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文化); 책과 생각; 건강

상관의 지시를 아래에서 거부하려면 [박석무]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1. 27. 09:09

상관의 지시를 아래에서 거부하려면 [박석무]

                         보낸사람

다산연구소 <dasanforum@naver.com> 보낸날짜 : 17.01.23 04:02 
               

- 제 948 회 -

상관의 지시를 아래에서 거부하려면

   「고금도(古今島) 장씨 여자의 사건에 대한 기록」(記古今島張氏女子事)이라는 다산의 글을 읽어보면, 참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밝게 조사하여 억울함을 풀어줘야 할 책임을 지닌 고위 공직자들이 책임을 지지 않아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불행을 겪어야 하는 사건이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런 뒤에 암행어사 홍대호(洪大浩)가 내려와 사건의 내용을 듣고도 또한 거론하지도 않고 가버렸다(其後暗行御史洪大浩 聞之 亦默而去)”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앞뒤를 설명하면, 처녀의 몸으로 고금도(전남 완도군)에 귀양살이 하던 장씨 여자를 성희롱하는 하급 관리의 시달림에 견디기 어려워, 처녀가 바다에 투신하여 자살한 사건인데 그 지방의 책임자 사또가 상부에 돈을 뿌려 사건을 무마하고, 상급기관의 장도 돈을 받고 눈 감아 주었으며 이런 불법적인 일을 조사하여 비리를 척결해야 할 암행어사 또한 사건의 내용을 듣고도 입을 다문 채 가버리고 말았으니, 그런 억울한 일을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느냐에 대한 다산의 분노가 서려 있는 글입니다.

   “살피건대, 암행어사가 하는 일이나 상사(上司)가 하는 나쁜 정사(政事)를 수령들이 그 위의 상부에 보고하여 잘못에 대한 내용을 충분히 거론할 수 있었다. 명(明)나라의 이런 법은 매우 좋은 법이다. 조선에서는 오로지 체통만 지키느라 상사가 아무리 불법을 저질러도 수령이 감히 한마디도 말하지 못하여 민생의 초췌함이 날로 더해가고 있다”(禮際)라고 말하여 내부자의 고발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 당시의 법제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명나라에는 그런 제도가 이미 수립되어 백성들이 당하는 괴로움을 해결할 방법이 있었지만, 조선에는 그런 제도가 없어서 부정·부패를 막을 길이 없음을 한탄하는 내용입니다.

   국왕의 권한을 대행하는 암행어사가 비행을 저지르고, 한 도(道)의 도백으로 수십 명의 수령들을 지휘감독하고 그들의 근무 성적을 평가하는 막강한 권력자인 관찰사가 비행을 저지르면, 그들을 감독하고 처벌하는 사람은 국왕 한 사람뿐인데, 그들의 잘못을 국왕에게 보고할 채널이 없는 제도 아래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뜻을 다산이 밝힌 것입니다.

   200년 전의 다산의 뜻은 현재에도 제대로 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내부고발 신고·조사·심사를 담당하는 국무총리 소속 국민권익위원회에는 자체 조사권이 없습니다. 부정부패 방지법과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있지만 신분보장이나 불이익 회복에 대한 요구만 할 수 있을 뿐 강제성이 없습니다. 내부고발자들에 대한 보호와 불이익에 대한 해결책이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 언론에 「내부고발자 보호법」과 「내부고발자 보호재단」을 만들어 참다운 내부고발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를 확립하겠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참으로 환영할 일입니다.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큰 뜻으로 내부고발을 감행하다 온통 불이익만 당한 이문옥 감사관, 이지문 중위, 장진수 주무관, 김영수 소령 등 피해자들이 앞장서서 그런 일을 하겠다는 보도 내용입니다. 요즘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보듯 내부고발자 보호책만 완전했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국회는 정말 무엇을 하고 있는지, 200년 전의 다산의 뜻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라도 내부고발자 보호책에 대한 특단의 법률제도가 하루 빨리 이뤄지기를 기대해봅니다. 그래야 잘못된 상부의 지시를 아랫사람이 거부할 수 있게 됩니다.

박석무 드림

글쓴이 / 박석무

·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 실학박물관 석좌교수
· 전 성균관대 석좌교수
· 고산서원 원장

· 저서
『다산 정약용 평전』, 민음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역주), 창비
『다산 산문선』(역주), 창비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조선의 의인들』, 한길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