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 뇌물죄 겨냥하는 특검
"내가 한 푼이라도 받았나" 발뺌 쉬워
“한 다리를 더 거쳐야 하는 탓에 일반 뇌물사건보다 물리적 구조 자체가 복잡할 수밖에 없다.”(지방법원 부패전담부 부장판사)
“직접 받지 않았으므로 공무원 입장에선 변명의 여지가 많다. 무죄가 나올 가능성도 크다.”(지방검찰청 특수부 검사)
제3자 뇌물죄에 대한 재판과 수사를 경험해 본 법조인들의 평가다. 관련 사건 경험이 풍부한 법조인들조차 어렵다고 하는 이유는 뇌물을 직접 받은 게 아닌 탓에 빠져나갈 틈이 많아서다. 공무원 측이 “나는 한 푼도 받지 않았다”며 자신의 정책 집행에 대해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뇌물을 준 쪽에서도 “공무원과 상관없는 제3자와의 통상적 거래였다”고 발뺌하면 이를 반박하기가 만만치 않다. 박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돈을 받은 미르·K스포츠재단과 대통령은 별개”라는 입장의 답변서를 제출하고 각 기업이 청문회에서 “재단 설립 취지에 공감해 기부금을 냈다”고 진술한 것도 이 같은 입증의 어려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도 많다. 최근 대법원에서 확정된 박범훈(68)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사건에서 제3자 뇌물수수 혐의 부분은 무죄였다. 이모 전 중앙대 상임이사(뇌물제공자)로부터 대학 통폐합 승인 신청이 잘 처리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받은 박 전 수석(공무원)이 자신이 이사로 있는 중앙국악예술협회(제3자)에 대한 후원을 요청했다는 게 공소사실의 요지다. 법원은 기존에도 협회에 기부를 해 온 점, 학교 관계자들로 구성된 단체라 요청이 없었어도 기부를 할 가능성이 컸던 점 등을 근거로 무죄 판단했다.
검사 출신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일반 뇌물사건은 해당 공무원한테 ‘그렇다면 왜 거액의 돈을 받았느냐’고 물으면 답하기가 어렵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대가 관계가 있다는 추론이 쉽게 나온다. 하지만 제3자 뇌물은 다른 사람이 돈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이 금품이 뇌물제공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공무원이 정책을 수행하는 대가로 지급됐는지를 밝혀내기 위해선 더 많은 주변 정황증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입증이 어려운데 특검팀은 왜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하려 할까. 통상 검찰은 공무원이 직접 뇌물을 받지 않아도 ‘생활을 함께하는 경제공동체’라는 논리를 적용해 유죄 판결을 받아 낸다. 즉 자녀나 배우자가 금품을 받았다면 공무원이 직접 뇌물을 받은 것으로 본다는 취지다. 하지만 박 대통령 사건에서는 일반 뇌물죄 적용이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많다.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가족, 부하 직원, 자신이 경영하는 기업이 금품을 받았다면 경제공동체라는 논리 적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미르·K스포츠재단과 박 대통령을 직접 연결시키기엔 너무 거리가 멀다. 미르·K스포츠재단-최씨, 최씨-박 대통령이 하나라는 점을 모두 입증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차라리 제3자 뇌물죄 입증이 현실적이다.”
"(직접증거) 없으면 잇몸(간접증거)으로"
실제 모든 당사자가 부인하는 상황에서 제3자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이 나온 경우도 있다. 서울고법 형사3부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으로부터 사업 진행에 대한 편의를 제공해 달라는 청탁을 받고 그 대가로 지인의 아들(제3자)을 KAI(뇌물제공자)에 입사시킨 혐의로 기소된 전 육군준장 A씨(공무원)에 대해 12월 22일 유죄를 선고했다. A씨와 KAI 측은 “정상적인 입사 전형을 거친 것이지 뇌물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 지인의 아들이 KAI에 입사하기에는 토익·학력 등 객관적 기준에서 크게 미치지 못했던 점 등 간접 증거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뇌물이 맞다고 판단했다.
김철 법무법인 이강 변호사는 “직접증거라는 ‘이’가 없으면 간접증거라는 ‘잇몸’으로 뇌물수수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검, 오늘 안종범 전 수석 소환
일부 언론이 12월 31일 보도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 대통령과 독대한 후 최씨 지원을 지시했다”는 내용도 사실로 확인될 경우 강력한 간접증거가 될 수도 있다. 특검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조사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이광수 서울변회 법제이사는 “어차피 당사자들은 부인한다. 출연금을 낸 시점을 전후로 어떤 이익이 기업에 돌아갔는지, 정책 수행 과정에 무리가 없었는지 조사해 권력의 압력이 없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증명을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