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A Little Brown Church(대덕한빛교회 황성하)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12. 18. 08:45

A Little Brown Church(대덕한빛교회 황성하)|우리들의 이야기

황성하 | 조회 77 |추천 0 |2015.03.18. 10:57 http://cafe.daum.net/seungjaeoh/J3t5/18 




A Little Brown Church

                                                                     황성하

There's a church in the valley 

by the wild wood

No lovelier place in the dale

No spot is so dear to my childhood

As the little brown church in the vale

산기슭 골짜기에 작은 교회 하나

골짜기에 더 아름다운 곳 없네

내 어린 시절 가장 그리운 곳

골짜기의 작은 갈색 교회



내가 고등학교시절에 즐겨 불렀던 노래다. 곡도 아름답지만 가사도 퍽 서정적이어서 당시 뭇 학생들로부터 사랑 받던 노래다.


내가 어려서 다니던 교회도 위의 노래에서처럼 산골짜기 기슭에 있었다. 갈색교회는 아니었지만 녹음이 짙은 산기슭에 자리한 아담하고 아름다운 교회였다. 양지바른 산기슭에 고즈넉이 비켜 앉은 이 사랑스런 교회는 까닭모를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며 작은 궁전처럼 빛을 발했다.


교회 이름은 해곡교회, 시골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이 교회는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세우신 교회다. 할아버지 황복연씨는 1923년 5월 26일에 맹현리(MC Callie. H. Douglas)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1952년 해곡교회에서 장로가 되었으며 아버지 황인학씨는 1932년 10월 5일에 김아열(Bruoe A. Cumming)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1964년 광주 대인교회에서 초대 장로 안수를 받았다. 


교회 앞에는 우리 밭이 있었고 밭 언저리에는 산소통을 반으로 잘라 만든 종이 걸린 종탑이 있었다. 예배 시간이 되면 아버지는 나무를 깎아 만든 종망치를 들고 종탑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산소통 아랫부분을 힘껏 두들겼다. 가끔 망치가 빗맞아 비협화음을 냈지만 산소통의 청아한 음은 동네 멀리멀리 까지 울려 퍼지며 예배시간이 가까워 옴을 알렸다. 주일낮 밤, 수요일 그리고 매일 새벽마다 일 년 내내 눈이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종소리는 울려 퍼졌다.


교회는 4-50명 정도를 수용 할 수 있는 작은 교회였다. 교회에는 강대상 하나와 한지에 붓글씨로 노래가사를 적어 묶은 차트 하나와 교회 뒤쪽에 신발장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겨울이 되어 장작 난로를 교회당 한 중앙에 설치하면 교회는 훨씬 작아 보였다. 의자도 없었고 작은 풍금(올갠)하나 없었다. 그러나 30여 명의 교인들은 찬송을 힘차게 불렀다. 당시 신나게 부르던 금주가가 아직도 두 귀에 쟁쟁하다.


금수강산 내 동포여 술을 입에 대지마라/건강지력 손상하니 천치 될까 늘 두렵다.

(후렴)아 마시지 마라 그 술/아 보지도 마라 그 술/조선사회 복 받기는 금주함에 있나니라.

패가망신할 독주는 빚을 내어 마시면서/자녀교육 위하여는 일전 한 푼 안 쓰려네.


설교를 하는 목회자도 없어서 매주 마다 나의 할아버지가 설교를 했고 기도는 아버지와 성덕리에 사는 옥과댁이라는 여자 집사님과 김길원 남자 집사님이 도맡아 하셨다.

가끔 선교사들이 교회를 방문했다. 이들은 아코디온을 켜며 노래를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칠 뿐 아니라 분유, 사탕, 치즈 등 먹을 것과 씨앗 등을 가지고 왔다. 당시 잊을 수 없는 귀한 선물은 토마토 씨였는데 선교사가 가르쳐 준대로 씨를 심고 가꾸자 신기하게도 토마토가 줄렁줄렁 열렸다. 이 처음 보는 열매는 감같이 생겼다고 해서 일년감이라고 불렀다. 붉은 색 일년감과 노란 색 일년감이 있었는데 두 가지 모두 맛이 탁월했다. 토마토를 썰어 양푼에 담아 사카린을 타서 먹었던 환상적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여러 해 전 나는 아내와 해곡리의 내 고향 교회를 찾았다. 그러나 해곡교회는 성장해서 좀 더 큰 교회를 지어 타지역으로 이사를 했고 옛날 올곧은 신앙으로 교회를 지키던 유 장로님도 그 가족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Little Brown Church는 온데 간 데 없었다. 내가 그리던 아름다운 작은 교회 터와 우리 집 터는 둘레를 커다란 정원석으로 장식한 음식점이 들어 서 있었다. "고향에 찾아와 고향을 잃어버렸다"고 한탄한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절규가 귓전을 때렸다. 허탈감과 쓸쓸함 그리고 아쉬움이 엄습해왔다. 괴석들 사이에 드문드문 핀 붉은 영산홍들이 전혀 예뻐 보이지가 않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추억을 주우려던 소박한 꿈은 무너져 버렸으나 가슴 한 구석에 아직도 남아 있던 그리움으로 음악보다 아름다운 종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How sweet on a clear Sabbath morning,

to list to the clear ringing bell.

Its tones so sweetly are calling, 

O come to the church in the vale.

맑은 주일 아침 청아하게 울리는 교회종소리는 

정말 아름다워요,

우리를 부르듯 상쾌하게 울려 퍼지는 그 종소리

오, 어서 오세요 여기 골짜기 교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