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수*이동원 목사+목사님들설교

[스크랩] 금요기도회:가난하고 궁핍한 자의 기도(시70:5)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2. 4. 04:48
 

2010년금요기도회/2010년1월8일

가난하고 궁핍한 자의 기도

시편70:5

오늘 말씀은, 다윗이 지은 기도의 시편입니다. 제목을 보니, ‘기념식에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기념식인지 자세하지 않습니다. 어떤 기념식이든지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면, 그 감사의 내용은 바로 지금 부르게 되는 이런 기도를 따라서 응답해 주신 하나님의 역사임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도는 효과를 본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기도대로 하면, 우리가 응답받을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래로도 만들어서 기념식에서 부르게 하면서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이 기도는 효과를 본 기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기도이기에 응답을 받는 기도입니까? 이 기도에서 우리는 그 비결을 배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이 기도는, 고백적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고백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가난하고 궁핍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궁핍’하다는 것은, 물질적인 면에서도 적용될 수 있지만, 지금의 상황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일까요? 2절, “나의 영혼을 찾는 자들”과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영혼을 찾는다는 것은, 영혼의 약점과 문제점을 찾아서 대적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혹시 실수하는 것은 없나 그리고 조금만 실수하기라도 하면 그것을 핑계로 오만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상처를 주려고 합니다. 그렇게 상처받는 것을 보면서 기뻐합니다. 아마도 겉으로는 아닌 척 하면서 속으로는 기뻐할 것입니다. 3절에서는 “아하, 아하 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아하”하는 것은, 그럴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경건하게 살아간다고 그러나 속으로는 그렇지 않지? 진심을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편견에 기초해서 어떤 실수를 조금이라도 하면, 아하 아하 하는 것입니다.


그런 중에 시인은 무엇을 느낍니까? “가난하고 궁핍함”을 느낍니다. 답답함을 느낍니다.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때때로 오해받고 조롱당하고 답답한 일들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은, 그것으로 하여금 우리로 하여금 기도의 자리로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진실된 기도, 참된 기도, 응답받는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가난하고 궁핍함”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기도할 때입니다. 배부를 때는 기도가 안됩니다.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 대강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가난하고 헐벗음을 진실로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가득한 것을 비워야 합니다. 경기장의 선수들이 거추장스러운 짐들을 경기 하면서 다 벗어버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히브리서12장1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우리의 죄를 벗어버리는 고백이 필요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그렇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를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알고 있다는 것을 바로 우리가 알고 있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분이시고, 사랑과 긍휼에 풍성하신 분이시지만, 또한 죄를 지닌 채로 기도하면 결코 용서하지 않으시고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가난하고 궁핍합니다. 하늘의 복으로 채워지기 전에 우리의 마음의 창고가 비워져야 합니다. 죄로 채워져 있으면 있을수록 복은 부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을 들으시면서 고백해야 할 죄들을 정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이 기도는 변증적이기 때문에 응답되었습니다. 다윗은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를 하나님께 변증하고 있습니다.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라고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곤고함과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에 근거해서 변증합니다. 주는 나의 도움이시지 않습니까? 나를 건지시는 이 아니십니까? 변증적인 기도는,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 특별히 약속에 근거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함께 흥정을 할 때에 어떤 경우가 가장 효과적입니까? 상대방의 성품과 한 일에 호소할 때입니다. 당신 그런 사람 아니쟎아요? 이전에 이런 일을 하셨쟎아요? 그리고, 상대방의 약속에 근거할 때입니다. 분명히 나에게 이런 약속을 하셨쟎아요? 우리는 기도할 때 아무 생각없이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그냥 단어를 토해내는 사람이 있고, 약속에 근거해서,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기도가 응답되겠습니까? 변론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변론의 기도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변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근거한 변론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임까지 당하시는 사랑을 보여주셨지 않습니까? 그 사랑 때문에 제가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 삼지 않았습니까? 주님의 인도하심 받아서 지금까지 순종하며 따라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지금 내버려 두십니까? 주님께서는 창조주가 아니십니까? 주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시길 기뻐하시지 않으십니까? 구원의 역사를 그만 두셨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에 근거해서 변론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시온데 주의 자녀들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이전에는 그렇게 저를 사랑하시더니, 그 사랑이 도대체 어디로 갔습니까? 지금은 우리를 돌보시지 아니하시나이까? 이런 기도는 효과가 있습니다. 응답하시는 기도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절박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속히 내게 임하소서”, “지체하지 마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간절한 기도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가난함을 느끼고 궁핍함 가운데 있으면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죽어있는 죄인은 조용히 있습니다. 살아있는 죄인은 죄사함받고 문제해결이 되고 마음이 평안할 때까지 그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임하소서!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우리가 절박해집니다. 간절해집니다. 오늘 기도의 시간에 절박하게 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의 역사에 대한 긴박감, 바로 오늘 나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만져주심에 대해서입니다. 우리가 절박하게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녀의 구원에 대해서 절박하십니까? 지금 재난에 임박해 있는 일들이 있습니까? 건강이 무너져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일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교회가 황폐해져서 성령의 새롭게 해주시는 은혜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기도하기 위해서 그 앞으로 나온 우리의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십니까?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시오, 우리를 건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옵소서. 어떤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까? 힘든 일들이 있습니까? 오늘도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를 건지십니다. 우리가 기도하기를 기다리십니다. 호소하고 변증하기를 원하십니다. 간절히 나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그 주님께 다 함께 나아가서 주님을 뵙고, 기도하는 이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출처 : ImagoDei
글쓴이 : Ho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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