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모음! (538) 곽선희목사 설교집 중에 쓰인 예화 ⑥
▶아버지, 우산 !
일본에 큰 가뭄이 들었습니다. 몇몇 달을 두고 비가 오지 않자 이대로 가다가는 농사를 다 망치겠다고 사람들은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기우제를 지낸다 굿을 한다 하고 난리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 우찌무라 간조는 아이들과 함께 식사 기도를 올리는데 "하나님, 비를 주십시오. 오늘 꼭 비를 주실 줄로 굳게 믿습니다" 하고 기도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이 학교 갈 채비를 합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인 큰 아이는 아무 소리 없는데 3학년인 작은아이가 난데없이 우산을 찾습니다. "아버지, 우산!" "맑은 하늘에 우산은 왜 찾느냐?" 우찌무라 간조가 어리둥절해집니다. 그런데 이 작은아이 하는 소리 좀 보십시오. "아버지, 아까 기도하실 때에 오늘 비 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우산을 가지고 가야지요!" 우찌무라 간조는 속으로 아차 하고 크게 회개했다고 합니다. '나의 믿음은 전부 거짓이다. 저 아이의 믿음이야말로 참 믿음이다' 그 아이 보기가 부끄러울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안정을 위한 4박자 균형
정신위생에 대하여 세계적인 석학이요 전문가인 데이비드 핑크 박사는 <안정을 위한 4박자 균형>이라고 하는 논문을 써서 많은 사람에게 큰 감명을 주고있습니다. 정신적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네 가지 요소가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정신적 안정입니다. 우리는 때로 정치적 안정, 경제적 안정, 사회적 안정을 논하지만, 그 모든 것의 근본은 한 사람, 그 사람이 가지는 정신적 안정이 우선입니다. 공부를 하는 학생도 정신적으로 안정되지 않으면 자기 실력을 다할 수 없고, 사업을 하는 분도 또 과학을 하는 분들까지도 정신적 안정이 없으면 창의력이 작용하지를 못합니다. 모든 것 중에 가장 근본적이고 우선적인 것이 정신적 안정이라고 그렇게 일반적으로 말하고있고, 또 우리가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네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일을 말합니다. 워크(work). 그 다음엔 놀이, 플레이(play)를 말합니다. 셋째는 사랑, 러브(love)를 말합니다. 넷째가 예배, 워쉽(worship). 그래서 약자로 'WPLW'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목사도 아니요 성직자도 아닙니다마는, 하나의 의사요 학자입니다 마는, 예배를 이렇게 중요하게 모든 것보다 우선적인 것으로 지적해 말하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안정하기 위해서는 예배가 그 모든 것 중에 가장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이올시다. 즉,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이 바른 관계가 있지 않고는 그 누구도 정신적으로 안정을 얻을 수가 없다. 그것이 인간의 본래모습이라는 것이올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우리가 그렇게 계속 읽어 왔고 경험해 온 것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쉽게 잊어버리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데가 있다면 내가 가겠다
중국의 전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염라대왕 앞에 세 사람이 불려갔습니다. 염라대왕이 생명록을 보니까 이 세 사람은 아직 죽을 사람들이 아닌데 저승사자가 잘못 데려온 것입니다. 그래서 염라대왕은 세 사람에게 사과를 하고 "자네들은 되돌아가서 몇 년 더 살다 와야겠네. 우리가 실수해서 잘못 데려온 값으로 자네들에게 소원 한 가지씩을 들어주겠네. 각자 소원을 말해보게"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너무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돈 많이 가져 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염라대왕은 그에게 돈을 듬뿍 주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돈이란 권세와 함께 오는 법이니 저에게는 권세를 주십시오" 해서 권세를 받았고, 세 번째 사람은 "저는 돈도 권세도 필요 없습니다. 경치 좋은 곳에 아름다운 집이 있어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오래오래 살고 싶습니다" 했는데 이 소원에 대해서는 염라대왕이 "에끼 놈!" 하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런 데가 있다면 내가 가겠다."
▶나는 참으로 큰 죄인이야
우리가 잘 아는 성자 프란체스코의 일화 중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그의 제자 한 사람이 기도하는 중에 환상으로 천국을 구경했다고 한다. 그곳에 크고 작은 보좌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중에서 유달리 크고 화려한 한 보좌가 눈에 띄었다. 그는 궁금하여 천사에게 이 보좌가 누구의 것이냐고 물었다. 천사는 대답하기를 이 자리는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프란체스코가 앉을 보좌라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제자는 자기 스승이지만 너무 높아지는 것에 시샘이 나서, 어느 날 조용히 프란체스코에게 물었다고 한다. "선생님, 선생님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프란체스코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일게. 가장 큰 죄인이야"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제자는 "선생님, 그것은 위선이요 거짓입니다. 세상에는 얼마나 나쁜 사람들이 많은데 성자로 일컬어지는 선생님께서 어찌 그런 말씀을 다 하십니까? 그것은 정말 잘못된 거짓말입니다"하고 반박을 했다. 이때 성 프란체스코는 기가 막힌 대답을 했다. "자네가 나를 잘 몰라서 그런 걸세. 나는 참으로 큰 죄인이야. 만일에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그 튼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푸셨다면, 그들은 모두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일세." --- 이런 간증을 했다는 것이다.
▶세상의 빛
성화 중에 홀맨 헌트라는 화가가 그린 '세상의 빛'(The light of the world)' 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다. 우리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성화이다. 그 그림에는 한 사람이 등불을 들고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던 것으로 보이는 문 밖에 서 있다. 그 문 주변에는 덩굴이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어서 그 문이 오랫동안 닫혀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그 문은 바깥에서 잡을 수 있는 손잡이가 없다. 그러니까 이 집에 등불을 들고 들어가려 하지만 손잡이가 없어서 안에서 열어 주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문이다. 정말 마음의 문을 열지 아니하면 방법이 없다.
▶제 생일잔치에나 한번 와주시면
어떤 나라에 큰 난리가 났습니다. 급기야 왕이 그 왕궁을 버리고 시골로 피난을 갑니다. 왕은 농부의 옷으로 갈아입고 신하 몇 사람과 함께 어느 마을에 몰래 숨어 들어갔습니다. 한 농부가 이 낯선 길손들을 잘 영접해주었습니다. 변장을 한 왕과 신하들은 며칠 동안 거기서 잘 묵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라 정세가 회복되어 왕은 환궁하게 되었습니다. 환궁한 왕은 그 농부가 자기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해준 것과, 누구인지 모르면서도 남을 잘 대접해준 것이 기특해서 농부를 왕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농부는 낯선 길손들이 그실 왕과 신하들이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왕은 농부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소원이 있으면 말해보라." 그러나 농부는 이렇다할 소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왕이시여, 이제 와서 제가 출세를 원하겠습니까, 영화를 원하겠습니까, 그렇다고 금은보화를 원하겠습니까? 그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아무 소원이 없습니다. 다만 며칠 후 제 생일잔치에나 한번 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침 환갑인 지라, 자식들이 힘을 모아서 조촐하나마 잔치를 열어준다는 군요." 왕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드디어 며칠 후, 한 나라의 왕이 시골 초가집에 사는 일개 농부의 환갑잔치에 왔습니다. 그 후로부터 그 집은 귀한 집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집이 되었습니다. 그일 하나로 인해 농부의 가문은 위대한 가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일본의 종교가이자 사회운동가인 가가와 도요히꼬(賀川豊彦)는 소실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서자로 태어났기에 그의 생활은 언제나 우울하였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의 진리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자세는 아닙니다만, 학교에서 강의를 듣는 시간에까지도 성경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강의하는 선생님은 좀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래서 질책하듯이 "너, 지금 무슨 책을 보고 있느냐?"라고 물어보자 가가와 도요히꼬는 벌떡 일어나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라고 힘차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는 성경을 읽는 동안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성경에서 진리를 찾아 헤매었습니다. 그 진리를 찾는 순간, 다른 책을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성경이 아니라 백화점 물품 구입 목록
어느 목사님이 길을 가다가 그 근처에 사는 교인 댁 한 곳이 생각났습니다. 그 목사님은 내가 여기까지 왔으니 그 댁을 심방하고 가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예고도 없이 목사님의 방문을 받으니 심방 받는 집에서는 반갑게 목사님을 맞이했습니다. 목사님은 자리에 앉자 말했습니다. "생각나는 구절이 있어서 한 말씀드리고 가겠습니다. 성경책을 좀 가져오십시오" 그때에 그 교인은 생각했습니다. '이 기회에 내가 예수님을 얼마나 잘 믿는지 목사님께 보여드려야지' 그래서 아이를 불러 말했습니다. "얘, 너 안방에 가서 엄마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책을 가져다주겠니?" 목사님 들으시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꼬마가 쏜살같이 달려가서 들고 나오는 책은 성경이 아니라 백화점 물품 구입 목록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망신입니까 ? 여러분, 잘 믿는다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까 ? 여러분 가정의 어린아이에게 물어보십시오. 아이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추어졌는가를 보십시오. 그 맑은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이야기하십시오.
▶장작을 몸소 패면 겹으로 더워진다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옛날 장작불을 때는 난로 앞에 이런 글을 새겨 놓았었다고 합니다. '장작을 몸소 패면 겹으로 더워진다'. 이 얼마나 그럴듯한 말입니까 ? 잠자리에서 금방 일어나 불을 쬐려고 하면 불 속에 들어가도 춥습니다. 그러나 몸소 장작을 패면 패는 동안에 덥고, 불피워서 덥습니다. 이중으로 따뜻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
18세기 영국의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이 세인트 폴 성당을 재건할 때의 일입니다. 여러 해가 걸리는 그 큰 공사를 추진해나가던 어느 날 크리스토퍼 렌은 평상복 차림으로 공사 현장에 나가보았습니다. 그는 채석장에서 돌을 다듬느라고 수고하는 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 이 사람은 묻는 사람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퉁명스럽게 대답합니다. "여섯 자 길이에 석 자 폭 되는 돌을 다듬고 있소" 그는 다시 다른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이 사람 역시 반갑지 않다는 듯이 건성으로 대답합니다. "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오. 벌써 몇 해째 이렇게 돌만 다듬고 있소."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은 똑같은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집을 짓고 있습니다. 이 거룩한 사역에 한몫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격스러워서 즐거운 마음으로 이 돌을 다듬고 있습니다."
▶어떠한 죄인이라도 사랑하십니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일본이 낳은 유명한 종교가입니다. 그의 글을 읽고 감동 받은 분들이 많으실 줄 압니다. 그는 시장 아버지와 첩이었던 기생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집에서 자라기는 했으나 첩의 아들이라고 눈칫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본처의 자식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저주스러운 생이었겠습니까? 왜 나 같은 것을 낳았느냐고 부모를 원망하면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담 모퉁이에 우두커니 기대서서 역시 자기 생을 비관하고 있을 때에 북 치고 나팔을 불면서 지나가는 구세군 전도대를 만났습니다. 저들이 전도하면서 외칩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사랑하십니다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그들 가까이로 다가서서 물었습니다. "기생 아들도 사랑하나요?" "아무렴요, 어떠한 죄인이라도 사랑하십니다" 그 말을 듣고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그가 쓴 글을 여러 번 읽어보았습니다. 그의 글 가운데에는 '나는 기생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는 이야기가 종종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그 확실한 의식, 그 감격이 가가와 도요히코를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다만 부러울 뿐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의 일화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여러 해 동안 평양감옥에 있을 때에 한 감방에서 주영하라고 하는 공산주의자와 같이 생활하였다고 합니다. 일부러 그렇게 함께 지내도록 만들어놓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기철, 주영하--공교롭게도 같는 주씨입니다. 그래서인지 서로 툭 터놓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게됩니다. 그런데 주영하라는 사람은 모스크바대학을 나온 철저한 공산주의자요, 해방 후에는 북한에서 상당한 고관으로 지내던 사람입니다. 어느 날, 주영하가 목사님에게 말합니다. "내가 공산주의자가 되기 전에 형님을 만났더라면 예수쟁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주기철 목사님으로부터 많은 감화를 받았던가봅니다. 이에 주기철 목사님도 "내가 예수 믿기 전에 당신을 만났더라면 나도 틀림없이 공산주의자가 되었을 것입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제 주영하가 끝으로 중요한 말을 합니다. "나는 공산주의자로서 이 땅에 평등을 이루고, 이 땅에 자유를 이루고, 모든 사람들이 잘살게 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이렇게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놀란 것이 있습니다. 나는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납니다. 그런데 예수쟁이들은 죽음 앞에서도 아주 희색이 만면하여 하나님 앞에 간다면서 죽더군요. 그 모습을 저는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부러울 뿐입니다."
▶사랑이 부족해서 생긴 병입니다
어느 소아과 병원 의사 선생님이 파리하게 병든 어린 아이를 진찰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아이는 내가 고칠 수 있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려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답답한 마음으로 "무슨 병에 걸렸다는 것입니까 ?" 하고 물었더니 그 의사는 대답했습니다. "사랑이 부족해서 생긴 병입니다." 다시 어머니는 물었습니다. "나는 이 어린 아이를 열심히 사랑했는데요." 의사 선생님은 말합니다. "어머니는 사랑했다고 하지만 이 어린 아이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은 흔적이 없습니다."
▶커다란 금 십자가
어느 때 친구가 전에 없이 커다란 금 십자가를 가슴에 단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붙들고 한 마디 했습니다. "이 사람아, 내가 어느 사람이 쓴 논문을 보았더니 가슴에 단 십자가가 크면 클수록 위선도가 높다 그러더구만" 그랬더니 그는 당장 떼서 주머니에 넣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마디 더했습니다. "주머니에 떼서 넣는 사람은 더 위선자라고 그러더구만."
▶너 왜 우냐
어느 어머니가 딸 셋을 데리고 혼자 살았습니다. 거기에다 고아원에서 양녀 하나를 더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이 애를 동생으로 알고 너희들이 같이 사랑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어린 아이가 낯선 곳에 와서 계속 웁니다. 언니들이 이 고아원에서 데려온 아이를 위해서 인형도 갖다 주고, 먹을 것도 갖다 주고, 옷도 갖다 입히고 하며 별 방법을 다 썼지만 이 어린 아이는 계속 웁니다. 사흘이나 우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제일 큰 언니 되는 아이가 너무 답답해서 "너 왜 우냐" 하면서 같이 붙들고 울었습니다. 한참 울다가 둘이 쓰러져 잤는데 그 다음부터는 안 울더랍니다. 문제는 나와 함께 울어 줄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인간이 권위의 한계를 느낄 때
유명한 정신 의학자 칼 융(Carl G.Jung)은 "인간이 권위의 한계를 느낄 때 그에게는 적어도 세 가지의 심리적 현상이 일어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있어 벽에 부딪히거나 혹은 '이것이 한계다'하고, 지능의 한계, 능력의 한계, 그리고 인생이라는 길에서 이것이 한계다, 하고 느끼는 순간에 이러한 심리 현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첫째는 '불안함'입니다. 이 한계 다음에는 어떤 일이 있을까--한계 밖의 일에 대해서는 예측도 불허합니다. 그러므로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이 앞에 어떤 일이 있을까 하며 그야말로 망망한 대해에 던져지는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둘째는 '억압감정'입니다. 아주 확 눌려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사실보다 더 무겁게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존재는 아주 사라진 것같이 용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제자의 길과 그 개체
그런고로 본훼퍼 같은 신학자는 <제자의 길과 그 개체>라고 하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세 가지 결단이 있어야 한다. 첫째, 단독 결정이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 물을 얘기가 아니다. 이것은 실존적인 문제이니까. 아내고 남편이고 자식이고, 아무와도 관계없는 것이다. 이것은 절대생명의 문제이니까 단독으로 결정해야 한다. 둘째, 단독으로 나서야 한다. 거추장스러운 것은 생각할 수가 없다. 이것은 주님과 나와의 관계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이기 때문에 혼자 나서야 한다. 셋째, 세상과의 관련성을 청산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 앞으로 가는 길에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끊어버려라. 툭툭 잘라 버려라. 그러지 않고는 결코 사람의 바른 모습, 그리스도인의 바른 제자가 될 수 없다'
▶최고 계급자에게 순종하면 돼
대학 다니다가 군에 들어간 육군 신병이, 내가 이 3년 동안 군인생활을 하면서 일생 추억에 남을 만큼 좋은 군인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선배 되는 병장에게 물었습니다. "군인 생활을 좀 깨끗하게, 명예롭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좀 자세하게 가르쳐주십시오." 선배 되는 병장은 껄껄 웃으면서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군인 생활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 오직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면 되느니라. 명령 떨어지는 대로만 시간, 시간 복종하면 돼. 네 앞에 할 것까지 미리 걱정할 것은 하나도 없어." "아, 간단하군요." 가만있다가 이 머리 좋은 청년이 다시 질문합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동시에, 이 사람은 이렇게 하라, 저 사람은 저렇게 하라 하고 여러 상관이 명령을 각자 다르게 내리면 그때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이 사람아, 별걸 다 걱정하는군. 그럴 때는 말이야, 최고 계급 자에게 순종하면 돼." 대단히 중요한 예화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것이다
왜 우리의 신앙 생활이 나약해지는 것입니까? 도대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하나의 관계성입니다. 윌리암 바클레이는 이 문제에 이렇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심판자를 이제는 아버지로, 그리고 항상 두려워하던 하나님을 이제는 사랑하는 하나님으로, 공포의 대상을 사랑의 대상으로, 그리고 이웃에 대해서는 증오의 대상을 사랑의 대상으로, 이기적인 생각에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질투나 앙심에서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아주 쓸모 없는 존재로 알았으나 예수 안에서 이제는 소중한 존재로, 실패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은 성공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허무한 것이 아니라 여기에 막중한 의미가 있다는 것으로 생각이 바꾸어지는 것, 이것이 예수 믿는 것이다."
▶그 말씀만 믿고 살았습니다
선교사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위해 수고하다가 1896년에 영국으로 돌아왔다. 이때 글래스고 대학에서는 그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했는데, 그는 아프리카에서 사자에게 찢기어 병신이 된 팔을 그대로 안고 단상에 섰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높이 칭찬할 때, 그는 답사하기를 "저는 다시 아프리카로 가렵니다. 지금까지 저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신 주님의 그 말씀만 믿고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입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진리
성 어거스틴은 진리를 네 가지로 구분하여 말했다.
첫째, 진리는 사실이다. 즉 셋에 셋을 곱하면 아홉이고, 다윗은 유대나라 왕이었다는 사실이 진리라는 것이다.
둘째, 진리는 실재하는 것이다. 존재한다는 말이다.
세째, 하나님의 말씀 곧 그리스도가 진리이다.
네째, 그 실재를 깨달은 사실 그만큼이 진리다 라는 것이다.
▶인류에게 봉사하였다
여러분, 나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설교를 좋아한다. 그분은 마지막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성대한 장례식을 원치 않습니다. 나의 장례식을 집전하는 분은 부디 너무 길게 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조사에서는 나의 노벨 평화상에 관하여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학위, 명예 등에 관해서도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것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정의를 위해 외쳤다고 만 해 주십시오. --- 오직 인류를 사랑하고 인류에게 봉사하였다고 만 말해 주십시오."
▶동생이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인정할 만큼 정결하고 경건하게 일생을 살아 온 한 수도사가 있었다. 마귀들이 그를 시험하였다. 돈으로 시험하고, 여자로 시험하고, 직위로 시험하고 --- 별의별 방법을 다 써서 시험하였으나 수도사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마귀들도 속수무책이었다. 이럴 때에 어느 마귀가 자신 있게 나섰다. "내가 시험을 걸겠다"하고 수도사에게 다가갔다. "수도사님!" 하고 인사를 했다. "왜 그래?" 수도사가 의연한 태도를 보인다. 마귀는 점잖게 말한다. "수도사님의 동생이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대번에 수도사의 얼굴빛이 달라지더란다.
▶거룩한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설화 한 도막을 소개하겠습니다. 요단강 계곡의 경사면에 세 그루의 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이들 나무는 저마다 나름의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나무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세공을 받아 하나님의 성전의 재목이 되고 싶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경배하는 하나님 성전의 한 부분이 됨으로 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높이, 높이 찬양되기를 소원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 나무는 바다로 가고 싶었습니다. 곧 범선이 되어 가지고 사람들의 왕래를 도울 뿐 아니라 온 세계로 두루 다니면서 소중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쓰임 받기를 소원했습니다. 세 번째는 나무는 "나는 여기 남고 싶다. 높이, 높이 자라나 하늘을 향해 가지를 쳐들고 있겠다. 그리하여 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내 그늘에 앉아 쉬면서 하나님을 사모하게 해주겠다" 라고 소원을 밝혔습니다.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고 싶어했던 나무는 찍혀서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세공을 받아 작은 구유가 되었습니다. 나귀가 핥아먹고 개가 핥아먹고 하는 먹이통이 되어 마굿간 한 귀퉁이에 팽개쳐지는 슬픈 신세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나무는 큰 배가 되어 대양으로 나가고 싶었는데 서글프게도 찍히고 깎이어 조그마한 조각배가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갈릴리 호수로 가게 되어, 꾀죄죄한 어부들이나 올라타고 비린내나는 생선 마리나 싣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뿐입니까? 일 없을 때에는 쓸모 없이 버려진 채 호숫가에서 따분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세 번째 나무는 그 자리에 그냥 있고 싶어한 소원과는 달리 어느날엔가 웬 사람들이 와서 결국은 찍혀버렸고, 그리고 다듬어져서 엉뚱하게도 저주받은 죄인들을 매달아 죽이는 형틀, 십자가가 된 것입니다. '아, 나는 왜 하필이면 이렇듯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단 말인가' 하고 그는 탄식해 마지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만백성을 구원하시고자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께서 숱하게 있을 좋은 처소를 다 놔두고 하필이면 그 천덕꾸러기 말구유에 태어나시는 것이어서, 첫 번째 나무였던 그 말구유가 결국은 더할 수 없이 큰 영광을 입은 것입니다. 다시 세월이 더 흘러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에 오셔서는 그 보잘것없는 조각배에 올라앉으시고 하나님나라의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어서, 두 번째 나무였던 그 조각배가 그렇듯 주님께 강단을 드리는 뜻밖의 영광을 입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3년쯤의 세월이 더 흘렀습니다. 세 번째 나무였던 그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못 박혀 달리심으로 길이길이 만백성의 추앙을 받는 거룩한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 이런 내용의 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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