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크리스마스카드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12. 14. 11:39

크리스마스카드|성경 말씀 묵상

은혜 | 조회 77 |추천 0 |2016.12.13. 15:32 http://cafe.daum.net/seungjaeoh/J75F/193 

12월의 말씀 산책

 

연말연시가 되면 옛날엔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이 너무 많이 와서 이런 허례허식 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오는 카드를 다 진열해 놓을 수가 없어서 빨래 줄처럼 벽에 23중으로 줄을 치고 걸어 놓은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은퇴한 탓도 있겠지만 이메일이나 카톡 등 간단한 통신매체를 통해 소식을 전하고 말기 때문에 자연 카드를 보내는 일이 줄어진 것 같다. 일본 유학생 중에 근하신년(謹賀新年)이 한국에서 주로 쓰는 새해 인사말인줄 알았는데 일본 가니 이 글을 더 많이 쓰고 있더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보기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사하다는 말도 인색하지만 연하장으로 새해 인사를 주고받는 민족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난하고 핍박 받는 민초들이 많아서 그런 인사하고 지낼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는 일본의 한국 강점기에 우정국이 생기고 신문을 발간하게 되자 일본인을 본받아 근하신년이라는 광고를 신문에 내고 또 연하 엽서들을 만들어 일본인들이 하는 일들처럼 새해 인사를 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실 일본에서는 연하 카드가 너무 많아서 연말연시에 연하장을 10억장이나 찍는다는 말도 있다.

매년 내게 제일 먼저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주는 분은 실로암 안과병원의 김선태 목사님이다. 그리고 다음은 내 고등학교 때의 제자 이숙자 권사. 다음은 기관에서 의례적으로 보내는 문안 카드 등이다. 나도 요즘은 파워 포인트(Power Point)로 일 년을 돌아보는 사진을 편집해서 보내고 거기에 간단한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첨부한다. 그런데 이것은 오랫동안 문안도 드리지 못했던 분들에게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인사일 뿐 사적인 애정이 전혀 담겨 있지 못한 것이었다. 안 믿는 사람에게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면 복된 말씀을 전하는 전도가 되고, 지친 일선 군인에게는 힘이 되며, 입원 환자에게는 위로가 된다는데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카드를 금년에도 보내야 되는가?

나는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받은 크리스마스카드를 다시 뒤져서 그 내용들을 읽어 보았다. 제일 많이 보내준 사람은 하와이에서 사귄 릴리안(Lillian)이라는 여인이다. 1966년에 하와이 대학의 EWC에 다니는 동안 만난 사람인데 매주 교회에 차편을 제공하고 성가대를 같이 했으며 크리스마스 때는 와이키키 해변의 일리카이 호텔에서 메시아의 할렐루야 합창도 했었다. 내가 귀국 후 1969년에 그녀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길도 좋지 않아 터덜거리는 도로로 버스를 타고 경주의 불국사를 방문하고 산길을 올라 석굴암까지 갔었다. 그러나 지금(89)은 성가대는 하지만 골다공증으로 자유롭지 않다고 한다. 5살밑인 우리도 힘들어 우리가 하와이에 갈 수도 없고 그녀가 우리에게 오기가 힘들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이 그 편지 안에는 있었다.

두 번째로 많이 편지를 보내 준 이는 하와이에서 나와 한 방을 쓰던 데이비드다. 당시 그는 총각이었는데 같이 EWC에 있던 일본 처녀와 결혼해서 지금은 미시건 주에서 살고 있다. 1966년부터 알고 지냈으니 50년 지기이다. 지난 번 보스턴 아들 집에 갔더니 디트로이트 공항까지만 오면 자기가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이스트 랜싱에서 디트로이트까지의 왕복 차편과 자기 집 곁에 있는 호텔(Hampton Inn)에 묵게 해 주었던 친구다. 나이는 8살 쯤 아래지만 그의 아내는 일본인으로 미국에서는 소수민족이다. 세계 제 2차 대전 때는 일본인은 다 아이다호 주에 연금 되었었다. 그때는 포로처럼 지냈지만 지금은 소수민족으로 미국에 무엇인가 기여를 해야 한다고 그의 아내는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주며 살고 있다. 그는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면 반드시 A4 용지 하나에 가뜩 그의 사연을 써서 보낸다. 언제든 놀러 오면 온 가족이 다 와도 환영하겠다고 말하며. 거기서도 나는 주님의 이웃 사랑의 혼을 읽는다.

그밖에도 나에게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온 사람 중에는 세상을 뜬 사람도 많다. 1980년도 초에 내가 학위과정에 있을 때 같이 와 있던 학생이 학위를 마치고 귀국해서 교수가 되어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은퇴 후 최근 연락이 되어 같이 점심식사를 하자고 약속을 했는데 그 교수의 크리스마스카드도 발견했다. 함께 성경공부를 했으며 교회도 같이 다녔던 동료다. 그 때 카드에 담긴 사랑이 지금까지 계속된 것도 감사하다.

나도 공적인 인사말이 아니고 금년에는 몇 장이 안 되더라도 사적인 정성이 담긴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