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訴訟]=자유 평등 정의

이정미와 박근혜 / 김정남 (언론인)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4. 8. 21:09

이정미와 박근혜 [김정남]

                         보낸사람

다산연구소 <dasanforum@naver.com> 보낸날짜 : 17.03.28 04:13                
제 850 호
이정미와 박근혜
김 정 남 (언론인)

   “피청구인은 최서원의 국정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하였습니다. … 피청구인의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는 재임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국회와 언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를 단속해 왔습니다. … 이러한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것입니다.
  한편, 피청구인은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였으나 정작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하였습니다. …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감격적인 사필귀정(事必歸正)

   이정미 재판장이 마지막으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을 읽는 것을 보면서, 나는 몇 가지 벅차오르는 감회를 느꼈다. 하나는 “사필귀정이란 이런 것이구나, 법의 이름으로 정의가 승리하는 사필귀정을 내 살아생전에 이렇게 볼 수 있다니.”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 나라 민주주의가 또 하나의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고 있다는 안도감이었다. 논란이 심했던 대통령이 피를 흘리지 않고 현직에서 물러나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전통이 우리 손으로 마침내 세워졌구나 하는 자부심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셋째로는 서로 대립하고 충돌하는 두 개의 열정이 주말마다 도심의 광장에서 분출되는 가운데 헌법재판소가 여론의 압력에 영향받지 않고 오직 사실과 헌법적 판단에 따라 전원일치의 결정으로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함으로써 정치위기의 순간을 넘길 수 있게 된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사실 나는 일찍부터 헌법재판소라는 기구에 대해 마뜩잖은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대법원에 헌법 판단을 하는 기능을 부여하면 되지, 구태여 방대한 예산을 들여 옥상옥이라 할 헌법재판소를 따로 둘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거기다 역대 헌법재판관들의 면면을 보면, 유신시대 대표적인 공안검사를 앉히지를 않나, 정권에 빌붙어 법으로 아세하는 무리들이 낙하산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곤 했던 것이다.

   아직도 그 임용방식 등에는 의문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나는 이번 탄핵심판을 보면서 헌법재판소에 대한 나의 인식을 새롭게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새삼 헌법재판소라는 기구에 대한 신뢰와 함께 헌법재판관들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이정미의 의연함과 박근혜의 구차함

   특히 이번 탄핵심판을 주도적으로 이끈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정미 권한대행 헌법재판관이 바로 탄핵심판 선고일에 헤어롤 2개를 머리에 단 채 출근한 것이 세인의 화제가 되었다. 그날 그가 해야 하는 역할에 얼마나 심취 골몰하였으면 머리에 헤어롤 2개가 달려있는 것을 모르고 출근했을까. 나도 헤어롤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지만, 어느덧 이정미 권한대행은 정신없이 바쁘게 일에 매진하는 ‘일하는 여성’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세월호 참사 때 올림머리 하느라 어린 생명들이 물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방치한 박근혜에 대조되는 대목이다.

   이 밖에도 이정미 재판관의 행보는 여러 면에서 박근혜와 대비된다. 아마도 그는 박한철 소장의 임기 중에 탄핵심판이 마무리되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굳이 탄핵반대 편에 서있던 사람들의 억지 주장이 아니더라도, 그 심판을 자신이 떠맡아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그 독배를 마시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판결문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헌정위기 상황을 더 이상 계속해서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폭풍우치는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의 퇴임사 역시 간결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세계정세는 급변하고 있으며, 우리는 내부적 갈등과 분열 때문에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 우리가 사랑하는 민주주의, 그 요체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이번 진통을 통해 우리 사회가 보다 자유롭고 평등하며, 보다 성숙하게 거듭나리라고 확신합니다. 이제는 분열과 반목을 떨쳐내고 사랑과 포용으로 서로를 껴안고 화합하고 상생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 얼마나 지성스러우면서도 의연한 메시지인가. 그에 비하면, 이 나라를 세계의 조롱거리로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국민의 분열을 부추기며 네가 알고 내가 알고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또 국민도 아는 것을 놓고서도 뻔한 거짓말을 일삼는 박근혜는 얼마나 구차하고 초라한가.

▶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글쓴이 /김정남
· 언론인
· 前 평화신문 편집국장
· 前 민주일보 논설위원
· 前 대통령비서실 교문사회수석비서관

· 저서
〈이 사람을 보라:인물로 보는 한국 민주화운동사 1,2〉(전 2권) 두레, 2016
〈진실, 광장에 서다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창작과 비평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