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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나되라(고전2:1-5) / 서대장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3. 6. 05:51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나되라(3월5일 사순절 첫주일 설교)|말씀………설교원고모음

서대장 | 조회 135 |추천 0 |2017.03.04. 10:43 http://cafe.daum.net/cgsbong/21mg/10920 

성령의 능력과 나타나심 고전2:1-5

주신 말씀 고전2:1-5을 중심으로 [성령의 능력과 나타나심을 통해 하나되라]는 제목으로 주님 주시는 은혜 받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을 책망하며 조속히 하나 될 것을 촉구하면서 세상적 지혜를 좇거나 자랑하지 말고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전하라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나타나심 (아포데이식스 αποδειξσις)과 성령의 능력 (뒤나미스 δυναμις)으로만 복음을 전하고 십자가를 증거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나 되어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첫째로 오직 그리스도와 십자가만 증거하라.(1,4)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인줄 믿습니다.

은혜로운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본래 의도를 찾아가기 위해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설교를 수십 년 들어도 말씀을 줄줄 암송해도 전혀 인간이 변화하지 않습니다. 성경지식으로 인간이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나타나심 없이 제자훈련을 하다보면 머리만 커져서 말은 잘하는데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않는 허수아비 빈수레 신자만 늘어납니다.

헬라사회에 속한 고린도 교회는 당시 헬라세계가 철학과 수사학들이 발전하였고, 바울 사도도 이들에게 뒤지지 않는 철학적 세상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덴의 실패이후 오직 성령만 의지했습니다.(행17:22-)

성령이 충만해야 비로소 인간의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말씀사역과 성령 사역에 힘입어 사람의 인격이 변화하고, 사람의 인격이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거듭나고 변화해야 비로소 주 안에서 하나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상적인 지식과 지혜를 버리고 오직 온전히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증거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가장 고상한 지식은 철학적 수사학적 지식이나 표현력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제일 고상한 지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상적 지식이나 지혜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가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염려하고 조심하고 노력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선포하고 전파하되 세상의 말로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의 능력만을 온전히 의지했던 것입니다.

구원은 세상적인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성령의 능력 곧 복음에 있음을 깨닫게 함으로써 세상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겸손하게 복음을 의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적인 지혜 지식 수사학 등은 결국 교회를 분열시키고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고 분란을 일으킬 뿐임을 분명히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는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아덴의 아레오바고에서의 설교는 상황과 문화를 전제로하여 그들에게 가장 잘 맞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헬라철학의 기교와 문학을 인용하여 그들에게 가장 적당한 방법으로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냉담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염려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복음을 증거할 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고 오직 인간적인 수단에 치중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능력과 나타나심을 바라며 주님의 뜻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 하는 많은 방법과 노력 다양한 분야에서 각양 좋은 프로그램들을 열심히 준비하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빈손으로 공허하게 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해보고자 갖은 방법과 지혜를 짜내어 몇 년을 공을 들여도 상대가 전혀 변하지 않을 때 실망하고 무력감에 좌절합니다.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이럴 때 바울을 기억해야합니다.

복음 전도를 위해 노력하되 우리의 초점이 전도의 방법에 치우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은 성령이 스스로 복음을 전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과 나타남으로 복음이 증거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할 때 어떤 테크닉이나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신 것은 권세였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말로써 불신자의 굳어진 마음을 풀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더욱이 굳어진 오랜 신앙의 적폐를 청산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방법이나 수단을 의존하지 말고 성령의 능력을 의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하고 그 마음이 변화되게하는 것은 인간적인 방법이나 수단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인줄 믿습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증거하기 전에 성령이 내게 충만해지기를 기도해야합니다.

복음이 사람을 감동시켜 복음을 영접하게 하는 능력이 있는 줄 믿습니다.

사람의 방법이나 수단을 의지하지 않고 성령을 의지하고 복음만을 증거하기로 결단하고 또 실행함으로써 그 가운데 나타나는 놀라운 역사를 늘 체험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 원합니다.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나되어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둘째로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함으로 가장 성공적인 인생을 살라(2).

바울은 2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전하기로 작정하였다 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지식이나 방법 사회적 영향력등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즉 복음을 증거할 때 필요한 모든 것을 충분히 활용하되 그 중심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두겠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은 복음을 전할 때만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한 것이 아니라, 실제 모든 삶에 있어서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처럼 삶의 중심과 초점을 그리스도와 예수님의 십자가에 맞추고, 이를 위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추구하고 누리던 것을 포기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로서의 특권이나 가정 까지도 포기하고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끝없는 고난과 역경 어려움을 겪고 고초 당하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위해 삶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었던 것은 “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생명을 잃으면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느냐”(마16:26)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인생의 성공이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적인데 있다는 것을 명심하며 살았기 때문 입니다.

인생은 육으로 사는 잠시 잠간 동안 여행하고 충분히 쉬고 케어(care)받고 풍족하게 쓴다고 해서 성공한 인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잠시 행복하고 영원한 불행에 떨어진다면 정말 허망한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함으로 육으로는 고통을 당할지라도, 잠시의 고난으로 영원한 생명과 축복을 얻는 삶이 참 성공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추구하는 진정한 축복과 성공은 오직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위해 여타의 것들을 과감하게 희생할 수 있는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것임을 믿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처럼 그리스도를 제쳐두고 오직 세상의 영광과 성공만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제쳐두고 오직 세상의 영광과 성공만을 위해 달려가는 것은 불나방이 모닥불을 향해 덤벼들다 타버리듯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땅의 모든 쾌락과 영광을 받아 누려본 솔로몬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하였는데 우리가 누리면 얼마나 누리겠습니까? 세상의 헛된 것만 추구하다가 속빈 강정과 같은 허망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한 사람이라도 발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성도는 진짜 성도는 세상 것들을 희생하며 오직 십자가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인 것입니다.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나되어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셋째로 복음으로 인해 두려워하고 떨 줄 알라 (3)

3절에서 바울 사도가 약하고 두려워하고 떨었다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나약하고 겁이 많으며 소심한 사람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나약하기는 커녕 죽기까지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겁이 많고 떨기는 커녕 총독이나 왕들과 같은 고관들 앞에서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복음을 증거한 사람입니다.(행19:21-31)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신분도 낮고 보잘것없는 고린도 교인들 앞에서 약하고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던 것은 자신이 받은 복음과 사명의 본질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자신이 그리스도와 복음을 훼방하는 죄인의 괴수였지만 예수님을 다메섹도상에서 만난 후 구원을 받고 이방인의 사도로 세움을 받은 것은 고린도교인들 처럼 낮고 천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주신 사명 때문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방인들을 자신이 구원해 주어야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을 살려준 구원해준 자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빚진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롬1:14)

끝으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만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소중한 복음을 잘못 전하여 누구라도 실족하게 된다면 화를 받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떨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두려워하며 떤 모습이야말로 복음과 사명의 본질을 바로 아는 자의 올바른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급적 자신이 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학위나 간판들로 무장하고 자신에 대한 비판을 못하게 하려고 철통방어를 합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이단들을 화형에 처할 정도로 단호하고 엄격한 성격의 소유자이면서도 강단에 설 때면 두려운 마음으로 떨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여! 3창을 합니다.

주여라고 할 때 주는 주인입니다. 창조주이심을 고백합니다. 구세주입니다 .

나 같은 죄인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증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할 때 약하고 두려워하고 떨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복음을 전할 때 약한 마음 즉 빚진자의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겸손한 모습으로 ,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온전히 전하는 진정한 복음의 증거자들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성도가 예배할 때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을 드릴 수 있도록 약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온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해 예배에 임하므로, 주 안에서 거듭나 새롭게 변화되어 세상을 분별하며 살아가는 거룩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나되어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첫째로 오직 그리스도와 십자가만 증거하라.(1,4)

둘째로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함으로 가장 성공적인 인생을 살라(2).

셋째로 복음으로 인해 두려워하고 떨 줄 알라 (3)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사역과 말씀사역을 통해 죽어가는 생명을 구원하는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온전한 기쁨이 되는 성도되시길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