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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도 변화 되리라.(마24:40-51, 고전 15:50-58) / 호현낙선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4. 22. 05:31

우리도 변화되리라 마24:40-51, 고전 15:50-58

시카고에서 큰 화재가 났을 때 무디 목사가 시무하던 예배당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기자들이 무디에게 조롱하듯이 질문했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다고 설교하셨는데, 예배당이 타는 것을 하나님은 왜 가만히 보고만 계셨을까요?" 그러자 무디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큰 예배당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소.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를 들으시고 예배당을 허무는 비용을 줄여 주신 것이오."

기자들은 재차 물었습니다. "그러면 큰 예배당을 세울 비용은 준비하셨습니까?"그러자 무디는 불을 피해 나올 때 가지고 나온 성경을 보이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수표와 돈 대신에 이 성경책을 가지고 나왔소. 이 성경책은 바닥이 나지 않는 하나님의 금고요. 당신들은 머지않아 이곳에 큰 예배당이 세워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요." 그 후 무디는 영국에서 큰 부흥을 일으켰고, 영국 교회의 많은 헌금으로 이전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불행한 일이 없습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 가운데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일입니다. 그 모든 일이 아름다운 결과를 이루는 과정입니다. 성도들이 부활신앙을 가지게 되면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오늘 아침에는 두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도 변화 하리라”는 제목으로 부활 신앙을 소유한 자에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상고 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죽음에 대한 태도가 변화됩니다.

본문 고전 15:57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했는데, 여기에서 이김을 주신다는 말은 죽음에 대한 이김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 죽음을 승리자의 눈으로 보게 됩니다. 어떤 면에서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생명과 죽음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대도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살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 죽음을 놓고 깡패 같다고 했습니다. 깡패들은 으슥한 골목으로 끌고 가서 "너 죽고 싶어?" 하고 으름장을 놓고 협박을 합니다. 죽음도 이런 불량배와 같아서 우리를 으슥한 골목으로 끌고 가서 "너 반드시 죽어!" 하고 위협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참 주눅 들게 만드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어떤 면에서 참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죽음이 우리에게도 위협으로 다가 옵니다. 이 위협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아침마다 조깅도 하고, 등산도 하고, 생식도 먹고, 다이어트나 에어로빅도 하면서 애를 씁니다.

우리나라도 가는 곳곳마다 걷기 좋은 길을 만들어 놓고, 운동 시설을 마련해 놓아 이런 시설만 잘 이용해도 건강에 많은 도움을 얻어 장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조금 미룰 수는 있어도 그 죽음에서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결국은 모든 사람이 죽음을 맞게 됩니다.

누가 죽음의 협박과 두려움에서 우리를 건져낼 수 있을까요? 바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죽음 앞에서 떨지 않게 하시고, 죽음을 정복하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사 25:8) 고전 15:22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 26절에는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마지막으로 처리하신 원수는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죽음 앞에서의 항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이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주안에서 죽어도 다시 사는 믿음을 가진 승리자의 눈으로 죽음을 대합니다. 죽음을 뛰어 넘어 그 후에 있을 놀라운 하늘의 영생의 축복까지 우리에게 안겨주신 분이 부활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도날드 그레이 반하우스라는 유명한 미국 목사님은 100여 년 전에 계셨던 분으로 탁월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아직 젊은 나이일 때 사모님이 아이들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목사님은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하고는 자녀들을 차에 태워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차 안에서 엄마를 잃은 자녀들에게 뭔가 위로의 말을 좀 하고 싶은데,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큰 트럭이 마주보고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조금 지나자마자 '웽' 하고 소리를 내면서 옆으로 지나가는데, 그 트럭이 던지는 큰 그림자가 목사님이 탄 승용차를 덮고 스쳐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뭔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얘들아, 너희들 어떠니? 저 트럭에 치여서 죽고 싶니? 아니면 저 트럭의 그림자에 싹 덮이고 지나가고 싶니? 어느 쪽을 원하니?" 그러자 아이들이 씩 웃으면서 "아빠, 그것을 말이라고 해요. 치이면 다 죽쟎아요? 그림자가 지나가는 것이 낫죠."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 옳은 말이야. 2천여 년 전 예수님도 죽음이라는 트럭에 치여 죽으셨단다. 예수님은 죽음에 치여서 희생당하셨어. 그 덕분에 예수 믿는 우리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니? 우리는 세상에서 죽지만 죽음에 치여 죽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그림자가 쓱 지나가는, 그 그림자 밑을 통과하는 것뿐이란다. 너희 엄마는 그렇게 잠깐 세상을 떠나신 거야." 사망 권세를 이기신 주님 안에서 더 이상 죽음의 두려움에 매어 살지 않고 죽음 앞에서도 소망 가운데 평안함을 가지고 당당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삶의 자세가 변화 됩니다.

우리의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알고 믿는 사람은 다음 세상으로 들어갈 준비를 갖추는 사람이 됩니다. 그 준비를 잘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죽음을 넘어 다음 세상으로 가는 것을 알면서도 준비 없이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본문 고전 15:58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사는 자들은 아무렇게나 살지 않고 삶의 자세가 변화 되어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는데, 그 모습은 먼저, 늘 깨어 있는 자로 삽니다. 본문 마24:42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하셨습니다. 깨어 있는 자는 기도에 힘쓰고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잘 하는 자가 됩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재림 시기가 예측불허인 것을 계속해서 강조하셨는데 이는 사람들이 깨어 준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님께서는 세 가지 예를 들어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째,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37-39절). 둘째, 집주인과 도적의 비유를 통해 말씀 하셨습니다(43절). 깨어 있으면 도적을 막을 수 있습니다. 셋째, 두 종의 비유입니다(45-51절). 주인이 두 종에게 자기 소유를 맡기고 먼 길을 갔을 때 충성된 종은 주인이 있고 없음에 상관없이 충실히 자기 임무를 수행하여 주인이 왔을 때 칭찬받고 주인의 모든 소유를 맡는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늘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 살기를 힘씁니다. 우리 주님께 영광이 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지 못했으면 아무리 여론이 좋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들어도 성공적인 삶이 아닙니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박수를 받고, 격려를 받는 삶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사람들 보다 주님을 의식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엡5:10에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견고한 믿음으로 사는 자가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하면 시험이 오면 흔들리고 파선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바른 고백과 바른 진리위에 깊이 뿌리를 내린 신앙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고 할지라도 믿음이 다르면 운명이 달라집니다. 성도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믿음을 꼭 붙드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심판 때에 믿음은 절대적이고 최고의 재산이 됩니다. 오직 주님을 믿는 견고한 믿음만이 성도를 구원하고 천국의 운명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감사하고 고마울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떠한 값을 지불하더라도 믿음을 선택해야 합니다. 믿음을 늘 점검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1873년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했던 리빙스턴의 소식이 끊어진 후, 스텐리가 이끄는 탐험대는 중앙아프리카 어느 마을에서 리빙스턴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때의 리빙스턴은 이미 병들어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스탠리는 30년 동안 토인들과 함께 한 리빙스턴을 보고 영국으로 귀국하여 이제 편히 쉴 것을 설득하였지만 리빙스턴은 계속 아프리카에 머물렀고, 결국 그 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리빙스턴이 남긴 마지막 일기장은 1873년 3월 19일의 일기였고, 그 날은 리빙스턴의 생일이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일기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나의 예수여! 나의 왕이여! 나의 생명이여! 나의 모든 것이여! 오늘을 기하여 다시 나를 바칩니다. 자비하신 아버지 나를 받아 주소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나에게 주셨는데 이 못난 것, 아무 것도 아니지만 모두 바치오니 받아 사용해 주옵소서. 아멘. "그의 시체는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자세 그대로 발견되었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이 사람에게는 다른 말이 필요 없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살고, 응답하다 죽었다."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리빙스턴의 일생은 오직 주의 일을 위하여 힘썼던 생애였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어떤 일에 힘을 쓰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남은 생애 늘 깨어 있는 자로, 주를 기쁘시게 하며 영광 돌리는 자로, 견고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3.홀연한 몸의 변화와 함께 들림을 받게 됩니다.

서신서 본문 고전 15:51-52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주님 안에서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영화로운 육체로 살아납니다. 또한 살아서 주님을 맞은 성도들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영화로운 육체로 변화되어 영원한 천국 생활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몸으로 변화 된 것처럼 우리 몸도 홀연히 변화 되어 마치 천사처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 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복음서 본문 마24:40-41에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들림 받음(휴거)에 관한 말씀입니다. 두 사람은 같이 믿음 생활 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은 신랑을 맞은 지혜로운 처녀 같은 믿음, 다른 한 사람은 미련한 다섯 처녀 같은 믿음 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든 성도가 들림 받기 위해서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 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창세기 5장에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들림을 받았고, 열왕기하 2장에 보면 엘리야가 들림 받았습니다. 살전 4:13-17절에 보면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 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함이라---- 이와 같이 자는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다시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끌어 올려” 라는 말은 휴거 즉 들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이 놀라운 사건은 갑자기 사람이 증발되는 것이 아닙니다. 휴거 되는 것입니다. 이 재림과 변화와 휴거의 사건은 본문 고린도전서 15:51절에 말씀대로 비밀의 사건이요, 홀연히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서 환상 가운데 거룩한 무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계 14:1-5에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했습니다. 이 영광스런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은 세상에서 불완전한 것들이 온전한 모습으로 새로워집니다. 15세 된 여자아이가 뜻밖의 병을 얻어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그 아이의 친구가 위문하러 와서 병자를 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가엾다. 네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그러자 병상의 소녀는 친구를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단다. 나의 참 삶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단다. 나는 가까운 날 영광의 주를 볼 것이고, 너와 같은 모습으로 변하여 영광에 영광을 더할 거야." 하늘나라 소망을 가진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 다시 오실 때 홀연한 변화와 함께 들림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우리도 변화 하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성도의 변화는,

◐.죽음에 대한 태도가 변화됩니다.

◐.삶의 자세가 변화 됩니다. *늘 깨어 있는 자로, *늘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 사는 자로, *견고한 믿음으로 사는 자로 삽니다.

◐.홀연한 몸의 변화와 함께 들림을 받게 됩니다. 아멘.

<2017. 4. 23. http://cafe.daum.net/sungsansarang>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호현낙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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