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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록위마’ 비판 판사 “행정부 패도정치 막을 곳은 사법부뿐” / 한겨레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12. 21. 04:32

‘지록위마’ 비판 판사 “행정부 패도정치 막을 곳은 사법부뿐”

한겨레 등록 :2016-12-20 05:00수정 :2016-12-20 09:14

 

[밥앤법] 2년만에 입 연 김동진 부장판사

‘국정원 댓글’ 원세훈 무죄 판결에
법원 내부망에 비판글 올렸다가
이례적으로 ‘정직 2개월’ 중징계

“징계위, 2년전 비판글까지 언급
내가 비판한 법관 징계위원 포함
절차의 공정성에 문제 있었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 업무일지엔
김기춘이 그를 ‘본보기’ 정조준

사법부 길들이기 정황 나왔지만
법원 쪽은 ‘단순 의혹제기’ 치부
“국민들이 법원을 어떻게 볼지…”

2014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비판한 글을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렸다가 정직 처분을 받은 김동진(47)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2년여 만에 입을 열었다. 김 부장판사는 앞서 자신이 비판했던 대법원 판결의 주심 대법관이 당시 징계위원이었다며 ‘절차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2014년 작성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엔 대법원의 징계 조처에 앞서 김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가 언급되어 있었다. 김 부장판사에 대한 일련의 징계 과정이 대법원의 ‘법관 길들이기’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직 결정한 징계위원회 위원은 2년 전 비판했던 대법관”

김 부장판사는 2014년 9월12일 원 전 원장이 1심에서 선거법 무죄 판결을 받자 법원 내부통신망(코트넷)에 비판글을 올렸다가 2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다. 김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의 국정원 댓글 판결은 ‘지록위마’(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함)의 판결이라고 생각한다”며 “명백한 범죄사실에 대하여 담당 재판부만 ‘선거개입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것이 지록위마가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비판했다. 그의 글은 법원 내부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대법원은 발빠르게 대응했다. 대법원은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고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3시간 만에 그의 글을 직권삭제했다. “소금과 같은 지적을 가차없이 삭제했다”, “(코트넷 글 삭제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적용해 삭제한 것 아닌가”라는 법원공무원들과 현직 판사들의 비판이 잇따랐다. 하지만 9월26일 수원지법은 김 부장판사가 법관의 품위를 손상하고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렸다며 대법원에 징계를 청구했다.

김동진 인천지법 부장판사. 김 부장판사 제공
김동진 인천지법 부장판사. 김 부장판사 제공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위원장 민일영 대법관)는 그해 11월7일과 12월3일 두 차례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징계위원회는 법관 등 내외부 위원 각 3명과 위원장으로 구성된다. 내부위원 가운데 한명인 ㄱ 대법관은 2012년 김 부장판사가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징계처분을 받은 ‘횡성한우사건’의 주심이었다. 김 부장판사는 다른 지역 한우를 횡성에서 한달 이상 키운 뒤 도축해 ‘횡성한우’ 브랜드를 붙여 판매한 축산업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는 대법원에서 자신의 판결이 파기환송되자 법원 내부통신망에 ‘대법원은 교조주의에 빠져 있다’는 글을 올렸다가 서면경고 처분을 받았다.

김 부장판사는 “당시 징계위원회에서 2년 전 ‘교조주의’ 글이 여러 차례 언급됐다”고 했다. 그는 “‘지록위마’ 사건뿐 아니라 ‘교조주의’ 사건에 대해서도 계속 질문이 던져졌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몹시 위축됐다”고 했다. 또 “징계사건에 대한 사건당사자나 이해관계인에 해당할 수 있는 ㄱ 대법관이 징계위원으로 있다는 점에서 절차적 하자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고 했다.

법관징계법은 ‘징계 결정의 공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 때에는 위원회에 그 사실을 서면으로 서명해 기피를 신청할 수 있다’는 기피·회피 관련 규정을 두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징계위원회 심의·결정은 비공개이기 때문에 징계위원이 누구였는지 확인해줄 수 없다”며 “김 부장판사는 기피 신청이나 징계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도 안 했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징계를 받는 사람이 기피나 이의신청을 하면 더 괘씸하게 여길 것이 두려워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의혹은 추측 불과” 대법원에 김 부장판사 “자중 않는 대법원에 참담하다”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김 부장판사가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했다며 정직 2개월 처분을 내렸다. 재판 업무에서 배제된 것은 두달이었지만, 사회적 고립은 2년 넘게 이어졌다. ‘지록위마’ 글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갈기갈기 찢긴 실을 담은 우편물 등 협박성 편지가 사무실로 전해졌고, 주변에선 ‘정치하려는 것이냐’는 비아냥도 있었다. 정직 등 중징계는 결격사유에 해당돼 법원의 연수 등 각종 프로그램에 지원하지도 못했다. 주변의 입길과 수군거림에 시달리던 김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통신망이나 언론 접촉을 일체 삼갔다.

그가 침묵을 깬 것은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이 지난 9일 <한겨레> 보도에 반박하는 내용으로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 때문이다. <한겨레>는 그보다 3일 전 김영한 전 민정수석 업무일지를 근거로 김 부장판사가 ‘지록위마’ 글을 올리고 열흘 뒤인 2014년 9월22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김 부장판사를 ‘비위법관’으로 규정해 직무배제 방안을 강구하도록 언급했다고 보도(12월6일치 3면♣])했다. 고 처장은 <한겨레> 보도에 대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추측이거나 단순한 의혹 제기에 불과”하다며 “소속법원장은 9월17일 이전에 해당 법관에 대한 징계청구가 불가피하다는 결정을 했다”며 “해당 법관에 대한 징계 청구 여부에 관한 의사결정이 (업무일지 메모) 이전에 이미 이뤄졌다”고 했다. 김 전 부장판사 징계에 외부 영향은 일절 없었고, 징계 절차와 내용 모두 정당했다는 취지였다.

김 부장판사는 고 처장의 해명에 참담함을 느꼈다. 그는 “당시 비판 글을 올리고 난 뒤 열흘간 징계절차의 조짐은 있었지만, 징계수준이 정직의 중징계에 이른다고 볼 상황은 아니었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비판 글을 올리고 열흘 뒤인 22일 양승태 대법원장 등에게 “정직과 좌천 등 가혹한 처분은 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글을 보냈다. 김 전 실장이 정직에 해당하는 ‘직무배제 방안 강구’를 언급한 날과 같은 날짜다. 김 부장판사는 “김 전 실장이 진심을 호소한 내 글을 읽거나 보고받아 (징계의) 큰 방향을 정한 것이라면, 배신감을 느낀다”고 했다. 또 “의혹이 제기됐는데도 대법원이 확인되지 않은 것을 진실로 단정하는 것처럼 보여 안타깝다”고도 했다.

고 처장이 법원 내부통신망을 통해 의견을 밝힌 것을 두고 법원 내부에서도 “김 전 부장판사를 두번 죽인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비망록에서 청와대가 사법부 길들이기를 시도한 여러 정황이 나왔는데 다른 사안에 대해선 의견을 밝히지 않으면서 유독 김 부장판사 징계에 관해서만 외압이 전혀 없었다고 입장을 밝힌 데 의문이 든다. 판사들 사이에 의혹이 번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읽힌다”고 지적했다.

“고등부장 승진 앞두고 판결이 수렴하는 구조 말하고 싶었다”

당시 법관징계위원회가 김 부장판사의 글에서 문제삼은 것 중 하나는 해당 재판장에 대한 명예훼손적 표현의 사용이었다. 김 부장판사는 ‘지록위마’ 글에서 “재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심사를 목전에 두고 입신영달에 중점을 둔 ‘사심’이 가득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김 부장판사는 “해당 법관에겐 아직도 인간적으로 미안하다”고 했다. 다만 “법관 한명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고등법원 승진을 앞두고 판사들이 (한쪽으로) 수렴하는 구조적 문제를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 2년간 ‘지록위마’는 일정 부분 현실이 됐다.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국정을 농단하고 헌정질서를 유린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그해 말 <교수신문> 조사에서 교수들은 한해를 요약하는 사자성어로 ‘지록위마’를 꼽았다.

김 부장판사는 ‘지록위마’라는 글을 쓴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대한 범법행위를 한 국정원장은 석방돼서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고, 일반인들은 그보다 훨씬 사소한 일로 처벌받는데 국민들이 법원을 어떻게 볼까요. 판사가 어떻게 재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행정부의 패도정치를 막을 수 있는 건 사법부입니다. 후회는 안 합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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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② 한 문장이 바꾼 세상
  • ③ 동네변호사가 간다
  • ④ 판결 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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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75308.html?_fr=mt2#csidx5f4c377559ba4ce849e3847e817163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