 년도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데 천국에 가서 오래 산다고 하니까 지긋지긋해서 차라리 그것 보다는 그냥 끝나는 게 낫지. 그게 바로 영적인 무지에요.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는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거예요. 아침에 만나서 다방에 들어갔는데 한밤중에 나왔어요. 그런데도 시간이 언제 갔는지도 몰라요. 그것이 영생이랍니다. 그 모델이 바로 예수님이시죠. 17:3에 말씀하시기를 영생이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왜 그러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영생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그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확연히 보여 주셨기 때문이죠. 우선 목적이 분명합니다. 사람이 누구나 으뜸이 되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내어 주기 위해서 왔느니라. 인생의 목적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묻죠. 구약에 보면 율법이 많은데 그 중에 가장 으뜸가는 계명이 무엇입니까? 너는 성경에서 뭐라고 읽었느냐? 성경이 말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또 뭐라고 했느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옳다!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라. 너무나 분명한 거죠.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우상 숭배라는 것은 이제 무슨 돌로 나무로 뭘 조각하여 세우는 그런 우상숭배가 아니라, 골로새서 35절 말씀에 너희의 이기심이 우상숭배다 라고 말합니다. 너희의 그 탐욕스러운 마음이 우상숭배다 라고 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삶을 더 넓혀야 돼요.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은 좁은 생명이에요. 그러나 삶을 열어서 하나님과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은 넓은 생명인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제가 어제 깜짝 놀란 일이 하나 있었어요. 우리 아동부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어요. 아이들이 눈치가 빠르더군요. 선생님이 묻기를 우리 교회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누구냐? 그랬더니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목사님입니다 그래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에요. 헌금은 다 목사님이 가져간다 이렇게 알고 있더라고요. , 이거 제대로 교육을 못 시켰구나. 누가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애들이 얼마나 눈치가 빠른지. 어디서 들었는지 제가 알고 있어요. 집에서 들었겠지요. 그거 다 목사님이 가져가는 거다 이렇게 가르쳐진 것 같아요. 그게 아니죠. 여러분, 그 어린 아이들의 마음에 교회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분명히 심어 줘야 돼죠. 교회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이 그의 삶을 우리 가운데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집이에요. 그래서 교회는 목사가 우두머리가 아니라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고, 우리 모두는 받은바 은사대로 지체가 되어서 하나의 몸을 이루어 가는 것이죠.

박완서라고 하는 유명한 소설가의 <아주 오래된 농담>이라고 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남녀의 풍속도가 잘 그려져 있어요. 재벌가의 한 아들이 말기암 진단이 나왔습니다. 결국 그는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를 비롯해서 그의 형제들과 가족들은 그에게 그 사실을 철저하게 비밀로 숨깁니다. 결국은 자기의 병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 채 피를 쏟고 죽습니다. 그들의 의도는 아들로 하여금 자기의 죽음을 준비해서 자기의 삶을 정리하는 가운데 사랑하는 아내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는 유산에 관한 언급을 하지 못하도록 입을 막는 것이지요. 며느리는 남이니까. 얼마나 돈에 매어 있는 이기적인 모습입니까?

그러면서 대비되는 또 한 사람의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이 사람은 ‘치킨 박’이라고 하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소시민이에요. 고생고생 해가지고 치킨가게를 하나 준비해서 겨우 집 장만을 하고 살아가는 또 하나의 중년이에요. 그런데 그가 몸이 불편해서 병원에 갔다가 역시 암 진단을 받습니다만 다행히 초기로 나왔어요. 그는 수술해서 충분히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행방불명이 된 거예요. 가족들이 애를 태우면서 찾습니다. 도대체 어디를 갔을까. 며칠 후에 그는 스스로 목매어 죽은 그런 모습으로 발견되고 그의 몸에서 유서가 나옵니다. 그 글에서 그는 말합니다. ‘여보! 우리가 이제까지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출발해가지고 이제 겨우 집 장만하고 가게를 마련하고 사는데, 아무리 내가 초기 암이라고 하지만 고칠 수 있다지만 그것을 위해서 이걸 모두 다 쏟아 붓는다면 나는 결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소. 이제 당신과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가 모은 것 갖고 충분히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오.’ 그는 어렵게 모은 재산을 지켜보려고 스스로 떠나 버린 것이죠. 역시 돈에 매인 인생입니다.

또 거기에 두 여인이 나옵니다. 한 여인은 젊음을 믿고 자기 마음대로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한 남자를 만나면서 새롭게 사랑을 느끼고 이제 그의 아이를 갖기를 원하지만 이미 그의 몸은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그런 몸이 되어 버렸습니다. , 한 여자는 아들을 낳으라는 그 집안의 성화와 그리고 자기의 욕망에 매어서 자기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을 때 그 아이가 여자아이로 판명 났을 때 낙태를 합니다. 거침없이 낙태를 합니다. 아들을 낳으려고 하는 거죠. 몸은 건강하지만 이미 그 생각은 매어 있는 것이죠.

그 소설에서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이런 남녀들의 인생 풍속을 한마디로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에 서 있는 인생들이다. 이건 프랑스 사람들의 관용어에요. 해가 져서 어렴풋할 때 사물의 윤곽이 흐릿합니다. 그럴 때는 자기 집에서 기르던 친숙한 개마저도 한 순간 늑대같이 낯설게 느껴지는 그런 시간들. 낮이 밤으로 바뀌는 시간, 모든 것이 희미한 시간 불투명한 시간 불확실한 그런 시간들을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겠습니까? 친숙하게 느껴지던 것마저도 낯설게 느껴지는 그런 시간으로 살겠습니까? 아니면 우리의 과거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죄 사함 받고 우리의 불확실한 미래가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그 길이 분명히 보이고 그리고 이제 하나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 건강하게 살아가는 오늘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서로 사랑한다고 부부가 되어 살면서도 돈에 매이고 욕망에 매여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허락하신 거죠.

교회는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놀라운 은총이 있는 거죠. 거기에 생명이 있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사람은 교회를 어머니로 한다.’ 유명한 신학적인 명제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목사라도 석 달 설교 안 하고 교회 안 나오고 하면 불신자 되는 거예요. 석 달 굶어 보세요. 살아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다 죽는 거예요. 하나님이 바로 우리를 위하여 교회를 내신 거예요.

얼마 전에 짧은 TV 프로그램을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제목이 ‘엄마는 울지 않는다.’ 사십 대 중년 여인의 이야기에요. 열한 살짜리 남자 쌍둥이를 가지고 있는데 애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중증 장애인이에요. 자기 몸을 일으켜 세우지도 못해요. 집안에서는 배로 기어 다녀야 돼요. 이런 아이들을 휠체어에 태워 가지고 아침마다 학교로 보내주고 아이들이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니까 엄마가 또 찾아가서 화장실로 데려가고 또 집으로 데려와야 되고 그 삶의 곤고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그러나 그 엄마에게 큰 기쁨이 있었어요. 그 쌍둥이 형제 중에 큰 아이가 이제 책상을 붙들고 잠깐 서 있는 거예요. 그 모습에 무한한 희망을 가지고 감격하는 거예요. 그 쌍둥이 형제가 더불어 살면서 공부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장난도 칩니다. 또 서로 싸우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둘째가 형에게 말합니다. ‘형, 나 물 마시고 싶어.’ 그러니까 그래도 몸이 좀 낫다는 형이 배로 방바닥을 기어가서 주방에서 낑낑거리고 물을 한 컵 따라가지고는 그것을 방바닥에 몸으로 밀고 와서 동생에게 내어 줍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너무나 정확하게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향한 그 엄마의 마음같이 그리스도께서 어그러지고 깨어진 우리들을 내치지 아니하시고 또 품어 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세워 주시는 거예요.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기도 제목이기도 하고 목사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항상 우리가 기도할 때 놓쳐서는 안 될 것은 교회야말로 제도 속에 갇혀서는 안 되는 것이죠. 회사는 능력 있는 사람이 우선이에요. 그 사람에게 보수를 많이 주는 거예요. 그러나 교회는 그렇지 않아요. 교회도 사람의 능력을 가지고 판단한다면 우리는 또 한번 우리의 삶을 얽어 매고 망가뜨렸던 그 제도를 스스로 불러들이는 거예요. 교회는 병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거예요. 예수를 만나지 않고는 새로운 삶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을 주님이 그 은총으로 불러 주신 거예요. 교회는 어느 한 사람의 고귀한 영성이나 어떤 사람의 능력으로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돼요. 한 사람 한 사람 불러 주신 그 한 생명 한 생명이 소중한 거예요. 귀한 거예요. 그것을 놓쳐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는 이제 거룩함을 회복해야 됩니다. 서로서로가 제사장이 돼야 돼요. 서로 장애를 가지고 있는 형 동생이 함께 장난도 치고 위로도 주고 기쁨도 나누는 거예요. 남 보기에는 어떻게 둘 다 저런 장애를 가졌을까? 그런데 또 다른 눈으로 보면 서로 같은 장애를 안고 있는 그 형제가 진정한 친구가 되고 위로가 되고 그 안에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는 거예요. 서로에게 제사장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어요. 교회 안에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낯선 거예요. 그러나 주님이 그렇게 하시기에 우리는 응답해야 돼요. 그것이 가능한 것은 오직 하나님이 날마다 우리에게 주시는 그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를 덧입을 때 허물만 보던 그 눈이 그 안에서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게 돼요. 하나님의 은혜로 눈물을 흘려보지 않은 사람은 사람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거죠.

오늘 성경이 말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그 모습은 마치 제사장을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부어 그것이 수염을 타고 흘러내려 옷깃에 흘러내리는 것 같이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이 그렇게 거룩함을 회복하고 아름다움을 회복할 때 저 높은 헐몬산으로부터 흘러내리는 그 이슬이 온 만물을 덮고 거기에서 생명이 움트고 소생하게 되고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로 3주년을 맞았습니다. 참 시간 빨리 지나가요. 너무 감사해요. 그러나 눈을 들어보니 우리 앞에 삼십 년이 놓여 있고 백 년이 놓여 있는 것이죠. 지금 기초가 가장 중요해요.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지는 교회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창립 3주년을 맞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부족하고 허물이 많았으나 하나님은 우리를 내치지 아니하시고 한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덮으시고 이끌어 주신 것을 기억하며 감사함을 드립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건강한 교회를 오늘도 내일도 이루며 가꾸어 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