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창1:1-8, 요1:1-5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길을 막고 이렇게 물어봅니다. "왜 사십니까?" "무엇 때문에 사십니까?" 그때 뭐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까? 아마 대답보다는 미친 사람 취급하고 아래위를 한번 훑어보고는 그냥 지나쳐 버릴는지 모릅니다. 사실 이런 질문에 대해 우리는 대답할 준비가 잘 되어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왜 사는지? 내가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지 별로 생각해 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는 사람을 제외하고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주어진 삶이기에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종종 TV에서 부모를 찾는 내용이 방송됩니다. 부모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모를 알아야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를 찾고 부모가 누구며 어떤 가문인지를 안다 해도 그 정도로도 자신이 누구인가? 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본질적인 대답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이며, 왜 사는지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대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 인생들을 여기에 있게 하셨고, 우리가 그분으로 인해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바르게 알면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새해를 시작하는 첫 신년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며 두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입니다.
신약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요1:1-3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 성자 하나님으로 성부 하나님과 함께 창조의 사역을 이루신 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신구약성경 전체의 첫 장인 창세기 1장은 참으로 중요하기 이를 데 없는 내용들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우리가 누리고 있는 온갖 자연적 환경들이 최초로 어떻게 조성되었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은 천지를 비롯한 만물이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 말씀으로 지으셨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해와 달과 별들도 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고, 빛과 어둠, 낮과 밤도 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며,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종 열매 맺는 나무들도 다 하나님께서 나게 하신 것이고, 온갖 종류의 하늘의 새와 땅의 짐승과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물고기도 다 하나님께서 생기게 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남녀 인간은 하나님의 특별한 창조임을 강조합니다. 또 사람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여 하늘과 땅과 물에 있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고, 풀과 채소와 열매들을 그들의 먹을거리로 삼는 질서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임을 말해줍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이 아니고서는 아무 것도 없었고 아무 것도 있을 수 없었음을 말해줍니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오직 말씀으로 지으셨다고 선언합니다. 본문 3절은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고 합니다. 본문 6-7절은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고 합니다. 그 외의 모든 것도 하나님께서 그저 그것들이 있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생겨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하나님의 전능하고 주권적이며 거역할 수 없는 의지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종속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은 인생의 말년을 매우 우울하게 보냈습니다. 다윈이 운명하기 몇 달 전 호프 부인이 병실에 누워 있는 그를 방문했습니다. 성경을 펼쳐 들고 있던 다윈에게 호프 부인이 물었습니다. “지금 무엇을 읽고 계신가요?”
다윈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성경입니다. 아주 고귀한 생명의 책이지요.” 호프 부인은 창세기를 펼쳐 보이며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의 허구를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다윈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며 놀라운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참 미숙한 젊은이였습니다. 나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해 의심을 품고 접근했습니다. 진화론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진화론을 학문이 아닌 창조론과 적대되는 종교처럼 신봉하게 되었지요. 제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증거 해 주십시오.” 진리는 죽음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진위가 가려집니다. 다윈은 죽음을 앞에 두고 진화론이 아닌 창조론을 진리로 고백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창조의 사역에 성부 하나님과 함께하신 태초부터 계신 분임을 알고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입니다.
사도 요한은 창조 때의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의 사역에서 자세히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곧 성부 하나님, 말씀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사역입니다. 창1:2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여기 하나님의 영은 곧 성령입니다. 그러기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은 요 8:58에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세례 요한은 예수님 보다 6개월 먼서 태어난 자이지만 그가 예수님에 대해 요1:15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골로새서1:15-17에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 말씀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분임을 확실히 알고, 믿고, 전하는 성도가 됩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분이 다스리시고 그분이 섭리 하십니다. 예전에는 자동차나 전자제품을 사면 3년간 A/S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10년 보증을 한다고 광고합니다. 그만큼 자기들이 만든 제품에 자신이 있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없으면 10년 보장이란 말을 못합니다. 제품을 사면 바로 등록을 하고 계속 관리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시고 평생 관리해 주시고 평생 A/S를 해 주십니다. 그렇게 하시더니 아예 이 땅으로 오셨습니다. 당신이 만든 땅에 오셔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함께 사십니다. 우리 교회에 컴퓨터를 잘 알고 고치는 김현중 교우가 있어 이상이 생길 때 점검해 주어 많은 도움이 됩니다. 복사 용지가 떨어지면 공급해 주는 박광희 교우, 황권사님이 있어 걱정 없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천지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이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의 문제를 다 맡아 주십니다. 이것이 은혜 위에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했습니다. 예수님은 요6:39에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했습니다. 눅 22:32에서는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게 될 베드로에게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했습니다. 마28:20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끝까지 지켜 주시고 책임져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심판하실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책임지고 돌봐 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무엇이 두려울 것이 있습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돌보심을 믿고 담대하고 용기 있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새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3.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빛으로 오신 하나님입니다.
신약 본문 요1:4-5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했습니다. 미움과 원망, 시기와 질투, 탐욕과 이권, 부정과 불법, 광폐와 교만, 분쟁과 살인, 방탕과 사치, 음란과 색욕의 죄악으로 어두워진 세상에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분이 빛으로 오신 성자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워낙 어두워 빛이신 예수님을 미워하고,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인물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세례 요한입니다. 요한은 빛이요,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 하려고 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생명의 말씀이시고 빛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게 하려고 세상에 왔습니다. 성경은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요 1:8)고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생명과 빛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게 되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고, 어두움의 일을 벗어 버리고 빛의 자녀가 되어 삽니다. 영생 얻는 후사가 됩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 일을 증언하기 위해 요한복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요20:31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요한복음을 통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믿어 생명을 얻게 하려고 이 복음서를 기록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성경의 복음서를 두고 생각해볼 때,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생애에 있었던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되어진 반면, 요한복음은 이 사건들이 갖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신 사건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 마가, 누가는 사건에 대한 기록만 있습니다. 하지만 유독 요한복음에서만 그 기적적인 사건에 뒤이어 예수님께서 백성들에게 설명해 주신 '생명의 떡'에 관한 말씀을 기록해 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오병이어 사건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밝혀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전체에 흐르는 한 가지 주제는 사도요한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과 생명과 빛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믿고 받아들이면 영생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 하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예수님을 바로 아는 눈이 열려 바른 신앙을 고백하고 주님을 본받아 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예배는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듣는 귀가 열려야 하고, 눈이 열려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보는 눈이 열리지 않으니 종교 지도자들이 십자가에 못 박게 되었고, 무리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쳤고, 침 벧고, 비웃고, 채찍질 하고, 그 옷을 뺏어서 제비를 뽑고 한 것입니다.
요한도 한 때 주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 예수님을 바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태초부터 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요한은 그분을 위해서 죽기로 결심을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예수님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모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내게도 주님을 보여 주소서!” “주여! 내게도 주님에 대해 들려주소서!” “주여! 내게도 주님을 만나게 하소서!” “주여! 내게도 주님을 체험케 하소서!” 우리 모두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바로 믿고 만나는 체험을 통해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받고, 응답받고, 치료받고, 위로받고, 예수님과 함께 세상으로 나가 승리하는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빛으로 오신 하나님입니다. 아멘.
<2017. 1. 1. 성산 교회. http://cafe.daum.net/sungsansarang>
호현낙선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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