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文化); 책과 생각; 건강

양심의 소리... / 박완규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12. 5. 08:52



  

 

 

 


 


 

 

 

양심의 소리...

 

 

 



    

  벌써 송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어제도 150명의 친구들이 함께 모이는 송년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가 새벽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즐겁기는 하지만 시간관리나 체력관리 잘못하면 아무래도 후유증이 있는 12월이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시간관리, 체력관리 잘 하시는 12월 되시기 바랍니다.


어제 어느 분이 저에게 이르기를 “사람들에게 박 대표의 삶을 너무 많이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제가 14만 명에게 보내는 저의 메일이나 5천 명의 친구가 있는 페이스북, 그리고 수많은 친구가 있는 카카오스토리 등을 통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저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어쩌다가 저의 삶이 유리벽 안에 사는 삶이 되었습니다. 누구라도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 있는 삶 말입니다. 제가 오늘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누구나 알 수 있는 삶, 그래서 속일래야 속일 수도 없는 삶 말입니다.


솔직히 이러한 삶은 그리 편한 삶일 수는 없습니다. 주변에서 지켜보는 눈이 많기 때문에 늘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늘 좋은 생각, 좋은 모습을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술 한 잔 마시고 함부로 고함을 지를 수도 없고, 급하다고 해서 어느 으슥한 곳에 가서 오줌도 함부로 누지 못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을 일부러 해야 한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러한 것을 아예 일상이 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러한 삶이 조금 힘든 삶이기는 하지만 적응만 잘 하면 그리 나쁜 삶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왜냐 하면 주변에서 오는 온갖 '유혹’이나 ‘부정한 생각’으로부터 제 자신을 온전히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라도 크고 작은 유혹이 많은 법입니다. 힘든 세상을 살다 보면 은근 슬쩍 잔머리를 쓰고 싶을 때가 있고 이익 앞에서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럴 때 '내가 그러면 안 되지'하면서 제 자신을 추스릴 수 있는 것도, 은근한 유혹이나 부정한 생각에 넘어가지 않고 제 자신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저의 삶이 유리벽 안에 사는 삶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 하면 저를 바라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그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제가 쏟아놓은 말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남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고, 겸손해야 한다고, 남을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고, 정직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야 한다고, 정의로워야 한다고...


그동안 온갖 좋은 말은 다 하고 살았는데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지난 10여년 동안 제가 이러한 말을 끊임없이 계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지금도 고개를 끄덕여 주는 까닭은 제가 아직까지는 제가 한 말에서 크게 벗어난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국 제28대 대통령인 윌슨 대통령에게 한 비서관이 찾아왔습니다. 그 비서관은 대통령에게 잠시 업무를 접어두고 휴양소에 가서 기분전환을 좀 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쉬는 날도 없이 너무 무리해서 업무를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서관의 말에 윌슨 대통령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내 상관이 허락하지 않으실 걸세."


비서관은 의아해하며 대통령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지금 상관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러자 윌슨 대통령이 비서관에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네. 내 상관은 바로 나의 양심일세. 양심상 임무 수행에 매진할 수밖에 없기에 자네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네.”


윌슨 대통령은 자신의 양심을 자신의 상관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판단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어떤 것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 말 것인지, 무언가를 줄 것인지 말 것인지, 어떤 것을 받을 것인지 안 받을 것인지, 어떤 말을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이러한 판단을 해야 할 때 우리에게는 각자 나름의 판단 기준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그 기준이라는 것이 제각각입니다. 고귀한 사람도 있고 야비한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우리에게 그 기준이란 무엇입니까?


지금 많은 사람들이 그 기준을 정할 때 '국가관'이나 '공공의 이익'이나 '공동의 선'과 같은 것에 두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 두는 것 같습니다. 나라가 어찌되든 말든, 사회가 어찌되든 말든 내게 이익이냐 손해냐에 따라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최근만 해도 박근혜가 그랬고, 최순실이 그랬고, 우병우가 그랬고, 안종범이 그랬고, 정호성이 그랬고, 정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간인 김기춘이 같은 사람이 그랬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이나 자리 보존를 위해 5천만 국민을 힘들게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큰 도둑 말고 우리 주변에 보면 작은 도둑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양심을 쉽게 저버리는 사람들 말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에 대해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 말입니다.


우리가 인생길을 가다보면 가끔 유혹을 받을 때가 있고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다 보니 그럴 때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기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철학자 칸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고, 또 하나는 마음속의 양심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우리가 늘 가슴에 담아 놓아야 할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밤하늘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 안에 아름다운 별이 있기 때문입니다. 밤하늘에 별이 없다면 우리가 밤하늘을 보고 어찌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아름다운 까닭은 우리 안에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양심이란 마음속의 조용한 속삭임입니다. 그 속삭임은 남이 듣지 못하고 자기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소리입니다. 그렇게 자기 혼자만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곤 합니다. 세상의 모든 범죄가 여기서 시작되는데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하지 못하는 까닭은 이렇게 양심의 소리를 너무나 쉽게 외면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의 삶이 비록 조금 고달프고 힘들기는 해도 양심의 소리에 늘 귀를 기울이는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고운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대원(大原)

박 완 규  올림







 

 오늘 사진은

김영완 작가님이 구례 사성암에서

오돌오돌 떨면서 담아온 밤하늘의 아름다운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