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랜만에 반가운 비가 내렸습니다.
그 비를 맞으며 저는 산에 올랐습니다. 그럴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를 맞고 산에 올랐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어떤 일에는 누구에게나 이유가 있는 법인데 그 이유를 모르면 이상하게 보이는 법입니다.
저는 언제부터인가 누군가 이상하게 보이면 그를 나쁘게 생각하기보다는 ‘무슨 이유가 있겠지’하며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그가 처한 상황을 내가 알지 못하는데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내가 그 사람의 내면까지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가인 알버트 엘리스는 우리의 세상살이가 힘겹게 느껴지는 까닭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는 성공해야 하고’, ‘누구나 내게 잘 대해 주어야 하며’, ‘세상은 반드시 살기 쉬워야 한다.’는 생각을 우리가 갖고 살기 때문에 세상살이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리고 은연중에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우리가 갖고 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살아보면 내 삶 안에서 그 믿음이 이루어지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내 바람과는 달리 성공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더 많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어렵고 힘들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법이니 그 힘듦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내게 일어나는 일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이왕지사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해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내게 일어나는 일에 의해 10%, 그리고 일어난 그 일에 대한 나의 반응에 따라 90%가 좌우된다는 합니다.
아침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나는 두 가지 반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내 전화를 씹네?”하는 반응과 “지금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전화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구나.”하는 반응입니다.
그런데 어느 생각이 나를 지켜주는 생각일까요?
후자의 생각이 나를 지켜주는 생각일 것입니다. 상대방의 정확한 진의도 모르면서 내가 지레짐작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나만 슬퍼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마음에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이 교차할 때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을 제 삶의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원칙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그것을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안 좋은 일을 겪거나 누군가 안 좋은 행동을 보였을 때 ‘내가 잘 모르지만 그럴만한 까닭이 있겠지’하면서 그냥 좋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정확한 진의를 파악한 뒤에 그 때 안 좋게 생각해도 늦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내 마음의 방향만 조금 바꿨을 뿐인데 마음이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저는 습관적으로 누구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누구 미운 사람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하면 저는 정말로 한 사람도 없습니다. 조금 미워지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워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삽니다.
그 발버둥은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또 머리가 좋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 저에게 실수를 하거나 심한 말을 해도 그 일을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누군가 저에게 실수한 사람을 만나도 금방 생글생글 웃어줍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당황할 때가 많지만 저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대합니다.
이 일이 언뜻 보기에는 바보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지혜롭게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