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예화 모음! (543) 곽선희목사 설교집 중에 쓰인 예화 ⑪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7. 16. 15:28

예화 모음! (543) 곽선희목사 설교집 중에 쓰인 예화 ⑪

 

▶노벨상 제도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노벨상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1833년에 스웨덴에서 노벨이라는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화학자요 발명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게 됩니다. 33세에 최초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조간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노벨은 깜짝 놀랐습니다.
 기사 내용인즉 알프레드 노벨이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 기자가 동명 이인을 잘못 알고 "노벨이 죽었다" 하니까 그 노벨인 줄 알고 당장 '노벨 사망하다' 하고 기사를 실었던 것입니다. 버젓이 살아 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노벨한테는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이너마이트의 왕 죽다, 죽음이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 죽다' 라고 되어 있는 기사 내용이었습니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노벨은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내가 살아 있기에 망정이지 정말로 죽는다면 이 기사가 사실이 되지 않겠는가, 오늘이라도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노벨은 마음속으로 깨닫는 것이 있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으로 모은 전 재산을 이제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자기 것을 다 내놓고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공헌한 사람에게 그것을 나누어주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노벨상 제도입니다.

 

▶밤새 새끼를 꼬라는 것 

옛날에 어느 돈 많은 할아버지가 노비를 많이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그 해 섣달 그믐날 그 노비들을 다 해방시켜주겠다고 노비들 앞에서 공언했습니다. 노비들은 굉장히 기뻐하며 손꼽아 그 날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노비로서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내일이면 꿈에 그리던 자유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창 기쁨에 들떠 있는 노비들에게 주인은 짚단 하나씩을 나누어주면서 그것으로 밤새 새끼를 꼬라는 것이었습니다.
 게으른 노비들은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부려먹고도 이제 고작 하루 남았는데 그게 아까워서 끝까지 부려먹겠다고 ? 원 세상에, 이리도 고약한 할아버지가 또 있을까 ?' 그들은 되는 대로 짚을 한 움큼씩 잡고 굵직굵직하게 새끼를 꼬았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렇게나 내던져놓고 잠들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또 한쪽 사람들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이제 하루밖에 안 남았으니 기왕 하는 것 끝까지 잘해주고 나가자.' 그들은 밤새도록 곱고 가늘게 새끼를 꼬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주인은 광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리고 노비들한테 말했습니다. "여기에 쌓여 있는 엽전을 어제 각자 꼬아놓은 새끼줄에 끼워라. 끼울 수 있는 만큼 끼워서 가지고 가거라" 자, 노비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립니다. 새끼를 아무렇게나 굵게 꼰 사람들은 끄트머리에 겨우 몇 개, 그것도 간신히 매달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하루까지 충성한다고 곱고 가늘게 꼰 사람들은 거기에 엽전을 끼고, 끼고 해서 바리바리 실어 가지고 나갔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던 일을 그대로 할 것이다 

요한 웨슬리가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웬 여자가 다가오더니 웨슬리에게 이상한 질문을 합니다. "만일 내일 밤 12시에 목사님이 죽게 되어 있다면 남은 시간에 목사님은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 웨슬리는 품속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대답합니다. "여기에 적혀있는 원래의 계획대로 할 것입니다." 하던 일을 그대로 할 것이다 --- 참으로 뜻깊은 대답입니다.

 

▶나를 가리켜 구두쇠라고 하니 

한 농부가 친구를 보고 하소연했습니다. "나에게는 땅도 많고 재산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죽은 다음에는 이 모든 것을 자선사업에 쓰도록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유서를 써놓았다. 그러니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진배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구두쇠라고 하니 속상하구나." 그러자 그 친구는 다음과 같은 우화를 들려주었습니다. 하루는 돼지가 암소를 보고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나는 남들 보기에 많이 먹고 살도 쪘지만, 죽으면 내 살과 가죽을 고스란히 주인한테 바치지 않는가, 그런데도 남들은 왜 나를 보고 '돼지야, 돼지야' 하며 손가락질하는지 모르겠어." 그러자 암소가 핀잔을 줍니다. "너는 실컷 먹고 살이나 잔뜩 쪄서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다가 죽고나서야 고작 쓸모없는 고깃덩이나 주인한테 바치지만, 나는 어떠냐 ? 나는 열심히 밭을 갈아주고 짐도 져주고, 심지어는 우유도 바치지 않느냐 ? 나는 살아 있을 때에도 이렇게 도움을 드린단 말이다. 그러고도 죽은 다음에는 주인에게 고기까지 바치지 않느냐 ?"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종말에 대하여 재미있는 비유를 이야기했는데 들어보라. 관객이 초만원을 이루고 있는 어느 극장 뒤쪽에서 불이 났다. 관객들은 재미있는 연극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다. 극장 주인은 불난 사실을 갑자기 알릴 경우에 벌어질 큰 혼잡을 예상하고 조용한 설득을 시도하기로 했다. 그래서 우선 배우들 중에 가장 인기가 있는 배우 한 사람을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당신이 나가서 관객이 당황하지 않도록 잘 설명하고 모두 차분하게 이 극장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유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인기 배우는 막중한 사명을 띠고 무대 위에 서서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이러저러해서 불이 났는데 모두 차례를 지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 그랬더니 관객들은 이것이 연극인 줄 알고 모두들 박수를 친다. 아주 재미있어 한다. 당황한 연극 배우가 이것은 연극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곧 불길이 번져올 것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관객들은 더 열심히 박수만 친다. 아무도 믿어 주지를 않는다. 자, 어찌 되었겠는가 ?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극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서로가 먼저 빠져나가려고 아우성을 친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저의 유일한 행복입니다 

어느 마을에 나뭇짐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 믿음이 어지나 좋던지 혼자 살면서도 늘 신앙 생활에 힘쓰며 입에서는 찬송이 떠나는 날이 없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 가지고 내려올 때에는 언제나 교회 앞에 나뭇짐을 세워 놓고 성전에 들어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도를 드린 뒤에 기쁜 얼굴로 나오곤 했다. 날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목사님이 하루는 그 할아버지한테 물었다. "할아버지는 무슨 소원이 그렇게 많아서 늘 기도를 하십니까 ?" 할아버지가 대답한다. "아닙니다. 저는 특별히 무엇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다지 필요한 것도 없습니다. 저는 다만 이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 얼굴을 바라볼 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저를 내려다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마주보는 것만이 저의 유일한 행복입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차라리 당신 스스로 고치라 

책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할 때, 의사는 자기의 온 정성과 마음과 기술을 다해서 환자를 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골치 아프고 손을 떼고 싶거나 돕고 싶지 않은 환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 첫 번째가 치료하는 의사보다 더 많이 아는 척하는, 잔소리 많은 환자라고 합니다. 진찰 결과라든가, 처방이라든가, 약이라든가, 의사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이 없습니다. 다 의심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다 압니다. 이런 환자는 '차라리 당신 스스로 고치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영 대하기 싫다고 합니다.
 두 번째 환자는 미안한 말씀입니다 마는 학교 교사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어린아이를 가르쳐 만사를 따져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왜 그라느냐, 그러면 이렇게 된다, 또는 공식에 의해서 모든 것을 따지는 그런 체질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의사가 이렇게 저렇게 치료를 하면, 이것 먹으면 낫느냐, 이렇게 하면 꼭 낫느냐, 왜 그러느냐,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 합니다. 치료라는 것이 A+B는 아닙니다.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살고 죽고 가 어디 우리 마음대로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따지니까 의사가 그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대답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람, 참 골치 아픈 환자구나 할 밖에요.
 세 번째 환자는 조급한 마음을 가진 환자입니다. 예를 들어 항생제 같은 약은 투여하고 나서 적어도 사흘이 지나서야 효과가 납니다. 그런데 약을 한 봉지 먹고는 왜 안낫느냐, 아침에 치료받고는 저녁에 왜 안낫느냐, 그리고 왜 이렇게 아프냐고 한답니다. 그래서 보따리 싸가지고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옮겨 다니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 만나면 아주 골치 아프고 '빨리 다른 데로 가라'하고 싶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도 본래 위장이 좋지 않아서 가끔 발작을 했습니다. 그래, 십 년 동안이나 한 의사로부터 계속 치료를 받았습니다. 위가 나빠질 때마다 그 의사에게 가서 회복하고, 또 회복하고..... 그러다가 그 방면에 더 훌륭한 의사가 있다고 듣고는 새로운 의사에게 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거기서 치료를 다 받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모두가 후회했습니다. '전에 치료받던 그 의사에게서, 그 병원에서 치료받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왜 이런 것입니까? 우리의 교육도, 우리의 신앙도, 우리의 인격도 마찬가지입니다. 영 순종할 줄을 모르고, 영 믿음이 없고, 만사를 조급하게 생각하고---- 이런 인간은 구제불능입니다. 의사도 이런 사람을 만나면 아주 골치 아파합니다.

 

▶단 한 가지 안 해보신 것 

월링턴이라는 영국의 해군제독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 해군제독에게 골치 아픈 일이 생겼습니다. 병사하나가 상습적으로 탈영을 하는 것입니다. 군대에 있어서 탈영은 사형죄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이 병사는 붙잡아서 감옥에 넣어두면 또 탈영하고, 붙잡아두면 또 탈영하고.... 사고뭉치입니다. 더 이상 이렇게 놓아두다가는 영구 해군의 기강이 무너지겠기에 마침내 군법대로 사형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형선고를 내리면서 윌링턴 제독은 병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를 가르치고 싶었다. 제대로 사람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너에게 채찍을 들기도 하고, 처벌을 하기도 하고, 강제로 노동을 시키기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가르치기도 하고, 갖은 노력을 다 했는데도 안 되는구나, 그런고로 너는 사형이다." 그 때에 옆에 있던 한 사람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제독님, 제독님께서는 저 병사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보았다고 하셨는데, 단 한 가지 안 해보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용서입니다." 제독은 곰곰이 생각하고는 맞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병사를 무죄석방, 용서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병사가 그때부터 좋은 청년이 되었더랍니다.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어떤 청년이 성경을 보는데, 전체적으로 보는 법이 없고 또 한 절씩만 봅니다. 성경을 보기는 봐야겠기에 꼭 한 구절씩만 보는데 아무 데나 점치듯이 딱 펼쳐 봅니다. '예수께서 가시니라'--그래, 나도 가야지, '예수께서 주무시니라'--나도 주무셔야지,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성경을 딱 펼쳐놓고 보았더니 마태복음 27장 5절이 나왔습니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영 찜찜한 기분이 들은 청년은 아무래도 한 절을 더 봐야겠다 싶어 또다시 성경을 펴보았더니 누가복음 10장 37절이 나왔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더 곤란해진 청년은 다시 한번 성경을 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요한복음 13장 27절이 나왔습니다.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86년 동안 나는 그분을 섬겨왔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복음을 위하여 순교한 순교자들이 많습니다. 이것을 기록한 것을 순교사라고 합니다. 이 순교사의 금자탑이라 할 만큼 두드러진 인물은 서머나교회의 감독 폴리캅입니다. 그는 2세기 초중엽 서머나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던 감독인데, 그의 장엄한 순교는 모든 사람 중에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는 86세까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봉사했습니다. 고결한 인격의 소유자였기에 믿는 사람들은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 심지어 기독교를 핍박하는 사람들까지도 그를 존경했습니다. 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폴리캅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사형 집행인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감독이여, 나는 당신이 이렇게 나이 많은 노인의 몸으로 비참하게 죽어 가는 것을 원치 않소. 그러니 거짓으로라도 제발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한마디만 해주시오. 그러면 당신을 놓아 줄 테니 다른 지방에 가서 예수를 믿든지 전도를 하든지 마음대로 하시오."
그때에 폴리캅은 대답했습니다. "86년 동안 나는 그분을 섬겨왔습니다. 그분은 내게 아무런 잘못도 없고 거짓말을 하신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분,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한마디의 거짓말도 할 수 없다고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세계와 교회를 위하여 두 시간 동안 큰 소리로 기도한 뒤에 화형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거룩하고 담대한 죽음입니까 ? 당시 온 교회가 그의 순교를 애도했음은 물론, 지금도 유럽에서는 해마다 폴리캅의 순교 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거행되고 있습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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