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저는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는 글쟁이가 되어갑니다.
지금에야 고백하지만 저는 사실 전문적인 글쟁이가 아닙니다. 제가 ‘글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도종환 시인님의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를 읽었을 때로 기억합니다.
결혼 2년 만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쓴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그때는 한참 감수성이 예민할 때였습니다. 그때 이 시를 읽으며 저는 글에서 향기가 난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 안에 숨겨져 있던 글에 대한 감각을 조금씩 찾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습작처럼 지금까지 써놓은 시가 200여 편은 넘을 것입니다. 아직 세상에 내놓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한 권의 시집으로 세상에 내놓을 것입니다.
도종환 시인의 시에서 향기가 났던 시기는 아내와의 사별하고, 전교조 활동을 하고, 좌천이 되고, 해직이 되고, 투옥이 되고, 급기야 긴 투병생활까지 하던 시절로 기억합니다. 그 아픔과 쓸쓸함과 고독함 속에서 마음을 울리는 글이 나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랬던 그가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대한민국의 문화정책을 총괄하는 장관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가 아내를 잃고 해직이 되고 투옥이 되었던 그 절박했던 마음으로 장관직을 수행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대한민국의 문화를 이끌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를 읽는 나라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고, 책을 읽는 나라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고, 도서관이 술집보다 많은 나라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고, 대한민국이 세계 속의 문화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초석을 다지는 장관으로 우리에게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자국의 명시를 100편 이상 외우게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모든 학생의 의무라고 합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국의 시를 100편 이상 암송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도 중요하고 수학공식을 하나라도 더 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창 예민한 시기에 문학적 감각을 키워 주는 것 또한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도 한 때 많은 젊은이들이 문학소녀와 문학청년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작은 도시의 예술회관 같은 곳에서 ‘시 낭송의 밤’이나 '문학의 밤'과 같은 행사가 숱하게 열렸던 시절이 있었고, 그곳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넘쳐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모습을 좀처럼 찾기 어렵습니다.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했고 아이들이 꾸는 꿈도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연세대 송복 명예교수가 <시와 시학>이란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시를 (제대로)가르치지 않는 것은 학생을 모두 '재주 부리는 곰새끼'로 만들려 함에서다. 학교에서 시를 낭송하지 않는 것은 학생을 모두 '요령 피우는 뻐꾸기'로 만들려 함에서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습니다. 인구 370만 명의 작은 나라 아일랜드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네 명(예이츠, 버나드 쇼, 세이머스 히니, 사뮈엘 베케트)이나 배출하고 세계적인 IT 강국이 된 것은 모두가 시의 힘이라고.
접시꽃 당신을 읽으며 난생 처음 시에서 향기를 느꼈던 한 청년이 지금은 글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듯이, 점점 시를 잃어가고 문학을 잃어가는 세상에서 시와 글이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리고 거리에서도 넘쳐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 시인이 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이 험악한 세상에서 시를 읽고 책을 읽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길거리 어디를 가나 책을 읽는 사람이 있는 도시는 분명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이고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라 할 것입니다.
도종환 장관이 그거 하나만이라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내일 아침에 KTX 첫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서울 일을 마치고 나면 오후에 바로 여수에 내려와야 합니다. 저녁에 중요한 약속이 잡혀있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서울과 여수를 오고 가는 열차 안에서 시집이나 한 권 읽어야 하겠습니다. 고운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대원(大原) 박 완 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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