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의 선교적 읽기
송영목 / 고신대학교 교수
룻기는 유대인들이 오순절에
읽었는데, 이방 모압 여인 룻이 다윗의 조상이 되는 과정을 다루기에 선교적 해석을 자연스럽게 요청한다. 룻기는 교차대칭구조를 통하여 회복의 필요에 대한 희미한 그림자(룻 1-2)로 시작하여, 중심에 위치한
(헤세드의 날개[2:12]를 펴는 하나님을 닮아 자비의 옷자락을 펼칠[3:9; 출 19:4; 시
91:4] 보아스를 통한) 회복의 수단을 거쳐(룻 3), 마지막으로 회복의 실현(룻
4)으로 이어진다.
개신교 정경의 배열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룻기의 저자가 사무엘이라면, 내용은 암흑의 사사시대와
황금기에 접어든 초기 왕정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삿 17-21의
나그네 환대 실패, 강간, 동성애, 살인, 내전과 같은 부정적인 면과 달리, 이어지는 룻기에서는 분위기와 사건 전개가 도덕적이고 덕스럽다. 삿 21:25는 왕이 없어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고 마무리하지만, 룻 4:22는 왕 다윗을 언급하면서 마무리한다.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에
의하면 잠언 31장의 ‘현숙한 여인’ 다음에 룻기 1장이
이어진다. 이 정경적 순서로 보면 룻은 다름 아니라 ‘현숙한 여인’이며(3:11), 잠언에서 경고하는 유혹하는 음녀도 아니다. 창세기의 족장
내러티브에 나오는 전형 장면들(type scenes)에서 볼 수 있듯이, 룻기에도 기근-빈손/추수-풍족, 슬픔-마라/기쁨-나오미, 사별/결혼, 죽은 자/산 자, 가난/부, 이주/정착, 불임/출산, 사사 시대/왕정 시대 등의 대조와 전환을 통해서 응집력을 가진 내러티브가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룻기의 생동감 있는 전개는 총 88절
가운데 55개에 이르는 대화에서도 볼 수 있다.
룻기의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모압 그리고 열방의 주권적인 회복자이시다. 룻기에는 헤세드(1:8; 2:20; 3:10)가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회복이 많다: 기업
무를 자를 통한 엘리멜렉 가문의 회복(5:4), 기근의 종결로 인한 생태계의 회복, 다윗을 통한 국가의 회복(4:22), 다윗의 후손 예수님을 통한
인류의 회복(마 1:5). 하나님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으로
편입된 룻과 달리 그녀의 동서 오르바는 모압의 신들에게로 돌아갔다(1:15). 하나님은 애굽에서 나그네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방 나그네를 환대하라고 명하셨다(출
22:21; 23:9; 레 19:33-34; 신
10:18-19). 동시에 하나님은 롯의 후손인 모압과 동화되는 것을 경고하셨다(민 25; 신 23:3-4; 왕상
11:1-2; 스 10).
베들레헴에 돌아온 나오미는 가난한 자를 위해 추수의 일부를 남겨두라는 모세 율법의 혜택을 누렸다(레 19:9-10). 나오미는 형사취수혼 법(신 25:5)에 따라 룻이 재혼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알았다(룻 1:11-13). 나오미는 며느리 오르바가 모압 우상에게 돌아가도록 강요함으로써(룻 1:15)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율법을 어겼다(신 13:6-10). 모세의 율법을 무시한 나오미는 계속해서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나오미는 룻에게 애도하는 의복을 벗고, 목욕 후 제일 멋진 옷으로 갈아입고 향수를 발라 육체적 매력으로써, 타작마당에서
술 취한 보아스를 밤에 유혹하라고 명한다(3:3). 하지만 나오미는 룻이 과부의 의복을 입고 낮에 성문에
보내어 기업 무를 자를 찾아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룻은 보아스를 향해 “당신이 기업 무를 자이다”라고
말함으로써, 모세의 법을 의지한다(3:9). 교회는 인간적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을 의지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룻기의 신약-종말론적 성취를 감안하면, 유력한
참 고엘이시며 생명의 회복자이신(4:14-15)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 값으로 열방으로부터 죽었던
죄인을 사서 제사장 나라로 만드신다(계 1:5-6).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다(갈
3:28). 하나님의 주권적 선교 계획에 따라, 이방인이 언약 백성 이스라엘 안에 동화
및 정착되려면 나그네 환대라는 방법이 유효하다.
더 나아가 룻기를 통해서 다문화 사회의 한국에 와 있는 외국 이주민들 선교, 더 나아가
난민 선교에 대한 통찰력을 현숙한 여인들 곧 주님의 신부들은 배워야 한다.
참고. J. Raskas. “The Book of
Ruth: A Contrast to the End of the Book of Judges.”
Jewish Bible Quarterly 43(2005, 4), 223-224; 달라스신학교의
C.P. Baylis. “Naomi in the Book of Ruth in Light of the
Mosaic Covenant.” Bibliotheca Sacra 161(2004), 426-431;
볼리비아 복음대학교의 N.J. Thomas. “Weaving
the Words: The Book of Ruth as Missiologically Effective Communication.” Missiology 30(2002, 2), 156-165에서 요약함.
'김동호*유기성*신우인목사설교+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7. 6. 10. 토요일 (0) | 2017.06.11 |
---|---|
[스크랩]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7. 6. 8. 목요일 (0) | 2017.06.11 |
[스크랩] 욥기의 해피 앤딩과 예수님 (0) | 2017.06.08 |
[스크랩] 그분 앞에서 솔직하라 [《기도의 숨겨진 삶》(The Hidden Life of Prayer)] (0) | 2017.06.07 |
[스크랩] 누가 내일을 잡고 있는가? (0) | 2017.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