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기자
성한용
정치팀 선임기자
정치팀 선임기자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의 ‘충언’에 따라 ‘청와대 얼라들’을 멀리하고 새누리당과 새누리당 의원들의 말을 들었더라면 탄핵도 당하지 않고 구속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치를 전혀 몰랐다. 공화당은 통치기구에 불과했다. 그가 딸에게 전수한 것은 민주주의나 정당정치가 아니라 제왕학이었다. “아버지는 역사, 안보, 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셨다. 알게 모르게 나는 아버지로부터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귀한 과외수업을 받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는 국방, 외교까지 그 범위가 넓어졌다. ‘국익 최우선’이라는 아버지의 정치신념은 확고했다.”
부녀간 대화에 정치와 정당은 아예 빠져 있었다. 세월이 흘러 그 딸이 정치에 입문했다. 아버지가 세운 나라가 외환위기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딸은 새정치국민회의나 자유민주연합이 아니라 한나라당을 선택했다. 한나라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깎아내리며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의 민주정의당 법통을 계승한 정당이다.
그런데도 굳이 한나라당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오랜 세월 청렴하고 능력 있는 리더로서 면모를 보여온 이회창 후보와 함께 노력한다면 외환위기 고비를 지혜롭게 넘길 수 있으리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했다. 이회창이라는 ‘사람’을 보고 정당을 선택했을 정도로 그는 정당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다.
정치 입문 이후 그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을 여러 차례 구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는 아예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꿔 대승을 이끌었다. 새누리당에 대해 그가 갖고 있던 생각은 그의 선친이 공화당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과 비슷했을 것이다. 주종관계로 생각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권 기간 내내 여당 지도부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를 구박했고 쫓아냈다.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의 ‘충언’에 따라 ‘청와대 얼라들’을 멀리하고 새누리당과 새누리당 의원들의 말을 들었더라면 탄핵도 당하지 않고 구속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다.
5·9 대선에서 선출되는 새 대통령은 정당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진 사람일까? 4월3일 더불어민주당 ‘대표 선수’로 확정된 문재인 후보는 정당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당정일체를 통해서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민주당 정부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참여정부에서 했던 당정분리가 현실에 안 맞았다”는 것이다. 경선 마지막 연설에서도,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민주당 정부’를 거듭거듭 약속했다.
문재인 후보는 2013년 <1219 끝이 시작이다>라는 책의 마지막 장을 ‘왜 민주당인가’라는 제목으로 썼다.
“민주당만으로는 안 되지만 민주당 없이도 안 됩니다. 그것이 정당정치의 현실입니다.”
“대통령제에서는 형식적으로 다당제라고 해도 양대 정당을 근간으로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주당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새누리당 계통 정당과 맞서 온 양대 정당의 한 축으로서 민주화 세력을 대표했습니다.”
맞는 말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정당의 뒷받침 없이 당선되기 어렵다. 혹시 당선돼도 정당 없는 국정 운용은 아예 불가능하다. 정당을 무시하고 국정을 이끌어 가도 실패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말이다.
그래서다. 문재인 후보는 이제부터 ‘민주당 정부’를 어떻게 구성하고 운용할 것인지 상세한 프로그램을 밝혀야 한다. 대통령이 민주당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대통령을 지배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당장 할 일이 있다. 경선 캠프를 해체하고 민주당 중심으로 대선 캠프를 다시 꾸려야 한다.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최성 고양시장의 경선 캠프 인사들을 모두 흡수해야 한다. 그동안 팔짱을 끼고 지켜본 민주당 의원들을 선거대책위원회에 포진시켜야 한다. 문재인 경선 캠프의 기득권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문재인 집권이 아니라 민주당 집권을 이룰 수 있다.
정당 집권의 원리는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국민의당의 안철수, 바른정당의 유승민,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에게도 적용된다. 대선은 후보들에 대한 인기투표가 아니다. 후보들은 국정에 정당을 어떻게 동원하고 활용할 것인지 실행 방안을 밝혀야 한다. 그렇게 해야 최소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터무니없는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연재성한용 칼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9138.html?_fr=mt0#csidx403e79cfbe6e40f8a53252d4f15ce1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