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모음! (539) 곽선희목사 설교집 중에 쓰인 예화 ⑦
▶저는 구두를 만들던 사람이 아니라 깁던 사람이었습니다
윌리엄 커레이라고 하는 유명한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는 영국사람으로 인도에 가서 선교 활동을 많이 한 분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선교사의 한 분입니다. 그는 언어에도 능통하여 성경을 34개 국어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기독교인은 물론 모든 영국인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높이 존경하여 그를 만나고자 했으며 또한 그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어느 날, 큰 만찬회가 열렸습니다. 윌리엄 커레이를 모시고 베푸는 환영회였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는 으레 못된 사람이 끼게 마련인 가봅니다. 그곳에도 윌리엄 커레이가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는 것에 배가 아파서 망신을 주려고 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분에게 참으로 무례한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당신은 젊었을 때에 구두를 만드는 직공 이었다면서요?" 과거를 들춥니다.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는 순간에 이렇듯 불쾌한 질문을 한 것입니다. 이 물음에 윌리엄 커레이는 껄껄 웃으면서 평화로운 얼굴로 대답합니다. "자매 님께서는 잘못 알고 계십니다. 저는 구두를 만들 줄 모릅니다. 저는 구두를 만들던 사람이 아니라 깁던 사람이었습니다. 남들이 신다가 헤진 구두를 깁는 직공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저를 부르심으로 주님의 사람이 될 수 있었고, 선교사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일순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숙연해졌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계시다
내가 구라파의 어느 교회에 갔다가 참 좋은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예배당 정면에 십자가를 세워 놓았지만 내가 방문했던 교회의 예배당 정면에는 동그랗고 커다란 등을 만들어 놓았다. 내가 이상하게 여기고 물어 보았더니 그것은 하나님의 눈이라고 그랬다.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눈앞에 앉아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계시다. 이것을 항상 의식하면서 예배드리자 해서 그런 상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일리 있는 이야기 아닌가 ?
▶오른 빰을 치는 자에게 왼뺨을 돌려대는 것은
1920년에 김인서 장로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방에는 또 한 사람의 독립운동가가 있었는데, 바로 그 유명한 윤병구 선생입니다. 이 사람은 비폭력과 무저항주의에 대해서 비난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김인서 장로를 만나게 되자, 대뜸 한마디 합니다. "성경에 보면, 누구든지 네 오른빰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라 했는데, 그따위로 해가지고 어떻게 독립운동을 하겠소? 폭력을 쓰는 자는 폭력으로, 무력을 쓰는 자는 무력으로 대항해야 될 게 아니오?" 그 때에 김인서 장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뺨을 치는 자에게 마주 대하여 치는 것은 혈기의 용맹이요, 소인의 용맹이요, 필부의 용기일 뿐입니다. 또, 한 사람밖에 대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른빰을 치는 자에게 왼뺨을 돌려대는 것은 거룩한 용기요, 만인을 감복하게 하는 대용(大勇)이요, 영적 용기입니다." 이 말을 듣고 감동해서 윤병구 선생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물러선 기독교인
콘스탄틴 대왕은 로마에 기독교의 자유를 선포한 역사적인 인물이다. 그의 부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보니, 그의 신하인 문무 백관들 가운데 기독교 신자들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비기독교인 이었기에 부하들에게 관직과 기독교 중 하나만 선택하도록 명령했다. 기독교를 따르려면 관직을 포기하고, 관직에 있으려면 기독교를 버리라는 것이다. 이 때에 상당한 기독교인들이 왕께는 죄송했지만 관직보다는 예수님을 택했다. 물러서는 그들의 표정은 더없이 밝고 편안했지만 왕은 대단히 괴로웠다. 이제 남아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더니 그 중에도 역시 기독교인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예수를 등지고 관직을 택했던 것이다. 왕은 깊이 생각한 끝에 남아 있는 변절자들을 다 내어 보내고 오히려 스스로 물러선 기독교인들을 다시 불러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결국 그의 아들 대에 이르러서는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하는 역사적인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기왓장만큼이나 마귀가 많더라도
마르틴 루터가 종교재판을 받기 위해 재판소를 향해 갈 때의 일이다. 이 재판은 생사를 가늠하는 무서운 재판이라 루터의 친구들이 간곡하게 만류했다. 그 때 루터는 말했다. "재판정 기왓장만큼이나 마귀가 많더라도 나는 재판정에 서리라". 그리고 재판정에 서서는 "오, 하나님이여 ! 나 여기 서 있습니다"라는 외마디 기도를 했다고 전해진다. 하나님만 의지하기에 나의 최선을 다한 다음에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깨끗이 맡겨야 한다. 그래야만 놀라운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예수는 좋으나 교회는 싫습니다
저 유명한 인도의 정신적, 민족적 지도자였던 간디는 독실한 예수 숭배자이면서도 정작 기독교인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 숭배하면서 왜 전형적인 교인이 되지 않고,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까?" 그는 그때마다 입버릇처럼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예수는 좋으나 교회는 싫습니다."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입니다. 그가 교회에 안 나가는 이유 가운데 이런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의 친구 중에 안두루스라고 하는 영국 선교사가 있었는데 간디는 그와 인간적으로 매우 친했고, 그에게 전도를 받고, 설교도 듣고, 성경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간디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예배당 문지기가 유색인종이라고 해서 그를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그 후로 그는 교회에 다시 나가지 않았답니다.
▶중생 없는 용서를 전하는 철학적 기독교
어느 신문기자가 유명한 구세군 창립자인 윌리암 부드 대장에게 물었습니다. "다가오는 미래에 닥쳐올 가장 큰 위험은 무엇이겠습니까?" 마침 윌리엄 부드는 나이가 많아 임종을 가까이 두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대답했습니다. "이제 세계가 직면하게 될 가장 큰 위험은 중생 없는 용서를 전하는 철학적 기독교입니다. 추상적인 지식만을 전하는 말만 하는 철학적 기독교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 없는 교회입니다. 교회라고 하지만 그 교회에 가서 그리스도를 만날 수 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없는 정치, 지옥 없는 천국을 말하는 잘못된 교리, 이런 것들이 앞으로 문제될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러한 문제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교회의 오해
일반적으로 교회에 대해서 몇 가지로 큰 오해가 있다. 에밀 브루너의 <교회의 오해>라는 책에서도 여러 번 지적하고 있듯이,
첫째, 교회를 학교(institute)로 오해하기 쉽다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그룹별로 여러 가지 성경 공부를 가르치고 배우지만 그것 자체를 교회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성경 공부와 교회는 별개이다. 진리를 가르치고 배운다고 해서 교회를 학교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헬라식의 판단이다.
둘째, 친교(koinonia, fellowship)하는 곳을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도들이 모여서 차를 마시며 친교하는 것이 교회라는 것은 망상이다. 물론 성도의 교제가 있지만, 이것이 결코 교회의 본질은 아닌 것이다.
셋째, 교회를 자선사업 단체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교회를 향하여 "도대체 교회가 무엇하고 있느냐 ?"고, 교회가 돈을 내놓지 않는다고 야단을 한다. 자신들은 한푼도 내지 않으면서 교회가 돈을 쓰지 않고 무엇 하느냐고 원망인 것이다.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교회는 구제할 뿐이지 구제를 위한 기관은 아니다.
넷째, 불의에 항거하는 어떤 저항단체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가게
어떤 사람이 도시에 나와 공부하는 가운데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고 보니까 '이 귀한 복음을 어떻게 나만 듣고 있겠는가, 내 고향에는 아직 교회도 없고 믿는 사람도 없으니 내가 선교사로 고향에 가서 예수를 전해야 되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스승을 찾아가 뜻을 털어놓았습니다. "제가 우리 고향에 선교사로 가렵니다." 그러자 스승은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그거 어려울걸 세. 고향에 가서 예수를 전해보아야 누가 자네 말에 귀나 기울여주겠는가. 예수님도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하셨는데 ---"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조롱하지만 않는다면 만족하겠습니다." "글쎄, 조롱도 할 것이고 욕을 할지도 모르는데?" "욕을 먹어도 괜찮습니다. 돌을 던지지만 않으면 그런 대로 위로가 되겠습니다." "만약에 돌을 던지면 어떻게 하겠는가?" "돌을 던진다면 칼로 찌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겠습니다." "칼로 찌른다면?" "칼로 찌르더라도 목숨만 붙어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죽게 된다면?" "예, 그렇다면 저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내 사랑하는 고향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죽는다는 것으로 인하여 영광스럽게 그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제야 스승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다면 가게".
▶어찌하여 너는 한국으로 가지 않느냐 ?
한국교회사를 보면 여러분이 잘 아시는 언더우드 박사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나옵니다. 언더우드 박사는 1884년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하나님 앞에 헌신하기로 굳게 결심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인도 행을 결심합니다. 당시 많은 질병과 고통으로 시달리고 있던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1년 동안 의학과 그 나라의 언어를 배웠습니다. 이렇듯 열심히 준비하고 있을 무렵, 어느날엔가 그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어찌하여 너는 한국으로 가지 않느냐 ?" 그는 환상을 겪은 뒤에, 정신을 수습하고 한국이 어디 있나를 지도상에서 확인해봅니다. 이것이 언더우드 박사가 한국에 오게 된 동기입니다. 그는 1885년 4월 5일 아침, 인천항에 첫발을 내림으로 한국교회의 토대를 이루었습니다.
▶졸지에 개새끼가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새끼 호랑이가 엄마와 풀밭에서 재롱을 떨며 장난을 하고 있었습니다. 새끼 호랑이가 그 어미 호랑이에게 물었습니다. "나 호랑이 맞아? 달리기도 못하고 토끼 한 마리도 못 잡고 사냥도 못하는 내가 호랑이 맞아?" 어미는 대답합니다. "그럼. 내가 낳은 새끼니까 너는 틀림없는 호랑이다." 또 물어봅니다. "강아지만도 못한데 나 호랑이 맞아? 난 아무 것도 못하는데 내가 호랑이 맞아?" 자꾸 물어보니까 화가 난 어미 호랑이가 "야, 이 개새끼야!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졸지에 개새끼가 되어 버렸습니다.
▶내가 예수 믿은 덕에
나는 김익두 목사님 살아 생전에 몇 번 뵌 것을 나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분은 유명한 깡패였습니다. 예수를 믿고 신촌 서북교회에서 목회할 때 제가 그 교회에 나가서 목사님으로부터 친히 들은 이야기입니다.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어서 제가 잊어버리지 않을 만큼 자주 말씀드립니다.
어느 날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해서 교통수단이 좋지 않을 때에 여름에 보따리를 걸머지고 산을 넘어가는데, 너무 덥고 괴롭지마는 빨리 올라가서 산정에서 바람을 좀 쇠면서 쉬고 갈 것이다 생각하고, 참고 올라가서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 때라 위통을 다 벗어 젖히고 저기서 불어오는 바람을 이렇게 쇠고 있었어요. 그런데 맞은 편에서 술 취한 친구 하나가 비틀비틀 올라오더니 딱 쳐다보더니, "너 왜 나보다 먼저 올라왔냐?" 그러고는 막 때리는 거예요. 그냥 맞습니다. 목사님 표현대로 할까요? '이사 나간 집 굴뚝 부수듯이' 그냥 부수는 거예요. 그냥 때려부수는 겁니다. 한참을 때리더니 대항을 하지 않으니까 숨을 몰아쉬면서 씩씩거리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 말씀이 "형님 다 때렸소? "그러고 악수를 했는데, 그 김익두 목사님 손이 아주 억셉니다. 딱 붙들고 악수합니다.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자네가 받았네." 하셨습니다. 유명한 말입니다.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자네가 받았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니까 "내가 김익두야!" 사내가 깜짝 놀랐대요. 아이쿠, 죽었구나. 벌벌 떱니다.
"그래 내가 뭐라고 하던가, 예수 믿기 전에 이런 일 당했으면 자네는 여기서 장례식까지 끝나는 거다. 그런데 내가 예수 믿은 덕에 네가 살았지 않았느냐." "아이구, 그러면 나는 어떡하면 좋을까요?" "뭘 어떡해? 따라와." 데리고 가서 부흥회 참석하게 하고 예수를 믿게 하고, 그가 뒤에 장로가 됐다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씀하시던 것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한순간 적에게 이롭게 한 것은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봉무제라고 하는 노나라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부라는 고을의 원님으로 있었는데 어느날 불현듯 이웃 제나라에서 군사들을 이끌고 쳐들어왔습니다. 봉무제는 모든 고을 백성들을 서둘러 성안으로 모이게 하여 성문을 닫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마침 보리를 추수할 때인지라, 성 밖 들판에는 보리가 노랗게 익어 있었습니다. 만일에 성안으로 피해 들어간다면 제나라 사람들이 이것을 다 약탈해갈 것입니다. 사람들은 봉무제에게 말했습니다. "무조건 성안으로 피할 것이 아니라, 고을 백성들로 하여금 내 것 남의 것 가릴 것 없이 보리를 추수해서 각각 가지라고 해버립시다. 그러면 너도 나도 달려들어서 재빨리 추수할 것입니다. 1년 동안 수고한 것이 아깝지 않습니까? 적에게 내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봉무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결국은 그냥 성안으로 들어가 굳게 성문을 닫았고, 제나라 군사들이 그 많은 곡식을 거두어 가버렸습니다. 이 사실이 온 나라에 알려져서 봉무제는 급기야 재판정에 서게 됩니다. 임금님은 봉무제에게 묻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적에게 이로운 일을 하였느냐? 차라리 그 곡식을 불질러버리든지 할 것이지!" 그는 정중하게 말합니다. "제가 한순간 적에게 이롭게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마음대로 거두어 먹으라고 한다면,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아마도 피땀 흘려 살 생각은 안하고, 남의 것은 공짜로 아무 때에나 얻을 수 있다는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다 이렇게 불로소득을 한 것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못된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10년이 걸려도 고칠 수가 없습니다." 임금님은 봉무제의 그 깊은 뜻을 헤아리고는 그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고 합니다.
▶자전거 도둑은 빼놓고요
토리라고 하는 네 살 된 예쁜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아버지, 어머니, 오빠를 비롯한 모든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고, 또 모두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를 오빠에게 조그마한 새 자전거를 사주었습니다. 오빠는 자전거 뒤에 토리를 태워주었습니다. 토리는 자전거 타는 것이 재미있었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뒤뜰에 놓아둔 자전거를 그만 도둑맞았습니다. 온 집안이 이 일로 인해서 다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특별히 토리는 마음이 상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토리는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에게 아버지, 어머니, 오빠 주신 것을 감사하고요, 모든 것을 다 감사 드려요.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축복해주세요." 그리고는 덧붙여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전거 도둑은 빼놓고요."
▶보시오. 행복하지 않소?
어떤 신랑 신부가 결혼식을 올리는데 그날따라 갑자기 비가 옵니다. 그래서 신혼여행길에 온통 비를 맞게 되었습니다. 신부는 짜증을 냈습니다. "하필이면 우리 결혼식 하는 날에 재수 없이 비가 와 가지고....." 신랑이 신부를 달랩니다. "무슨 소리요? 우리가 이런 날로 정한 게 잘못이지. 또 비가 온다고 해서 일생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행복한 이 시간에 우리의 마음이 흔들려서야 되겠소?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그것이면 됐지 이까짓 비 때문에 우리의 사랑이 손해를 봐서야 되겠소?" 아무튼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목적지에 도착한 후, 방안에 들어와서 불을 켜놓고 보니 그것 참 분위기 있더랍니다. 비가 오니 밖에도 나갈 수 없고 둘만이 방안에 있으니 절로 무드가 생깁니다. 신랑이 말합니다. "보시오. 행복하지 않소?" 여러분, 날씨 탓할 것 없고, 세상이 어떻고, 라고 말할 것 없습니다. 어떤 경우를 만나도 우리의 마음은 항상 고요해야 합니다.
▶선과 악이 공존한다
탈무드에 전해지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노아 홍수 때의 일입니다. 많은 비가 오고 이제 홍수로 인하여 모든 것이 물에 잠기게 될 때, 노아는 모든 짐승들을 암 수 한 쌍씩 방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선(善)이 혼자서 덜렁덜렁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노아가 "전부 한 쌍씩 들어오라고 했는데 너는 왜 혼자 들어오는 것이냐?"하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선은 자기와 짝이 될 것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악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제서야 노아는 그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사람들이 '세상에 왜 악이 있을까? 왜 선과 악이 함께 있을까?'를 머리 아프게 생각한 나머지 이런 이야기까지 생긴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유는 묻지 마십시다. 분명한 것은 선과 악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30년 동안을 고생했다
한 젊은 농부가 어떤 농부와 나란히 이웃하여 오랫동안 살았는데, 어느 날 이웃 농부로부터 참기 어려운 모독을 당하였습니다. 아주 분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화가 난 농부는 복수할 양으로 존슨쵸라고 하는 잡초 씨를 이웃 농부의 밭에 뿌렸습니다. 당연히 그 밭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얼마 후에 그 농부의 딸과 그 밭을 이 사람에게 결혼 선물로 주었습니다. 농부는 그 밭의 잡초를 없애느라고 무려 30년 동안을 고생했다고 합니다.
▶선을 한가지도 못하고 임종을 맞는 것
페르시아의 왕이 어느 날 세계적인 현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인류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죄악이 무엇이겠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에 그리이스의 현자는 "늙어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인도의 현자는 "사람이 도저히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당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페르시아의 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암흑의 세상에 광명을 줄 만한 선을 한가지도 못하고 임종을 맞는 것입니다."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을 회복시켜 주시오
어떤 사람이 갑자기 시력이 나빠져서 앞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고 시력은 다시 회복하게 되었으나 이상하게도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지난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의사는 당황해서 재수술을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억은 돌아왔으나 또다시 시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의사는 환자에게 물었습니다. "양자택일을 해야겠는데 어느 쪽을 택하겠습니까? 시력입니까, 과거에 대한 기억입니까?" 그 환자는 깊이 생각하고 대답하기를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기에 잊어버려도 괜찮소,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을 회복시켜 주시오" 라고 하더랍니다.
▶우러러 뵈는 연설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났을 때이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맥아더 장군이 동경 땅에 발을 디디었다. 들은 바로는 동경 시민들이 구름같이 모여서 이 적국의 장군을 뜨겁게 환영했다고 한다. 매스컴들은 그 모습을 가리켜 이례적인 광경이었다고 보도했다. 맥아더 장군은 그 환영 군중을 향하여 유명한 일장 연설을 했다. 그 연설의 마지막 대목이 인상적이어서 기억을 하고 있다. "온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경제 문제입니다. 경제 문제는 군대 문제입니다. 군대 문제는 정치 문제입니다. 정치 문제는 정치가의 양심 문제입니다. 양심 문제는 도덕 문제입니다. 도덕 문제는 종교 문제입니다. 종교 문제는 신학적 문제입니다." 하고 연설을 맺은 것이다. 오늘에 다시 음미해 보아도 위대한 연설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맥아더 장군의 면모가 절로 우러러 뵈는 연설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맥아더 장군이 지적한 문제는 바로 오늘의 우리에게도 절실한 문제이다.
▶어리석은 듯 슬기로운 사람
중국의 철학자인 노자가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연약한 것이 강한 것보다 낫다. 어리석은 듯 슬기로운 것이 얌체 같이 똑똑한 것보다 낫다." 그러자 제자 중에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연약한 것보다는 강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이에 노자는 대답합니다. "강하면 부러진다. 약하면 부러지지 않는다. 센바람이 불 때에 큰 나무는 뿌리째 뽑히지만 연약한 갈대는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이 말을 들은 제자는 되물었습니다. "듣고 보니 정말 그렇게 느껴집니다 마는,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보다 못하다는 말씀은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다시 노자가 대답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똑똑한 사람은 남들의 미움을 받기 쉽다. 어리석은 듯 슬기로운 사람은 남들이 모두 좋아한다."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워 있다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학교라고는 국민학교만 조금 다녀본 정도입니다. 그런 그가 대통령에 출마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었겠습니까? 적도 많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 중에 스탠톤이라는 사람은 얼마나 링컨을 괴롭혔는지 모릅니다. 그가 한 말은 유명합니다. "링컨은 교활한 어릿광대, 오리지날 고릴라이다. 고릴라를 구경하려면 아프리카로 가지 말고 일리노이주 스텐필드로 가라. 거기에 가면 에이브러햄 링컨이라는 고릴라를 만날 것이다." 그런데 링컨은 대통령에 당선되어 내각을 조직할 때, 그 스탠톤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링컨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그렇게도 당신을 비난하던 사람인데 어떻게 그러실 수 있습니까?" 링컨은 여유 있게 대답합니다. "그 자리는 그 사람이 맡아야 합니다. 사명감이 분명하거든요. 그런고로 다 극복할 수 있어요." 여러분, 링컨은 넉넉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훗날 에이브러햄 링컨이 암살 당했을 때에 가장 슬피 운 사람이 바로 이 사람입니다. "여기,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워 있다"고 통곡을 했습니다. 이 얼마나 강합니까? 이 여유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링컨은 철저한 사명의 사람이기에 평생 자기를 비난하던 원수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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