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文化); 책과 생각; 건강

늦가을 연서... / 박완규의 메일로 여는 아침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11. 18. 07:54


 

 

 


 


 

 

 

늦가을 연서...

 

 

  

 




어제는 아침 일찍 대산으로 출발했습니다. 가는 데만 4시간. 그리고 거기서 손님과 점심 먹고, 일 좀 보고, 부리나케 여수에 왔다가, 지인의 모친상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곡성에 갔다가, 또 다시 친구의 부친상이 있는 광주까지 다녀왔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3시. 잠깐 눈을 붙이고 회사에 출근을 했습니다. 요즘은 저문 나이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서 쉬이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습니다. 어디 저만 그러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밤을 지새우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겠지요.


마치 요즘은 미친 세상 같습니다.


큰일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동안의 태도를 바꿔서 임기 중에 "하야나 퇴진은 없다."는 의사표시를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싸움을 해야 할까요? 국민만 죽어나게 생겼습니다.


올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습니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아무리 추워도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지내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감기에 걸려서 콜록콜록하고 있습니다.


몸뚱이 하나로 세상을 버텨온 놈인데 지금까지 그렇게 말을 잘 듣던 이놈의 몸뚱이가 요즘은 힘들면 힘들다고,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버티고 있습니다. 그래도 억지로 끌고 가니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 반항을 합니다.


이놈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제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하는 사이에 세월은 어느덧 입동을 지나고 소설이 코앞입니다. 계절은 속절없이 차가운 동토의 겨울로 치닫고 있는 중입니다.


아! 이런 날은 옛날 애인이 생각납니다. 그러고 보니 유안진 시인의 ‘옛날 애인’이라는 두 줄짜리 시가 생각납니다.



봤을까?
날 알아봤을까?

 


내 옛날 애인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ㅋ

 


 

 

  



 

 

 

 

 

 



 

며칠 전에 어느 분의 병문안을 다녀왔습니다. 병이 깊어서 중환자실에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그 병원에서는 하루에 두 번의 면회만 허용했는데 그 짧은 면회시간에 잠깐이지만 얼굴을 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 침대에 계시는 할머니 한 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중환자인 할아버지를 열심히 쓰다듬고 계시는 할머니였습니다. 그 짧은 면회시간에 할머니는 물수건으로 할아버지의 얼굴을 닦아주고 온 몸을 닦아준 다음에 열심히 팔다리를 주무르고 계셨습니다.


입으로는 뭔지 모를 혼잣말을 열심히 하면서 말입니다. 아마도 빨리 일어나라는 주문 같았습니다. 할머니의 표정에는 절절함이 잔뜩 묻어있었습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아버지는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겨우 숨만 쉬고 계셨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공기 한 모금을 자신의 힘으로 마시지 못하고 기계의 힘에 의지하고 계셨습니다. 의식이 왔다 갔다 하시던 할아버지는 그렇게 누워서 겨우 눈만 껌뻑껌뻑 하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늘 감사해야 하는 이유 하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고, 날마다 바가지를 긁기는 하지만 마누라에게 잘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중환자실에 누워있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내 힘으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내가 처한 환경이 아무리 힘들어도 중환자실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아내에게 잘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제 아내가 김태희나 전지연이보다는 조금 못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제가 어느 날 아파서 드러누우면 제 곁에서 저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저를 씻겨줄 유일한 사람이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마누라가 아픈 저를 버리고 가면 제가 어찌 살 수 있겠습니까? 반대로 제 마누라가 아프면 그 병수발도 제 몫이 될 것입니다. 그것을 어찌 두 아들에게 맡기겠습니까? 아니면 며느리들에게 맡기겠습니까? 당연히 제가 해야지요.


엊그제는 아끼는 2년 후배가 갑자기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 열심히 살았던 친구였는데 말입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삶이 참 허무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루게릭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 어느 분의 글을 읽고 가슴이 아렸습니다.


그녀가 죽기 바로 전에 쓴 글의 일부입니다.



“우리 아들, 하얀 이를 보이며 환하게 웃던 얼굴 어디로 갔나. 아픈 엄마 때문에 학교도 휴학하고 군대도 연기하고, 아들의 소중한 시간은 자꾸만 흘러간다. 남편과 아들이 교대로 밤에 뒤척이지 못하는 내 몸을 바꿔준다.


아들은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여기저기 몸을 주무르고 자세를 고쳐준다. 누군들 단잠을 자고 싶지 않겠는가.... 


우리 모자는 함께 쇼핑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시식코너에 가면 아들은 쑥스러워 해서 엄마가 먹여주곤 했는데, 이제는 엄마가 아파 손을 못 쓰게 되니까 아들은 쑥스러움을 감추고 음식을 엄마 입에 넣어주며 웃곤 했다. 그 모습이 그립고 아른거린다.”



이렇게 아들이 날마다 눈에 아른거린다는 이 분은 이 글을 쓰고 며칠 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이렇게 인간은 누구나 죽기 마련입니다.


조금 슬프고 조금 기가 막힌 경우도 있기는 하겠지만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도 저녁에도 광주에 있는 장례식장에 갑니다. 환절기가 되니 이렇게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보면서 지금보다 조금만 더 겸손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기고만장 하지 않고 조금 더 낮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내 자신과 내 주변 사람이 편해지지 않겠습니까.


고운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대원(大原)
박 완 규  올림








오늘 사진은

박근세 작가님이 담아온

여수 밤바다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