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가정예배와 찬송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7. 1. 18:51

가정예배와 찬송|성경 말씀 묵상

은혜 | 조회 29 |추천 0 |2017.06.29. 18:11 http://cafe.daum.net/seungjaeoh/J75F/201 

6월의 말씀 산책

교회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20분쯤 전에 예배당에 들어가면 7,8명으로 된 찬양단이 마이크를 들고 복음성가를 소리 높이 부른다. 기쁘고 흥겨워야 하는 이 찬양이 나는 싫었다. 일주일 만에 만난 친구와 대화도 할 수 없고 또 예배를 준비하는 묵상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마뜩치 않고 또 자기들을 따라 부르도록 강요하는 찬양단의 태도가 싫었다. 나이든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앞자리 1/3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노인들은 높은 음정 때문에 소리가 나지 않을 뿐 아니라 빠른 곡이 어려워 따라 부를 수가 없다. 이 생소한 복음성가들을 메들리로 두·세곡, 특히 반복해서 부르는 것을 누가 좋아 하겠는가? 그것을 감안해서인지 10분 정도는 흔히 부흥회 때 잘 부르는 찬송을 손뼉을 치게 해서 부른다. 나는 앞자리들을 돌아보는데 많은 노인들이 손뼉을 치고 있어 그들은 흥겨워하고 좋아하는 것 같다. 몸을 흔들며 반 박자마다 손뼉을 빠르게 치며 부흥강사의 설교를 기다리는 것처럼 신나 한다. 옛날에는 많이 기도원이나 부흥회를 쫓아 다녔던 분들이다. 그러다가 설교가 시작하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강해설교는 부흥회와는 달라서 어렵기만 하고 알아듣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뭐 어려운 성경말씀을 쉽게 풀어 해석해 준다고 하지만 머리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다가 때가 되어 죽어 천당 가면 되는 것이지 무엇을 더 알아야 한다는 말이냐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목사는 몇 년이 되어도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다고 꾸중한다. 꾸벅꾸벅 졸지 말고 말씀을 사모하라고 한다. 마당만 밟고 왔다 갔다 하는 기독교인이 되지 말고 좀 생각하는 기독교인이 되라고 한다. 그러나 넘어져서 다치기를 항다반사처럼 하고 여생을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노인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다.

내가 찬양단의 복음성가를 싫어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성가와 예배가 연속성이 없고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목사의 설교제목과 말씀을 더 잘 듣게 하기 위해 회중들의 마음을 고양시키기 위한 도입 부분이 이 성가일 텐데 실제는 자기들이 좋아하는 복음성가를 연습해서 그날 설교와는 아무 상관없는 찬양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이어서 그것이 영적으로 예배와는 아무런 연관을 갖지 않고 따로 노는 것이기 때문이다. 찬양단은 회중이 흥겹게 예배의 분위기에 녹아들게 하는 기능을 해야 하는 것인데 예배당에 회중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그들의 소리만 공간을 꽉 메우고 있다. 그들은 소리를 죽이고 회중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회중으로 하여금 흥이 나서 노래하게 해야 한다. 회중이 주연이고 그들은 조연이라야 한다. 주연자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그들이 찬양에 감동하도록 가사를 해설해서 작사자의 믿음에 먼저 감동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따라 부르지 못하면 곡을 가르쳐 그들의 소리가 예배당을 흔들게 해야 한다. 자기들만 신나서 부르는 찬양이 왜 예배의 도입부에 있어야 하는가?

그런데 최근 나는 이 부정적인 생각을 다 버리고 소리 높이 그들의 찬양을 따라 부르기로 하였다. 이것은 엉뚱한 것에서 온 생각이었다. 소리 높이 찬양을 해야 내 성대가 살아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점점 목이 잠기어 쉰 목소리가 나며 또 소리가 작아져서 다른 사람이 내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처음 아내더러 자기 귀가 점점 안 들리게 되어 그렇지 어떻게 내 목소리가 작다는 말이냐고 짜증을 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내 목소리를 들으려고 손을 귀에 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몇 달간 기침이 심해져서 종합병원의 호흡기 내과를 몇 달 동안 다닌 일이 있다. 거기서 나더러 만성폐쇄성 기관지염이며 또 천식도 있다고 했었다. 무슨 천식? 그러나 의사가 그렇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약을 몇 달 복용했는데 낫지를 않았다. 밤만 되면 기침이 더 심했다. 병원에서는 나더러 폐기능검사를 해 보라고 했다.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 검사를 했더니 최근에 출시된 것이라고 플루테롤 흡입기를 추천해 주었다. 기관지 확장제와 천식 등을 치료하는 분말을 담은 캡슐을 흡입기에 넣어 흡입기 양쪽 돌출부를 눌러 캡슐에 구멍을 낸 뒤에 그 분말을 목 안으로 흡입하는 것이다. 기침은 좀 멎었는데 목소리가 잠겨서 나지 않고 허스키한 소리만 났다. 그래서 친구와 대화가 되지 않았다. 아직 사용기간이 많이 남았는데 나는 흡입기 사용을 중단할 뿐 아니라 병원도 그만 두었다. 다른 이비인후과의 개인 병원에 갔더니 나이가 들면 감기 등으로 기도 안 쪽이 붓고 기관지를 둘러싼 근육이 수축하여 기도가 좁아진다는 것이다. 자연 유연성을 잃은 성대가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점잖은 노인은 큰 소리로 성대를 쓰지 않아 더욱 목소리가 안 난다고 했다. 또 성대가 경직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기도 하다고 했다. 성악가는 그래도 오랫동안 유연한 성대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최근 몇 년간 큰 소리를 내본 적이 없다. 우리 내외는 별로 대화를 하지 않았다. 아내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나는 서재에서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쓰고 있어 식사 때 외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또 말 한다고 해서 싸우듯 큰 소리를 낼 이유가 없다. 학생들에게 수업을 안 한 것은 20년이 되어간다. 교회에서 일 주일에 한 번이라도 찬양단의 목소리를 따라 왜 큰 소리로 하나님 찬양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 하였다. 그래서 마음이 바뀐 지금은 소리가 갈리면 목캔디를 입에 넣고 녹여가면서 열심히 높은 소리로 찬양을 한다.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날마다 한 번씩 찬송을 부르기로 한다. 그것은 아침마다 다락방으로 드리는 가정예배 시간을 찬송으로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60년 가까이 찬송을 불렀는데 외우고 있는 찬송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한 찬송을 3일간 계속 부름으로 그 찬송의 가사를 적어도 일절은 외우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 찬송가책을 닫고 찬송을 하면 꼭 틀린다. 이것도 노인성 망각증인 것 같다. 요즘은 가끔 꿈에서도 찬송을 부르는데 꼭 가사가 기억이 안 되어 애를 먹는다. 그럼 깨어나서 찬송가를 뒤진다.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 하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이렇게 해서 찬송을 마음속에서 외우고 이 찬송이 마음속을 울려 퍼지면 아침 일찍 이슬이 사라지지 않은 장미정원을 거닐며 나와 친구 되신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이 솟아나서 마음이 들뜬다.

나는 지금은 예배 전에 복음성가를 소리 높이 부르는 찬양단을 미워하지 않는다. 자기들이 취해서 주인공 노릇을 하겠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대중 앞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다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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