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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정유(丁酉)년 새 아침의 꿈 / 김정남(언론인)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1. 31. 11:02

정유(丁酉)년 새 아침의 꿈 [김정남]

                        보낸사람

다산연구소 <dasanforum@naver.com> 보낸날짜 : 17.01.31 04:07

제 842 호
정유(丁酉)년 새 아침의 꿈
김 정 남 (언론인)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대통령 선거가 있던 그해 이른 봄, 나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당시 새누리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던 박근혜에 대하여,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안 되고 될 수도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조선일보 2012년 2월 11~12일 자). 이 보도가 나간 뒤, 협박성 경고와 몸조심하라는 충고를 동시에 받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내가 박근혜는 되어서도 안 되고 될 수도 없다고 한 것은 그가 시대에 역행하는 인물인 데다, 국민을 하나로 통합시키기보다는 분열시킬 수 있는 소지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역사는 반민주에서 민주로, 불의에서 정의로, 분열에서 통합으로, 갈등에서 화해로 가는 것이 정도인데, 그는 존재 자체로 역사가 흘러가야 할 정(正)의 방향에 역행하는 사람으로 내게는 보였던 것이다. 실제로 그는 유신 시대에 부당하게 처형된 인혁당 사건 등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었다.

참 못난 대통령, 참 나쁜 대통령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그가 당선되면 역사가 후퇴하리라던 나의 예언은 용하게도 들어맞았다. 무엇보다 블랙리스트가 그것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박근혜 정부에서 유일하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사람,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명쾌하게 “블랙리스트는 이 정권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좌익이라는 누명을 씌워, 광범위하게 조직적으로 차별하고 핍박한 범죄행위로 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30년 뒤로 돌려놨다”고 분명하게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박근혜 후보를 보았던 눈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또 순진했던 것인가를 나날이 절감하고 있다. 처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때만 해도, 우리는 대통령 아닌 대통령, 참 못난 대통령을 가졌었구나 생각했다. 그 후 양파껍질이 한겹 한겹 벗겨지듯, 박근혜와 최순실의 진실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는 국민으로서의 참담한 느낌과 함께 참 나쁜 대통령, 참 못된 대통령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최근 들어 특검과 헌재 등에 대응하는 일련의 모습을 보면서는 그에게 과연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인간성과 예의, 그리고 양심이란 것이 남아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또 추위와 함께 그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자발적으로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연인원이 1천만 명을 넘어섰고, 이에 맞선 맞불집회는 그 기세가 커지는 모양새라고 한다. 대통령 탄핵을 놓고 해외동포사회에서조차 촛불이냐, 맞불이냐로 편이 갈라지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은 맞불집회에 고무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과연 누가 이 나라 이 공동체를 이렇게 분열시켰는지 스스로 먼저 물어볼 일이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했던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내외의 격동은 아주 불길한 예감마저 들게 하고 있다. 북핵 문제는 여전히 우리를 옥죄고 있으며, 미국·중국·일본에서 한반도를 향해서 몰아치고 있는 파도는 결코 예사롭지가 않다. 가계부채와 양극화 문제를 비롯한 경제위기 또한 겹치고 있다. 이제 이 나라, 이 공동체는 침몰할 것이냐 분열될 것이냐는 절체절명의 두 가지 위협 앞에 놓여있다.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자신과 나라를 구하는 길이다

   이 시점에서 대통령이 행여 시간을 끌어 탄핵재판을 지연시키거나, 맞불집회가 촛불집회보다 커지면 탄핵이 물 건너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렵다. 그런 조짐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결말이 나든 국민은 이미 대통령을 더 이상 대통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에게 마지막으로 기대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탄핵에 앞서 대통령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다. 그것이 그나마 국민의 가슴 속에 인간 박근혜에 대한 아련한 미련 한 가닥이라도 남겨놓고 가는 길이다. 아직도 애국심이라는 것이 남아있다면 12척의 배는 남겨두고 가야 할 것이 아닌가.

   대통령이 탄핵 전에 스스로 물러날 것을 분명히 한다면, 정치적 조율을 통해 빡빡한 정치 일정에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지를 만들 수 있다. 그보다 앞서 적어도 국민이 두 쪽으로 완전 분열되어 극한으로 대립하는 것만은 피할 수가 있다. 각 정당대표, 대선주자, 그리고 정치·사회원로들로 비상시국 정치회의를 구성, 앞으로의 정치일정과 외교·안보·경제문제, 개헌과 대선문제 등의 당면 현안을 놓고 광범위하게 논의, 총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기가 될 수도 있다. 거기서는 도토리 키재기식 대선주자들의 각개약진이냐, 차기 정권을 협치를 통한 과도정권으로 설정하고 통합 국민후보를 낼 것이냐, 개헌을 전제로 다음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는 문제 등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위임했던 권력을 명예롭게 회수하기 위한 현재의 탄핵 국면을 어떻게 수렴하고 헤쳐나가느냐에 대한민국의 명운이 달려있다. 한강의 기적과 가장 압축적인 민주화를 이룩한 대한민국의 성취가 한방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기에 이 모든 것이 정유년 새 아침에 내가 꾸는 꿈 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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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정남
· 언론인
· 前 평화신문 편집국장
· 前 민주일보 논설위원
· 前 대통령비서실 교문사회수석비서관

· 저서
〈이 사람을 보라:인물로 보는 한국 민주화운동사 1,2〉(전 2권) 두레, 2016
〈진실, 광장에 서다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창작과 비평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