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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온전한 하나됨고전2:6-16)((사순절 둘째주 설교) / 서대장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3. 11. 23:29

온전한 하나 됨 고전2:6-16

주신 말씀 고전1:10-4:21까지 고린도 교회의 분열을 책망하며 조속히 하나 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일부입니다.

앞 단락인 2:1-5절에서 세상 지혜에 근거해서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부당하다 지적하고 본문에서 하나님의 지혜 곧 십자가의 도인 복음은 오직 성령으로만 깨달을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신 말씀 을 통해 [온전한 하나됨의 지혜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제목을오 주님 주시는 은혜 받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대통령 탄핵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있는 시점에 혹시라도 헌번재판소의 결정에 불복하는 세력들이 없도록 기도하여 하나됨으로 북한과 중공의 위협에 의연히 맞서야할 국력을 낭비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온전한 하나됨의 지혜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복음은 비밀한 하나님의 지혜로 영적으로 성숙한자들에게 나타난다(6-9).

둘째로 비밀한 지혜인 복음은 성령의 조명으로만 깨달을 수 있다.(10-11)

셋째로 성령을 받은 성도라야 비밀한 지혜를 분별할 수 있다(12-16)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파당을 지어 분쟁하며 서로 판단하는 것은, 성도 안에 있는 성령 즉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으로 죄악된 일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거듭나지 못한 자들 곧 성령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의 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분쟁을 그치고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하나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온전한 하나 됨의 지혜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복음은 비밀한 하나님의 지혜로 영적으로 성숙한자들에게 나타남.

6절은 하나님의 지혜를 말씀하기 위한 도입부로써 하나님의 지혜를 말씀하기 전에 먼저 이 땅의 지혜, 곧 세상의 지혜와 관원의 지혜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통치자들의 지혜란 그 나라에서 가장 지혜있고 학식있는 자들이 관원이 되기 때문에 세상의 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세상의 지혜(σοΦίαν τού αίώνος)와 통치자들의 지혜(τῷν άρχόντων)를 대조하고 있는 것은 고린도 교회의 여러 병폐가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라 사람의 지혜에 따라 행동한 까닭에 생겨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대는 악이 지배하는 이 세상을 말하며 통치자들은 행정가들만이 아니라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 모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결국은 폐해질 이방 세계나 유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소유한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와 통치자들의 지혜는 없어질 것이란 말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된다는 말입니다.

인간들은 태초 이래 보다 풍요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위해 수많은 지식과 지혜를 축적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식과 정보가 풍요한 삶의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영원히 빛나리라고 믿고 있는 태양조차도 싸늘하게 식어 시커먼 덩어리가 될 것이라하고, 성경도 언젠가 이땅이 사라지고 지금과 전혀 다른 새하늘과 새땅의 나라가 펼쳐질 것이라 합니다.

세상의 지혜와 지식을 사라져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의 지혜를 기록한 책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영원한 구원의 길과 참된 행복의 비결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장차 있을 세상에서 진정하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시길 원하신다면 성경 말씀에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진정한 행복안내서요 교과서이므로 성경을 더욱 귀하게 굳게 붙잡고 주님 주시는 은혜로 세상을 이겨내는 성도되시기 원합니다.

7절에서 온전한 자들에게 말하는 지혜는 과연 무엇인가?

여기서 하나님의 지혜(θεού σοΦίαν)느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에 속한 지혜는 비밀한 지혜로써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다가 드러난 복음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건이 바로 인간 이해를 초월하는 신비한 사건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 구원에 관련한 것으로, 이미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준비되고 예정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과 영광의 잔치에 초대하기 위해 수 많은 준비를 완벽하게 하시고 에비하시고 준비하신 줄 믿습니다.

그뿐 아니라 독생하신 그리스도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우리를 위한 처소가 준비되면 우리를 부르시기 위해 다시 오실 줄 믿습니다. (요14:3)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영광의 나라에 초대하기 위해 지상에서의 모든 고난가 수고에 그치지 않으시고 하늘에서도 준비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삼위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창세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세심하고 완전하게 준비하셨고 지금도 준비하고 계시고 앞으로도 준비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천한 우리를 구원하여 하늘나라에서 맞이하기 위해서그 누구도 흉내낼 수 조차 없는 정성과 사랑으로 준비히신 줄 믿는다면 , 이 땅에서 고난과 소홀한 대접을 받는다 할지라도 항상 믿음과 소망을 잃지말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 소망의 길을 나가야 될 줄 믿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에 비밀성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의 지혜나 이성으로 알 수 없다 합니다.

그 증거로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그렇게 오랫동안(400년 이상) 기다렸지만,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고 영접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아 매달아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자신이 지식과 안목을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믿는 자는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줄 믿습니다.

성도가 지향해야할 것은 오직 겸손하게 주님께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비밀한 지혜를 보이시도록 간구하며 날마다 날마다 주님의 지혜 드러나기 원합니다.

8절에서 복음은 우주가운데 존재하는 가장 놀라운 신비라 말합니다.

9절은 전도란 하나님의 특급비밀을 전하는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이 지혜가 하늘에 속한 비밀로 인간의 지혜로 이해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님께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배척을 받고 결국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장 복스럽고 소망에 가득찬 복음조차도 세상으로부터 조롱과 배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할 때 거절당하거나 비웃거나 배척을 당한다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은 인간의 능력으로 접근할 수 없는 최고의 신비이므로 , 믿음이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요 오직 택함 받은 자들에게 성령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단단히 믿어야 할 것입니다.

9절에서 전도란 하나님의 특급비밀을 전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준비해 주신 것이라 말씀합니다.

인간의 철학과 이성으로는 몽상조차 할 수 없는 것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예비하신 모든 은혜와 진리야말로 최고의 신비이며 심지어 사단조차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하나님의 일급비밀로,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작정하시고 봉해 두셨던 암호를 성령의 계시를 통해 해독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려 나설 때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은 자들만이 지닐 수 있는 자랑스럽고 당당한 모습으로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믈모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으려면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통하지 않고 단순한 인간의 상상이나 이성적 추리만으로 하나님에 대해 왈가왈부하려고 나서먼 안됩니다.

우주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의 심증을 아시고 증거해 주시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더욱 사모하고 가까이 함으로써 그 은혜를 통해 보다 깊은 하나님의 진리 속으로 들어가는 복된 체험을 하는 성도 되시길 축원 합니다.

둘째로 비밀한 지혜인 복음은 성령의 조명으로만 깨달을 수 있다.(10-11)

10절에서 하나님의 지혜는 성령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합니다.

인간의 지혜로 깨닫지 못하는 하나님의 지혜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시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다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지혜를 보이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경륜까지도 통달하시기 때문이라 합니다. 통달하다(έραυνἅ 에라우나)는 탐색하다, 주의깊게 조사하다, 탐구하다라는 뜻을 가진 έραυναω의 현재형으로 게속과 반복을 나타냄으로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알고 계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깊은 것(βάθη 바데)은 깊이 깊음 풍성함을 뜻하는 βάθος(바도스)의 목적격으로 인간이 감히 에측조차 할 수 없는 무한히 깊고 풍성하신 하나님의 도모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신다는 성령께서 인간으로서는 아무리 노력하여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심오한 속성, 하나님의 계획들을 완전히 이해하고 게시므로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내기에 충분한 능려이 있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는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되시는 삼위하나님 성령만이 알 수 있고 전달할 수 있다 합니다.

11절은 왜냐하면(γάρ) 사람의 속사정을 그 사람의 영만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만이 알 수 있다 합니다.

우리는 저 사람은 나를 이해해 주겠지 하지만 그 사람은 나에 대해 잔뜩 오해만 하고 몰라 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몰라 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속속 알 수 없습니다. 더욱이 사람의 마음이 조변석개하고 변화무쌍하므로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합니다.

자기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오직 자기 뿐입니다.

하물며 사람의 속사정을 사람 속에 있는 영외에 누가 알 수 있을까요?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의 심중의 뜻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사람의 속을 그 사람의 영만이 제대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만이 속속 아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지혜인 복음이 성령의 계시에 의해서만 전해진다고 하는 것은 이 복음의 진리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분 곧 성령의 증거에 의한 것이므로 견고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진리는 성령을 통하여서만 알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하여 교회가 나라가 가정이 하나로 뭉쳐야 비로소 가정천국 교회천국을 이룰 수 있음을 믿습니다.

오직 성령만이 하나님의 깊은 지혜를 깨달아 아시는 줄 믿습니다.

셋째로 성령을 받은 성도라야 비밀한 지혜를 분별할 수 있다(12-16)

본 단락에서는 성도들은 성령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된 자들임을 밝힘으로써 한 분이신 성령님의 내재함 가운데서 서로 분열핳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도란 세상의 영이 아닌 하나님께로서 온 영을 받은 자들이라 합니다.

12절에서 우리가(ήμείς 헤메이스)를 사용하여 성도들이 세상의 영이 아닌 하나님께로서 온 성령을 받은 자들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ήμείς 헤메이스)는 일인칭 복수주격 대명사로써 자신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성령을 받은 자들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만큼은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영을 받았다는 사실을 통하여 사도 자신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알 수 있는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특히 우리가 받은 것은 세상의 영과 대조되는 하나님께로서 온 영입니다.

왜 성령을 세상의 영과 구별하고 있는가?

고린도 교인들이 세상적 지혜를 기준으로 하여 복음의 지도자들을 평가하고 그 평가에 따라 계파를 만들고 있는 한심한 작태를 부드럽게 경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이 은혜상태에 있는지 여부를 의심하게 하고 최종적인 구원에 이를 수 있는지 의심하는 악한 자들을 경책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이는(ἳνα 히나) 목적을 나타내는 접속사로써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게 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말합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은혜로 주신(χαρισθέντα )는 용서하다, 거저주다를 뜻하는χαρίζομαι(카리조마이)의 목적격 수동태 분사형으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죽음을 근거로 믿는 이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의 선물 즉 구원과 더불어 여러 가지 풍성한 은혜를 말합니다.

은혜로 주신 것들을 성령께서 알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내셨을뿐 아니라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우리로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알게(είδώμεν)은 오이다(οἵδα) 인격적 체험적으로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십자가 복음을 안다는 것은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안다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평생 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미 아는 그리스도를 평생 에 걸쳐 성경묵상과 기도말씀과 예배를 통해 평생 알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13절에서 영적인 것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해 나간다 말합니다.

영적인 일이란 하나님의 일 또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조명을 통해 분별해야할 하나님의 영적인 일들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먼저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깊고 초월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대할 때마다 인간의 좋은 머리로 엄청난 사실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먼저 완전한 지혜의 신이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신령한 말씀을 바로 서야합니다.

다음은 하나님의 신령한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역사를 이끌어 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는 광대하고 의롭고 완전하며 지혜로우시고 자비하신줄 믿습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영적인 은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축복과 은혜라는 말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축복은 실로 참된 기쁨과 만족을 줄뿐 아니라 영원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끝없이 주어지기에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살게 하실줄 믿습니다.

15절은 신령하게 행하는 성도는 세상 최고의 위치에 서 있는 자입니다.

성도가 진정으로 성령을 받으면 그들보다 더큰 자유와 특권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혜와 자유 특권을 베풀어 주셨음을 다시 한 번 깨닫고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16절은 주님은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작은 그리스도가 되기를 원한다 합니다. 여호와의 신과 그리스도의 마음이 한가지 즉 성령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단순히 메시야의 사역을 감당하시고 승천하심으로 마감하지 않으시고 주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직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와 같이 온전히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헤아려 그 뜻과 진리를 행하도록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우리의 전존재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실천하는 자는 장차 임할 천국의 예비 각료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내신 은혜와 진리는 실상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한 신비중의 신비요 비밀중의 비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을 통해 이를 우리에게 알리시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사 그 뜻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할 수 없는 은혜를 통해 신비중의 신비요 비밀중의 비밀을 깨댤은 성도는 작은 예수가 되어 하나님의 비밀을 열심히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서대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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