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씨 부모인 ‘고규석’ 편과 ‘이숙자’ 편
80년 5월 광주에서 아버지 숨진 뒤 일화 실려
80년 5월 광주에서 아버지 숨진 뒤 일화 실려
고은 시인
■ <만인보> 고규석·이숙자 편 원문 만인보 단상 3353-고규석 이장 노릇/ 새마을지도자 노릇/ 소방대장 노릇/ 예비군 소대장 노릇/ 왕대 한 다발도 번쩍 들었지/ (중략)동네방네 이 소식 저 소식 다 꿰었지/ 싸움 다 말렸지/ 사화 붙여/ 사홧술 한잔 마시고/ 껄껄껄 웃고 말았지/ (중략)누구네 집 서울 간 막내아들/ 달마다 담배 사보내는 것도 알고/ 누구네 집 마누라가/ 영감 몰래/ 논물 몰래 대어/ 옆논 임자하고 싸운 일도 알고/아니 아니/ 누구네 집 삽 두 자루/ 누구네 집 나락 열 가마/ 남은 것도 아는 사내/ 고규석/ 다 알았지/ 다 알았지/ 그러다가 딱 하나 몰랐던가/하필이면/ 5월 21일/ 광주에 볼일 보러 가/ 영 돌아올 줄 몰랐지/ 마누라 이숙자가/ 아들딸 다섯 놔두고/ 찾으러 나섰지/전남대 병원/ 조선대 병원/ 상무관/ 도청/ (…) /그렇게 열흘을/ 넋 나간 채/ 넋 잃은 채/ 헤집고 다녔지/ 이윽고/ 광주교도소 암매장터/ 그 흙구덩이 속에서/ 짓이겨진 남편의 썩은 얼굴 나왔지/ 가슴 펑 뚫린 채/ 마흔살 되어 썩은 주검으로/ 거기 있었지/아이고 이보시오/ (중략)다섯 아이 어쩌라고/ 이렇게 누워만 있소 속 없는 양반 만인보 단상3355-이숙자 고규석의 마누라 살려고 나섰다/ (…)/ 담양 촌구석 마누라가/ 살려고 버둥쳤다/광주 변두리/ 방 한 칸 얻었다/여섯 가구가/ 수도꼭지 하나로/ 살려고 버둥쳤다/여섯 가구가/ 수도꼭지 하나로 물 받는 집/ (중략)남편 죽어간 세월/ 조금씩/ 조금씩 나아졌다/ 망월동 묘역 관리소 잡부로 채용되었다/ 그동안 딸 셋 시집갔다/막내놈 그놈은/ 펜싱 선수로/ 아시안 게임 금메달 걸고 돌아왔다/늙어버린 가슴에 남편얼굴/ 희끄무레 새겨져 해가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