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예화 모음! (540) 곽선희목사 설교집 중에 쓰인 예화 ⑧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7. 16. 15:26

예화 모음! (540) 곽선희목사 설교집 중에 쓰인 예화 ⑧

 

▶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는다

독일 쾰른지방의 어느 건물 지하실 벽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낙서로 남아 있습니다. '태양이 구름에 가려 햇빛을 볼 수 없을 때에도 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는다. 비록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실 때에라도 나는 하나님의 사랑이 엄연히 계심을 믿는다' ---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에 그 지하실에 갇혀 있었던 어느 전쟁 포로가 하나님께 고백한 기도의 말을 새겨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위대한 신앙고백이 아닙니까 ?

 

▶예언할 수 있는 재능

어느 날 한 신문 기자가 윈스턴 처칠 경에게 기자 회견을 청하고 물었습니다. "정치가가 되기 위하여 가장 바람직한 자질은 무엇입니까 ?" 기자의 질문에 대하여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일 내주 내달 내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언할 수 있는 재능이 있어야 합니다."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색

프랭클 박사가 쓴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색>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것은 나치하의 유대인 포로 수용소에 대한 것을 자세하게 관찰하여 기록한 책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당시 6백만에 이르는 많은 유대인들이 포로수용소에서 죽어갔습니다. 끔찍한 생체 실험과 갖은 고문을 다 당하고, 가스실로 옮겨져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나치 독일의 그 죄악상과, 유대인들이 그 핍박과 고통을 어떻게 견뎌냈는가를 고발하고 연구하면서 프랭클 박사는 그의 저서를 이렇게 끝냈습니다. '마음으로 포기한 사람은 몸도 쇠약해졌다. 그러나 끝까지 소망을 잃지 않은 사람은 살아남았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절망 속에 있는 동료들에게도 소망을 가지도록 격려하던 사람은 모진 고문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에 있었다.' 똑같이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도 소망을 지킨 사람은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애굽으로 가는 거룩한 가족

어느 때 미국의 시카고에서 미술품 경매가 있었습니다. 값비싼 미술품들이 다 경매된 뒤에 오직 하나의 그림이 남았습니다. 이름 모를 작가의 그림이었습니다. 이것은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어서 싸게 14불 75센트에 팔렸다고 합니다. 뒤에 알고 보니 이 그림은 희랍 화가인 미네르바의 <애굽으로 가는 거룩한 가족> 이라고 하는, 아기 예수께서 애굽으로 피난 가는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서 아주 유명한 그림이었습니다. 이것은 이탈리아에서 17세기에 잃어버린 것인데, 시카고에서 나타날 줄은 몰랐습니다. 마침내 그 그림은 다시 5만 불에 팔렸다고 합니다.
 생각해보십시다. 5만 불도 넘는 이 귀한 그림을 14불 75센트에 산 사람이나 판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 그 가치를 모르는 자는 그것을 소유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은 둘 다 망한 것이다

옛날, 욕심 많은 사람과 질투심 많은 사람이 한 수도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가 갈림길이 나왔다. 수도사는 두 사람과 헤어지는 기념으로 무엇이든지 소원을 말해보라고 했다. "한 사람이 소원을 말하면 다른 사람은 앞사람이 소원한 것의 두 배를 가지게 될 것이오" 욕심 많은 사람은 생각했다. '내가 먼저 소원을 말하면 저 녀석이 나보다 두 배로 많은 것을 가지게 되겠지. 그렇게 큰 손해를 볼 수는 없다. 암 없구말구' 질투심 많은 사람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입을 꼭 다문 채 서로 상대방이 먼저 소원을 말하기만 기다렸다. 시간이 한없이 흘렀다. 마침내 수도사는 더 기다릴 수 없다고 재촉했다. 그러자 욕심 많은 사람이 질투심 많은 사람의 멱살을 부여잡고 위협했다. "네가 먼저 소원을 말하지 않으면 당장 죽여 버리겠다!" 질투심 많은 사람은 힘으로 상대방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눈을 흘기며 말했다. "좋다! 내가 먼저 말하지! 수도사님, 제 왼쪽 눈을 멀게 해주십시오!" 자, 어떻게 되겠는가? 질투심 많은 사람은 한쪽 눈을 잃고, 욕심 많은 사람은 두 눈을 다 잃게 되었다. 서로가 제 유익만을 생각하다가 결국은 둘 다 망한 것이다.

 

▶그 물건은 저 집에 가면

일본에 미우라 아야꼬라는 기독교인 여류 작가가 있다. 그가 쓴 <빙점>이라는 소설은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분은 한때, 남편의 월급만 가지고는 살림을 꾸려 나가기가 어려웠으므로 집 앞에 자그마한 구멍가게를 냈다. 그러나 돈만 벌겠다고 악착을 부리지 않고 오는 손님들에게 조용히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봉사했다. 그 결과, 이 구멍가게는 사람들의 신용을 얻게 되었다. 오히려 장사도 잘되어서 나중에는 트럭으로 물건을 들여올 만큼 번창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바쁘게 일하는 아내를 보고 농반진반으로 말했다. "여보, 우리 가게가 이렇게 잘되는 것은 좋지만 이웃이 다 어려운 사람들뿐인데 우리 가게로만 손님이 몰려서 다른 가게들이 문을 닫게 되면 어떡하지?" 미우라 아야꼬 여사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래서 곧 가게 물건을 줄였다. 어떤 물건은 아예 가져다 놓지도 않았다. 손님이 찾으면 "그 물건은 저 집에 가면 사실 수 있습니다" 하고 다른 구멍가게로 손님을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에게는 남모르는 기쁨과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틈틈이 글을 쓰기 시작하여 <빙점>이라는 소설을 완성시켰다는 것이다.

 

▶기가 막힌 한 편의 촌극

언젠가 우리 교회가 아닌 예식장에서 우리 교인의 자녀들의 결혼식을 주례한 일이 있습니다. 주례사가 끝난 다음에 피아노 5중주의 축하 연주가 있었습니다. 연주 곡목이 '사랑의 기쁨'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조바니 마르티니의 유명한 노래입니다. 그러나 곡목은 사랑의 기쁨이지만 그 가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이 사실을 신랑 신부가 알았더라면 기절할 노릇이지요. 이런 때에는 모르는 것이 다행입니다. 아무튼 그 노래가 나오자마자 저는 내심 '아이쿠, 큰일났구나, 어떻게 저런 곡을 연주할까'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또 영어로 노래를 부르는데 그 가사의 뜻이 완전히 결혼 망치는 것일 때도 있습니다. 그저 멜로디만 생각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은가'하는 걱정을 해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한 편의 촌극입니다.

 

▶매일 천국에 다녀온 사람

제인이라고 하는 믿음이 좋은 학장님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그를 존경해서 이렇게 불렀답니다. '매일 천국에 다녀온 사람'---매일 천국에 다녀온 사람같이 그렇게 밝고, 명랑하고, 은혜스러운 분이었습니다. 어느 학생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이렇듯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깃발과 같다. 어느 성에 깃발이 올라가 있으면 그곳에 임금님이 와 계시다는 뜻이 아니겠느냐?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계시고, 내 안에 은혜가 있으니 나는 기쁠 수밖에. 내가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누구에게 덕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내 마음이 기쁘니까, 내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고 있으니까. 내게 기쁨이라고 하는 깃발이 휘날려지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정말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숨길 수 없습니다. 그는 기뻐할 수밖에 없어요. 항상 기쁠 수밖에 없어요. 사랑은 동사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다.

 

▶진정한 친구

니코마코스라고 하는 교수는 그의 윤리학에서 우정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쾌락을 위한 우정이 있다고 합니다. 사귀는 그 자체가 좋은 것입니다. 그저 같이 만나서 얘기하고, 얼굴보고.... 그런 것 자체가 좋아서 만날 뿐이지 뭐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두 번째는 유용성을 위한 우정이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을 만나면 유익한 것이 많습니다. 이득이 많고, 배우는 것도 많고, 또 사귀어 두면 이모저모로 유익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만나는, 그런 의미의 우정입니다. 세 번째는 덕성을 위한 우정이 있다고 합니다. 서로가 존경하기 때문에, 그 인격을 존경하기 때문에 만나는 것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다 함께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친구라는 것입니다.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으니까요

어떤 사람이 테레사 수녀에게 물었습니다. "수녀님, 당신보다 잘사는 사람도 많고, 당신보다 높은 사람도 많고, 당신보다 칭찬 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혹 그들을 질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수녀는 어린아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대답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사는 사람은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으니까요." 그렇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사는 사람은 위를 쳐다보지 않으니까 남이 어떻고, 저가 어떻고 하며 시기 질투할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그럴 마음도 없고요.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협력할 줄을 몰라요

너무나도 어이없고 부끄러운 얘기지만 여러분도 잘 아는 얘기니까 한번 소개하고자 합니다. 미국의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어느 유대사람이 생선가게를 합니다. 그런데 유대사람이 옆자리에 한국사람이 생선가게를 열었습니다. 그러면 유대사람이 깜짝 놀랍니다. '아이쿠, 큰일났구나! 저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새벽부터 일을 하니까 손님 다 뺏기겠구나'하고 걱정을 합니다. 그런데 또 그 옆에 한국사람의 생선가게가 생겼습니다. 그러면 유대사람이 '이제는 됐다!'라고 생각합니다. 왜요? 저 사람들끼리 서로 질투하니까요. 자기네들이 죽는지 사는지 모르고, 경쟁하고 질투합니다. 결국에는 둘 다 망할 것을 뻔히 알고 있습니다. 미안하지만 이게 한국사람입니다. 혼자 앞에서 큰소리 치는 것은 잘해도 뒤에서 이름없이 섬기고, 받들고, 봉사할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둘만 모이면 싸우고, 셋이 모이면 망하고 맙니다. 협력할 줄을 몰라요.

 

▶나같이 우수한 종자는

그 옛날, 로버트 케네디의 인기가 한창 높았을 때입니다. 그의 기사가 라이프지에 크게 났습니다. 그때 그가 건강한 모습을 자랑하기 위해 스키장 눈 위에 웃통을 벗고 누운 것을 사진 찍었습니다. 그리고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자녀가 몇 명입니까?" "열 하나입니다" "어떻게 그다지도 많은 아이들을 가지셨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로버트 케네디의 대답이 라이프 지에 기사로 실렸는데, 저는 그것을 보고 섬찝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나같이 우수한 종자는 후손을 많이 퍼뜨려야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으로서 누가 감히 이러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따위 자랑을 하나님께서는 허락지 않으십니다. 로버트 케네디의 최후를 보십시오. 그러한 기사가 실린 지 얼마 후 그는 유언 한마디 못 남기고 비명횡사를 당했습니다.

 

▶예수의 역사 2천년

<예수의 역사 2천년>이라고 하는 책이 불과 며칠 전에 출간되었습니다. 예일대학 교수, 자루스라브 페리칸이라고 하는 박사님께서 쓰신 것입니다. 예수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역사를 문화사적 측면에서 고찰한 그런 책입니다. 그는 이 책 속에서 세계의 모든 역사는 곧 예수의 역사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의 역사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예수를 영접했느냐, 예수를 배반했느냐, 또 예수께 충성을 다 했느냐, 아니면 예수의 진리를 져버렸느냐, 이에 따라서 모든 나라, 모든 개인의 운명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상당한 중요한 의미를 가진 그런 책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세금매길 것이 없군요

어느 목사님 댁에 세무서에서 세금을 정하기 위해 나왔다고 한다. "재산이 얼마나 있습니까 ?" "저는 부자입니다." "그래요? 어떤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선 천당 가는 티켓을 가졌고, 건강한 아들딸이 있으며, 지혜로운 아내가 있고, 그리고 오늘밤에 누워 잘 수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부자입니다." "예, 부자임에는 틀림없는데 세금매길 것이 없군요."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자기 규범

성 베르나드라고 하는 유명한 분이 있습니다. 그는 모든 덕중에 겸손이 가장 중요한 덕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잘못은 교만에 있고 겸손하기만 하면 자유하고, 평화롭고, 능력의 사람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덕을 익히기 위하여 규례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자기 규범을 만들었어요.
첫째, 자기가 자기 죄를 알고 비천에 처할 줄로 알라. '내가 가장 큰 죄인이다, 모든 사람 중에 내가 큰 죄인이다'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자기 스스로의 위치를 가장 낮은 데에다 두라. 두 번째, 자기 죄를 통회하고 사실대로 고백하라. 죄가 그대로 나타나는데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마라. 잘못해서 잘못했다는데 그것이 잘못입니까? 숨길 것도 없고 변명할 것도 없다, 잘못과 실수에 대해서 일체 변명하지 말고 통회자복하고 그대로 정직하게 자기를 내세우고 살아라. 그것이 겸손이요, 이것을 은폐하려고 그러면 안 되지요.
셋째는, 남이 자기의 결점을 알고 그리고 업신여기던가 멸시할 때 결코 그를 원망하지 마라. 내 잘못이 잘못이리만큼 무슨 말을 하든 말든 그대로 고맙게 받아들이리. 그것이 겸손이다. 추호도 원망하지 마라. 혹은 섭섭한 마음도 가지지 마라. 그것이 겸손이다 라고 자기가 자기를 일깨웠다고 합니다. 또 사람이 나를 비난할 때, 혹은 모욕을 할 때, 그런 굴욕을 당할 때 하나님을 생각하고 조용히 참으라. 오히려 그에게 감사하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내가 모욕을 당할 때 절대로 비굴해져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나를 모욕하는 사람을 미워해도 안 되고 이것 때문에 원망할 것도 없어요. 그것이 겸손이다, 이거예요.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모든 전쟁과 공포와 역경과 고민과 이런 많은 사건들이 있을 때 걱정하지 마라. 언제 내 힘으로 살았냐? 어차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인데 내가 뭔데 걱정을 하느냐, 그것은 교만이다, 걱정이 교만이다, 그거예요. 옳은 말이에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겸손한 것이요, 자유한 것이요, 그것이 겸손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겸손한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

저는 겸손이라는 말을 생각할 때마다 꼭 생각나는 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성 프란치스입니다. 성 프란치스의 제자가 환상 중에 하늘나라에 가서 천국 구경을 했는데 거기에 보좌가 쭉 있는데 가장 높은 보좌가 있더래요. "이건 누구 겁니까?",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성 프란치스가 앉게 될 의자라'고 그랬습니다. 아무리 스승이지만은 너무 높아진다니까 좀 질투가 났어요. 질투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 다음에 성 프란치스를 만나 가지고 조용한 시간에 "선생님은 선생님을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척 대답하시는데 "나, 나는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때 제자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건 위선입니다. 선생님은 성자입니다. 세상에 강도, 살인, 뭐 도적질, 많은 악한 사람들이 많은데 선생님이 세상에서 제일 악하다면 그게 말이 됩니까?"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그건 자네가 나를 몰라서 그래. 나는 참으로 악한 사람이거든. 그러나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있어서 그 은혜로 인하여 내가 있는 거야. 내게 주신 은혜를 다른 그분들에게 하나님이 주셨다면 그분들은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이렇게 말할 때에 제자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가장 겸손한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에요. 가장 높은 사람이요, 가장 의의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들이 사람을 잘못 보았다!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누구보다도 방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 하루는 우연히 옛날에 드나들던 술집 거리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옛날에 함께 놀던 아가씨들이 따라나오며 반색을 합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동안 왜 안보였어요 ? 어서 들어오세요."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묵묵히 갈 길을 가며 중얼거리더랍니다. "너희들이 사람을 잘못 보았다 ! 나는 너희들이 알고 있는 그 옛날의 아우구스티누스가 아니다." 이렇듯 철저하게 나 아닌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내 관심은

에이브라함 링컨이 남북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노예 해방을 위한 전쟁이니 만큼 의미가 큰 것입니다 마는 어쨌든 서로 싸우고, 총을 쏘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양쪽이 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양쪽이 다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전쟁을 합니다. 또 간단히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7년으로 길어져서 많은 희생자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의 참모들이 고민에 빠졌습니다. 마침내 한 참모가 대통령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편에 계시다면 참 좋겠는데요. 그것을 도무지 알 수가 없군요" 링컨은 대답합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건가? 나는 하나님께서 내편에 계신지 안 계신지 의심해본 일이 없네. 내 관심은 오직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 내가 정녕 정말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가, 그것뿐이네."

 

▶왜 사람을 빨리 건지지 않았소?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실수로 강물에 빠졌습니다.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구조대원이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건질 생각은 않고 서서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빨리 들어가서 건지라고 야단을 해도 대꾸도 않고 가만히 서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거리다가 지친 나머지 기진맥진합니다. 그제야 구조대원이 물에 물었습니다. "왜 사람을 빨리 건지지 않았소?" 구조대원은 말합니다. "저렇게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발악할 때에 물에 들어가면 저가 나를 꽉 붙듭니다. 그렇게 되면 나도 죽고, 저도 죽습니다. 완전히 기운이 빠져서 손을 들어야 돼요."

 

▶이것이 은총입니다

H. A. 아이론 싸이드 박사가 쓴 [In the Heavener]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 내용 중에 이런 얘기 한 가지가 인용되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암살하려고, 한 여자 자객이 경비병처럼 남장을 하고 궁에 들어갔다가 살인에 실패하고 체포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여왕이 친히 나와 재판을 합니다. 심문을 받는 그는 담담하게 말을 합니다. "내가 잘못된 사람에게 고용되어서 이런 엄청난 죄를 지었지만 저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여왕이 그에게 "그래, 내가 너를 살려준다면 그 대가로 무엇을 하겠느냐?"하고 묻습니다.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는 그 순간에 죄인은 "조건이 있는 은총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여왕은 깊이 생각하고는 그를 석방했습니다. 무조건 석방했습니다. 이 사실을 두고 영국 역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왕에게 그녀만큼 신실하고 헌신적인 여종은 없었다--석방된 이 죄인은 여왕의 종으로 일평생을 살았는데 그렇게 성실하게 살았답니다. 자, 이것이 은총입니다.

 

▶빨리 전화를 걸어서

어느 산부인과 병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산모는 자기가 아들을 낳았다는 말을 듣자마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간호원에게 "우리 바깥양반에게 빨리 전화를 걸어서 아무 일류대학 부속 유치원 근처에 땅을 사라고 말해 주시오" 라고 했다고 합니다. 태어나자마자 세계문학 전집을 사다 주고, 당장 어른이 되고 당장 위인이 되기를 바라는 교육에 대한 극성은 알아줄 만합니다.

 

▶그때들은 이야기

어느 사형수 이야기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안 믿고 전도를 받아들이지 않던 철저한 무신론자인데 사형 집행을 며칠 앞두고 목사님을 부르더랍니다. 그래서 제 사랑하는 친구 목사님이 찾아갔습니다. 목사님은 너무 고마운 마음에 어떻게 성경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며, 예수를 믿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교회에 가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다닐 때 교회에 가면 상 준다고 해서 친구들 따라서 몇 번 가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들은 이야기를 아무리 지워 버리려 해도 지워 버릴 수가 없고, 그 이야기는 죽음을 며칠 앞둔 이 시간에 내 마음을 꽉 붙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넣어 달라고 했습니다."

 

▶내 마음도 내가 믿지 못할 때가 있다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공자에게 안회라고 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 제자가 32살로 세상을 떠날 때에 공자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하늘이 나를 버렸다고 땅을 치며 울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 사랑하는 제3자와 함께 있을 때의 일입니다. 먼 길을 여행하는데 양식을 구하지 못한 공자 일행은 근 일주일이나 굶었습니다. 안회는 사방에 다니면서 식량을 구해와 밥을 지었습니다. 그 냄새가 너무도 좋아서 공자는 안회가 밥을 짓는 곳에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안회가 솥뚜겅을 열더니 속으로 '아, 이럴 수가 있나?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내가 인의예지를 그토록 가르쳤는데 제가 먼저 먹어?'라며 마음이 몹시 상했습니다. 그래서 은글슬쩍 그런 내색을 비추었습니다. 이를 눈치챈 안회는 공자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솥뚜껑을 열고 보니까 얻어온 쌀이라서 그런지 수수가 몇 알 섞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밥을 스승님께 드릴 수도 없고, 버리자니 아깝고 해서 제가 그것을 골라 먹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공자는 얼마나 민망하고, 부끄럽고, 괴로웠는지 모릅니다. 그 때에 그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사람의 눈은 믿을 수 있는 것이지만 때때로 믿어서는 안될 때가 있다. 또 마음을 의지하고 살지만 내 마음도 내가 믿지 못할 때가 있다. 아니, 믿어서는 결코 안될 때가 있다." 잊지 말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내 의견은 옳고 남의 의견은 틀렸다는 것입니까? 믿을 만한 눈도 믿을 것이 못될 때가 있습니다. 내 판단, 내 지식, 내 마음도 더더욱 믿을 수 없을 때가 있기에 온유한 마음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 믿어

한국교회사에 유명한 김익두 목사님이라고 계십니다. 그분이 저와 성경공부를 하면서 자기 경험을 말씀해주신 것 중에 잊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더운 여름날, 김익두 목사님은 모내기하는 사람들이 점심 먹는 데 찾아가서 예수를 믿으라고 소리를 질렀답니다. 그런데 한 젊은 청년이 나서서 "목사님, 이 마을에서도 전도해도 잘 안될 것 같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이유를 물으니, "며칠 전 비 오는 날, 나무에 벼락이 떨어졌는데 불이 붙어서 그만 나무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또 바위에도 벼락이 떨어져서 바위가 깨지고, 논바닥에도 떨어져서 논바닥이 이렇게 패였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렇게 하셨겠습니까? 논바닥이 무슨 죄가 있고, 바위가 무슨 죄가 있고, 나무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라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김익두 목사님은 돌아서서 "하나님, 저에게 지혜를 주십시오"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목사님은 그 청년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자네는 초등학교에 다녔나, 서당에 다녔나?" "초등학교에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손에 무엇이 있었던가?" "막대기가 있었습니다." "그 막대기는 무엇을 하는 것인가?" "때때로 흑판이나 책상을 치고, 그러는 것이지요." "흑판이나 책상이 무슨 죄가 있나?" "아,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아이들이 조니까 졸지 말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아이들이 끝까지 졸면 어떻게 되겠나? 마침내 그 막대기가 아이들 머리위로 떨어지지 않겠는가? 그와 같이 벼락이 나무를 쳤고, 바위도 쳤고, 논바닥도 쳤다마는, 다음에는 사람들 머리에 떨어질 것일세." "그것, 안되겠는데요." "그러니 예수 믿어." 그래, 전도해서 교회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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