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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 고객님∧∧ 죽더라도 갈게요ㅠㅠ / 한겨레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2. 14. 09:13

빨리빨리 고객님∧∧ 죽더라도 갈게요ㅠㅠ

한겨레 등록 :2017-02-13 19:48수정 :2017-02-14 08:13

 

[밥앤법] 소비자 편익과 벼랑끝 노동

총알배송 등 속도전 격화
택배노동자 당일배송 밤 11시도 헉헉
에어컨 실외기 고치다 추락사
핸드폰엔 재촉 문자 줄줄이
유통업체 경쟁탓 24시 365일 영업
직원들 휴일 계획 꿈도 못꿔

법·제도 사각지대서 노동자 신음
“시민도 좀 불편할 줄 알아야 해요”

‘고객님, 오늘 저녁 물건을 받을 수 있는 ‘당일 배송’으로 주문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내일 받아도 무방한 ‘하루 배송’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김우성(35)씨는 2015년 가을께부터 ‘하루 배송’을 택하고 있다. 자신에게 하루 빨리 가져다주기 위해 택배 기사들이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쫓겨다닌다는 사실을 안 직후다. 하루 정도 늦게 온다고 해서 크게 불편하지도 않다. 김씨는 “내가 저비용으로 빠른 배송을 누리는 대신 택배 노동자가 혹사당한다고 생각하니 ‘하루 배송’도 미안했다. 조금 불편하게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소비자 편의를 위해 노동자를 몰아붙이는 경향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언제부턴가 기업들은 앞다퉈 ‘당일 배송’ 경쟁을 시작했고, 대형마트·커피전문점·면세점 등은 ‘언제라도 오시라’며 ‘24시간·365일·연중무휴’를 내세우고 있다. 장시간 노동에 지친 노동자들이 곳곳에서 쓰러지고 있지만 제도적 해결책은 걸음마 단계다. 일부 소비자들은 편리 대신 불편을 결심하기도 한다.

당일 배송 거부…불편 결심하는 소비자

“택배 기사님이 책 한권 들고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어요. 그때가 밤 11시쯤이었는데….”

2015년 9월 중순 늦은 밤, 김우성씨는 노크 소리를 듣고 현관문을 열었다. 택배 아저씨가 그날 오전 그가 주문한 가벼운 책 한권을 들고 서 있었다.

“예전에는 온라인 쇼핑으로 주문하면 2~3일 거쳐 물건을 받았던 것 같아요. 오전에 주문하면 오후에 도착하는 당일 배송이 언제부터 당연시됐는지 모르겠어요.”

오전에 주문했지만 당일 밤 책을 받아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김씨는 살짝 당황했다. 책 한권을 건네주고 돌아서는 택배 아저씨를 보면서 김씨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날부터 그는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주문할 때 ‘당일 배송’이 아닌 ‘하루 배송’을 택하고 있다.

온라인 서점가에서 ‘당일 배송’ 서비스가 시작된 건 2006년부터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이 처음으로 도입해 반향을 얻었다. 이후 업계 전반으로 확산됐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해마다 좀더 늦게 주문해도, 좀더 빨리 배송받는 쪽으로 ‘진화’했다. 지난해 알라딘은 서울 당일 배송 가능 주문 시간을 오후 2시에서 3시로 연장했다. 서울 지역은 오후 3시까지만 책을 구매하면, 당일에 책을 받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 지방의 당일 배송 주문 가능 시간도 오전 10시에서 낮 12시로 변경됐다. 조선아 알라딘 마케팅팀 과장은 “물류센터 시스템이 개선되면서 분류 시간이 단축됐고, 택배사에서 당일 배송 전담 인력을 따로 두고 있어 가능한 일”이라며 “당일 배송이라도 늦은 시간에 책 받는 걸 불편해하는 고객도 있기 때문에 다음날 배송받을 수 있는 ‘하루 배송’ 옵션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김씨처럼 ‘불편을 결심하자’는 목소리가 꽤 있다. 한 누리꾼은 “한국에서 편리하다는 서비스는 노동자의 삶과 노동의 질을 무시한 게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당일 배송인데, 배송비는 우리가 직접 물건을 사러 갈 때의 교통비 정도 수준이거나 거의 무료”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이는 “우리는 좀 불편할 줄 알아야 한다. 오늘 주문하면 몇 시간 뒤 도착하는 이런 서비스가 편리하고 좋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의 인간다운 삶을 깎아 먹으면서 누리는 혜택이라면 당연히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당일 배송 압박은 택배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가혹하게 만든다. 오전 7시께 출근해 오후 10시께 퇴근하는 택배 노동자 고영대(43)씨는 하루 최소 70건에서 최대 200건의 물건을 배송한다. 지난 설 연휴엔 배송 물량이 늘어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고씨는 몸이 힘든 것보다 심리적 압박이 더 부담이라고 말했다.

“심리적인 압박감이나 불안감 때문에 몸서리 쳐질 때가 있어요. 어떻게든 주문 당일 물건을 받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당일 배송 원칙이에요. 그런데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벨을 누르는 것도 실례가 되니까, 늘 마음이 바빠요. 뒤따라오는 사람이 없는데, 계속 뛰어가야 하는 느낌 아세요?”

집배원 노동자들은 ‘빠른 배송’의 늪 속에서 연이어 순직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강원도 화천군 하남우체국 소속 김아무개(34) 집배원이 중앙선을 침범한 1톤 트럭에 치여 숨을 거뒀다. 김 집배원은 분주한 ‘설 특별소통 기간’에 배달에 나섰다 참변을 당했다. 지난 6일 오전, 충남 아산에 있는 영인우체국 소속 조아무개(45) 집배원 노동자도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조 집배원은 매주 일요일 우편물 분류작업을 위해 출근했다. 주말에 미리 분류작업을 해둬야 월요일에 곧바로 우편물을 싣고 나갈 수 있다. 배송이 늦어지면 고객들이 불만을 제기하고, 이는 인사에 반영된다. 지난해 12월 마지막날에는 경기도 가평우체국 소속 김아무개(51) 집배원이 ‘토요 택배’에 나섰다가 빌라 계단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주민이 발견해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김씨는 숨졌다. ‘토요배송’은 2015년 10월께부터 도입됐다. 지난해 6명의 집배원이 숨졌다. 모두 사인은 과로로 추정된다.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동조합은 “6명 중 5명이 길에서 갑자기 쓰러졌다”고 말했다. 같은 해 7월, 노동자운동연구소가 발표한 ‘전국 집배원 초과근로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집배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5.9시간, 연평균 노동시간은 2888시간이었다. 일반 노동자보다 1년에 621시간, 매주 12시간 더 일했다.

서비스기사도, 배달업도 “빨리빨리”

소비자 입맛에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건 서비스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서비스 서울 성북센터 수리기사인 진아무개(44)씨는 지난해 6월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던 도중 빌라 3층에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진씨가 사고 직후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회사는 계속 마감 독촉 단체 문자를 보냈다. ‘현재 시간 외근 미결이 위험 수위로 가고 있음’(오후 4시41분), ‘금일 처리 건이 매우 부진함. 늦은 시간까지 1건이라도 뺄 수 있는 건은 절대적으로 처리’(오후 6시52분). 진씨는 그날 밤 9시께 숨을 거뒀다.

같은 일을 하는 박영환(44)씨는 “수리 기사들은 통상 시간마다 한 건을 처리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려면 15분 안에 수리를 마쳐야 다음 집에 제때 도착할 수 있다.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찾아가야 하다 보니 늦은 밤까지 일할 수밖에 없어 늘 녹초가 된다”고 말했다.

속도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은 조금만 늦어도 전화기를 재차 든다. “얼마나 더 걸리나요?” 서울의 한 중식당에서 배달일을 했던 홍상범(27)씨는 이 말이 빨리 가져다 달라는 의미라고 했다. 최근 배달음식 주문 애플리케이션까지 활성화되면서 음식 배달업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 배달음식 주문 애플리케이션에는 20만개가 넘는 업체가 등록돼 있다. 홍씨는 “천천히 와도 된다고 말하는 손님은 만나본 적이 없는 것 같다”며 웃었다. 2011년 도미노피자 등이 ‘30분 피자 배달 보증제’를 폐지하겠다고 공식 선언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도미노피자 배달 면접을 봤던 서아무개(24)씨는 “직원이 ‘원칙적으론 30분 안에 배달하긴 해요’라고 귀띔해줬다”고 말했다.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서울 강남구 한 매장에서 새벽근무를 서덩 중 잠시 한쪽에 웅크린 채 쪽잠을 자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서울 강남구 한 매장에서 새벽근무를 서덩 중 잠시 한쪽에 웅크린 채 쪽잠을 자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아무 때나 오세요…잠들지 않는, 언제나 환한 그곳

소비자들에게 ‘아무 때나 들를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하기 위해 365일 불 꺼지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서 외국 화장품을 판매하는 오아무개(40)씨의 기상 시간은 새벽 4시로 정해져 있다. 1990년대 후반, 면세점 판매 서비스업에 뛰어든 오씨는 3년 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지난해 국토교통부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발표한 ‘인천공항 경쟁력 강화 방안’에 따라 공항엔 24시간 운영되는 면세점이 늘어났다.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시간에 출근하게 되면서 공항으로 가는 교통편이 마땅치 않다.

“셔틀버스를 타려면 번화가로 나가야 하는데, 어두운 길을 걸어나갈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요. 나라에서 운영하는 공항공사까지 24시간 근무에 일조하는 건 문제 아닌가요?”

한낮처럼 환한 공항에 도착한 오씨는 서둘러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오전 6시30분께 매장에 도착해 오후 3시30분까지 손님을 맞는다.

“깔끔한 매장에서 명품을 파니까 모두 편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화장실도 못 가면서 일하는 상황인데….”

공항 면세점은 24시간·365일 연중무휴다. 그런 탓에 오씨는 휴일 계획을 세울 수 없다. 가족 행사나 친구 결혼식에 가본 기억도, 추억도 없다. 오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죄짓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한 백화점에서 일하는 김재숙(44)씨 상황도 비슷하다. 백화점 근무 경력만 25년째인 김씨의 기억엔 백화점 폐점 시간이 오후 7시30분이고, 매주 평일 하루는 휴점하던 시절이 남아 있다. 백화점들은 1996년까지 주1회 정기 휴점제를 운영하다 1997년 경제 위기와 함께 연중무휴 영업을 시작했다. 2006년 이후부터는 월 1회 쉬게 됐지만, 명절 기간에 쉬지 않게 됐다. 김씨가 설과 추석 연휴 중 이틀을 연달아 쉬게 된 건 2015년부터다. 김씨의 바람은 백화점 정기 휴무와 영업시간 규제다. “직원들끼리 ‘하루라도 같이 쉬는 날이 있으면 우리끼리 점심 한 끼 같이 먹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곤 해요.”

소규모 사업장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미용업계 상황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미용실에서 5년 정도 일한 오아무개(30)씨는 20대 내내 주말을 반납하며 일했다. 매일 밤 9시께 퇴근했던 오씨는 “파마약이나 염색약을 다루다 보니, 손등이 따끔한 피부질환으로 힘든데 병원 갈 시간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하나라도 차별화된 서비스를 내세워야 살아남는 유통업계나 서비스업계에서, 노동자들의 이런 근무조건은 업계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문제는 강도다. 97년 아이엠에프 경제위기 이후, 유통·서비스업계 영업은 1년 365일 운영체제로 전환됐고, 일부를 제외하면 일과 삶의 균형은 꿈꾸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유통업 종사자의 직장 생활 만족도 12개 항목 중 가장 만족도가 낮은 항목은 노동시간, 노동강도, 임금수준 등이었다. ‘빨리빨리’ 사회를 바꾸는 데는 법·제도적 정비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소비자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그동안 장시간 노동으로 사고가 나거나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일이 있을 때만 노동 문제가 이슈가 됐다”며 “이제 한국 사회에도 노동자의 삶을 존중하는 사회적 합의 속에서 소비자들도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82472.html?_fr=mt1#csidx3bbf040be192098bed68e0dc3fd343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