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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갑시다! (빌립보서 3장 10-14절) / 김민호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4. 22. 05:34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갑시다! (빌립보서 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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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우화인 토끼와 거북이이야기는, 자만함에 빠지면 누구도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없다는 것과, 능력이 아무리 부족한 자라도 꾸준하게 최선을 다한다면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위대한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신앙이란 종착역에 내려야 끝이 납니다. 거기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나는 것으로 마무리 되어야 합니다. 토끼와 같이 자만하고, 낮잠을 자다가는 도둑같이 오신다고 약속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거북이 같이 느려 터져도 다시 만날 주님만을 생각하며 묵묵히 인내하고 순종하다 보면, 반드시 영광의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천국행 구원열차에 몸을 싣고, 같은 칸에 합석한 형제자매들입니다. 몸으로는 한 지체요, 가정으로는 한 식구입니다. 저는 여러분들 중에, 한 사람도 중간에 잘못 내리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중대한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속속들이 살펴 주시면서,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사역을 절대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저도 감시자로서 여러분들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우리 모두는 주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마지막 종착역에 내리도록 함께 하겠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 아닙니다. 부활절이 그냥 한 해의 통과의례식의 행사로 마쳐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부활절을 한 해, 한 해 지날 때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 안에서 더욱더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가고, 우리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정말 오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세워져 가기를 소망합니다. 이 땅에서는 평안 가운데 살다가, 천국에서는 영광의 주님과 영생복락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MBC강변가요제에서 뽀글 파마머리에, 키가 작고, 동그란 안경을 쓴 앳된 가수 한 분이 등장했습니다. 이른 바 혜성 같이 등장한 신인이었는데, 그녀가 부른 곳이 ‘J에게입니다. 가수가 누구인지 다 아시겠죠. 이제는 중견가수가 된 이선희 씨입니다. ‘J’가 누군지는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그 시절에는 라디오만 틀면 이 ‘J에게나올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곡입니다. 개인적으로 이선희 씨의 맑은 음색이 참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가요를 듣는 것은 거의 우연하게 아니고서는 잘 듣지 않는데, 설교를 준비하면서 우연히 유투브(youtube)에서 오랜 만에 이선희 씨의 노래를 듣게 되었습니다. 노래도 좋았지만, 노래 시작하기 전에 멘트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에 여러분들을 만난 것이, 그 자체가 기적 같은 일입니다. 저에게는이 말을 하고 난 후에, “그 중에 그대를 만나(Meet Him Among Them)”라는 곡을 불렀습니다. 순간 저에게는 십자가의 주님이 떠오르면서 스치듯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이 땅의 수십억명의 사람들 중에 주님이 나를 찾아오신 것이 정말 기적이구나, 광활한 우주 속에서 먼지 보다 작은 이 버려진 인생을 구원으로 인도하시려고 창조자가 왔다 가셨다는 것이 기적중의 기적이구나, 생각의 크기가 가늠되지 않는 영원한 분의 계획 속에 나라는 추악한 존재를 깨끗함으로 거듭나게 하시려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사건이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과 그리고 00교회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계획 가운데 계심을 믿으시고, 기적의 하나님께 무한한 영광을 올려 드리십시오. 입술로 고백하는 그것이나마, 우리를 찾아오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에 의해서 구원 받지만, 사도 바울의 경우는 매우 특별합니다. 주님을 부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선봉대에 섰던 바울이었지만, 주님은 그를 멸하시지 않고, 찾아오시는 기적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누구보다도 극적으로 주님을 만난 바울은, 그 기적의 은혜에 합당하게 살았습니다. 이제 바울은, 모든 일을 다 마치고 죽음을 앞에 두고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옥을 지키는 간수 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동안 세웠던 교회들에게 여러 가지 권면과 부탁을 담은 편지들을 쓰는 일 정도만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지극히 제한 적인 상황에서도 수많은 성도들에게, 부활을 경험한 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부활절 이후 이 시점에서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10, 11절 말씀을 보면, 바울은 일평생 동안, 오직 부활 하신 주님을 만나려는 일념 하나만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0, 11절을 표준 새번역으로 읽어 드립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바울이 얼마나 부활에 이르고 싶은지, 간절함이 잘 묻어나는 문장입니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부활에 이르고 싶다는 소망이 누구보다도 간절하지만,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이 부활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삶의 자세가 있었는데, 그것은,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바울은 십자가에서 주님이 죽으신 것과 같이, 자신의 몸을 죽이는 일에 집중했다는 겁니다. 외면적으로는 죽음을 무릎 쓰고 교회들을 세워가는 사명을 감당하는 고난에 동참했습니다. 내면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죄와 교만을 죽이는 자아부정, 자기 부인의 고난에 동참했습니다. 바울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부활의 소망으로 인도함 받는 길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은 것입니다.

 

부활절 이후 우리의 삶의 자세가 이러해야 합니다. 주님이 살아나셨기 때문에 나도 자동적으로 부활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순하고 무지한 생각입니다. 주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살아났다는 실제적인 사실을 먼저 생각해 보십시오. 죽어야 부활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안 죽는데 어찌 부활이 있겠습니까? 죽어야 부활한다는 것을 너무나 선명하게 알고 있었던 바울이기에, 그의 일평생 삶은 죽기 위해 살아가는 무모함이 가득한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가도를 드린 후 십자가에 달리신 것처럼, 바울도, 자신 뜻대로가 아닌, 주님의 뜻대로 죽는 길을 선택 하였습니다.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절규에 가까운 고백들을 쏟아 냈습니다. 그만큼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처절하고 외로운 길입니다.

 

부활 소망이 없다면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것이 십자가 죽음의 길입니다. 여러분 삶이 많이 힘들고 지치시더라도, 내 자신의 죄와 교만을 죽이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내가 여전히 깨트리지 못하는 나의 단단한 자아들(자랑, 욕심, 분노, 다툼, 비판, 무시, 독선, 음흉, 거짓, 오만,.....)과 전쟁을 선포하십시오. 게으름과 나태함에서 깨셔서 경건의 자리로 나아오십시오. 적당히 해서는, 차일 피일 미루다가는,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지 못하는 낭패를 겪게 됩니다. 이제 곧 5월이면 가정에 많은 행사가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도 있습니다. 금방 무더운 여름이 오면, 몸도 마음도 지치기 쉽습니다. 우리의 신앙 온도가 점점 떨어지기 쉬운 때입니다. 잘 죽기 위해 고난의 삶을 살았던 바울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나도 그렇게 살다가 죽으리라는 결심으로, 부활의 소망가운데 계속 승리의 길로 전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일평생 부활의 소망을 품고, 자신을 죽이며 살아갔던 바울이 11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수십 년간, 수 만 km를 돌아다니며 전도를 하고,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수많은 제자들을 세우고, 수많은 성도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생활했던 위대한 사도 바울 조차도 이렇게 겸손합니다. 감옥 에서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아직 얻지도, 이루지도 못했고, 계속 달려간다는 말이, 제 스스로를 얼마나 부끄럽게 만드는 말인지 모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시고 운명 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정말 사명대로 살다가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모든 것이 끝납니다. 중간 과정에서, “나는 이만큼 했다, 이거 내가 다 한 거야라고 자랑하고 떠드는 것은, 그나마 쌓아온 공적들을 스스로 무너트리는 일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을지라도 자신이 순교당하는 그 순간까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이 보이고, 손과 발이 움직이고, 입으로 말을 할 수가 있다면, 죽는 그 날까지 예수 복음을 전하다 죽겠다는 바울의 의지가 소름끼치도록 전율(戰慄: 몸이 떨릴 정도로 감격스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느낍니다. 편안하게 삼시 세끼 잘 먹고, 잘 자면서도 불평, 불만, 욕심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제 모습을 보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제가 일평생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기는 고사하고, 바울의 그림자라도 따라가기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자괴감이 밀려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행복하고 평안한 일이지만, 내 자신을 비우고, 내 자아를 포기하고, 주님만을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며 살아가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라는 말이 있습니다. ‘발상의 전환이라는 말입니다. 종교 역사에서도 큰 전환점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말씀에서 벗어난 인본주의적 신앙체계를, 다시 성경 중심으로 돌려놓은 큰 사건이었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단 기간에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한 때는 성령운동, 은사 운동이 한국교회 성장을 주도 했지만, 이제는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전환점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많음 목회자들이, 교회의 성장보다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특히, 야고보서 123절의 말씀처럼,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는 권면을 실천하려는 노력들이 여러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도, 부활도 믿는다면, 믿는 자답게 죽고, 믿는 자답게 다시 살아나자라는 외침이 한국교회와 모든 성도들 가슴에 울려 퍼져야 합니다. 제 생각에도, 교회들이나, 성도들이, “나는 다 이루었다라는 안일한 신앙의식을 깨우쳐서, 죽는 그 날까지 조금이라도 더 이루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도 바울의 끝없는 순종과 도전정신을 배워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 따라 행동하는 것이 삶의 습관이 되는 신앙의 전환점을 이룰 수만 있다면, 교회도 건강해지고, 개인의 삶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까지 자라나는데 이르게 될 것입니다.

 

13, 14절이 오늘 말씀의 핵심이면서, 우리의 정체된 신앙에 기름을 붓고, 불을 당겨줍니다. 13, 14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죽음을 눈앞에 두고, 감옥 안에 갇힌 힘없는 노인의 외침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열정과 도전의식이 배여 있는 힘찬 기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이루어온 일들에 대해서 자랑하거나, 후회하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바울의 당시 모습을 상상해 보면, 시선은 예수님께 고정되어 있고, 목표는 오직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마라토너 같습니다. 끝없는 동력을 전달해주는 새 엔진을 장착한 기관차와도 같습니다.

 

이 말씀을 대하는 느낌이 어떠십니까? 저는, 이 말씀을 듣고 저의 앞으로의 신앙생활이 과거에 발목 잡히거나, 허황된 미래의 공상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되겠다는 깨우침이 일어났습니다, 오직 현재 시점의 나는 절대적인 순종과 겸손하고 정직한 행동을 하는 데만 집중하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앞의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지 못하는 것은 성과주의에 발목이 잡혀있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조그마한 칭찬에 만족한 나머지, 안일함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주변에서 나를 평가하여, “참 믿음이 좋으시네요, 예수님 닮으신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으면 쑥스럽기는 하여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자꾸 듣다 보면 정말 내가 믿음이 좋구나, 이런 정도는 받아도 되겠구나 착각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칭찬을 하지도 마시고, 듣지도 마십시오. 믿음이라는 것을 정량화 시켜서 많다, 적다, 크다 작다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믿음을 물건의 무게 다루듯, g(gram)이 된다는 식의 추측은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주님 이외에는 아무도 믿음을 판단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또 예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앞으로 달려가지 못하는 것은, 세상 성공의 기준을 대물림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이 교육열이 높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열의를 넘어서 광기에 가깝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좋은 대학 보내는 것이 부모님들이 생각하는 제일의 목표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태어나면 천재가 되라고 아인슈타인 우유를 먹이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서울대 가라고 서울우유를, 중학교에 가면 연세우유를,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2호선이라도 타라고 건국우유를, 3이 되면 매일매일 건강하라고 매일우유를 먹인다고 합니다. 농담인 듯 진담일 것 같은 이야기입니다. 허황된 꿈을 꾸고 거기에 인생의 시간을 투자하면, 점점 현실 인식을 인식 해가면서 비참해지고 초라해지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가지려고, 더 높아지려고, 더 자랑하려는 생각으로, 무리한 목표를 잡으면 얻지도 못하거니와, 얻었다 한들 그런 것들은 다 헛것이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바울의 깨어 있는 의식을 본 받아야 합니다. 다 버리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앞으로 달려가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다 버리면 내 것이 아닌 것 같지만, 오히려 가벼운 몸으로 경주하기에 쉬운 상태가 되고, 마지막 지점에 도착 했을 때, 그 동안 버렸던 것의 백배 천배의 상급으로 보상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동행 해 왔습니다.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아직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초보 신앙에 머물러 있기도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앞의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겠다는 의지를 내 보십시오.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주신 지식과, 능력과, 부요함이 있다면, 움켜쥐려고 하지 마시고,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과감하게 다 버려 놓으십시오. 우리의 런닝 메이트인 예수님에게서 한 시라도 시선을 떼지 마시고, 부르심의 상을 향해서 내 인생을 올인(All-in)하겠다는, 사도 바울의 결단의 복을 받아 누려 보십시오.

 

여러분, 지금까지 얻어 온 것, 이루어 온 것에 대해서는 다 잊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나는 오직 예수님께 잡한 바 된 그것(사명, 소망)을 향해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사도 바울의 고백을, 내 고백으로 장착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으신다면, 여기서 끝낼 것이 아니라, 반드시 부활의 그 주님을 만나는 순간까지 달려가기를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 생의 그 날에 이를 때까지, “오직 예수, 오직 부활, 오직 천국의 소망을 굳게 붙잡으시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잘 지켜나가며,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를 맺어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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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조금 이룬 것을 가지고 나태함과 게으름에 빠져 자만과 교만함에 멈춰 서 있음을 깨우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얻지도 못하고, 작은 것 하나도 이루지도 못한 나약한 믿음의 소유자들이었음을 인정합니다. 이제는, 앞의 것을 잡으려고 주님만 바라보며 달려가면서, 하나님 앞을 향하여 완주하는 그날까지 믿음의 경주를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부르심의 상을 향해 달려 달려가도록 능력주시고, 소망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김민호 목사 원글보기
메모 :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