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친구 사이’라는 이유로 뇌물죄를 너무 너그럽게 판단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김 전 부장검사에 대한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조영철 부장판사)는 김 전 부장검사가 김씨로부터 2016년 초 현금 15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무죄로 본 이유에 대해 “김 전 부장검사와 김씨가 중·고교 동기동창으로 오랫동안 친한 친구로 지내왔던 점과 교부된 금원의 액수 등에 비춰보면 차용증을 작성하지 않았다거나 변제기 등을 정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뇌물이었다고 단정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 전 부장검사가 내연녀를 지원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는데 자신의 가족이 내연녀 존재를 알면 안되기 때문에 유일하게 내연녀의 존재를 알고 있던 학교 동창 김씨에게 돈을 빌렸다고 봤다. 김씨가 김 전 부장검사로서는 가장 편하게 돈을 빌릴 수 있는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올해 2월 선고한 1심 재판부였던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재판장 남성민 부장판사) 판단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1심은 1500만원을 친구 관계에서 순수하게 빌려준 돈이라고 볼 수 없다고 봤다. 자신의 형사사건 등에 대한 편의의 대가로 준 돈이라는 것이다. 김씨가 1500만원을 자신의 회사 자금에서 뺐다가 횡령 혐의로 고소당하자 뒤늦게 김 전 부장검사에게 돈을 갚으라고 독촉한 문자메시지가 대표적인 근거다.
김씨는 “난 진짜 친구라 생각했는데. 긴 말 하기 싫다. … 네가 나를 도와줄 수 없다고 판단한다” “형준아 너 연락도 없고 입금된 것도 없다. … 변제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고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김 전 부장검사에게 보냈다. 1심 재판부는 “(이 메시지는) 1500만원이 친구 관계에서 순수하게 빌려준 대여금이 아니라 김 전 부장검사의 직무와 관련된 도움을 기대하고 전달한 뇌물이었음을 추단케 한다”고 봤다.
‘친구 관계’는 진경준 전 검사장 사건 때도 도마에 올랐다. 당시 1심 재판부였던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진동 부장판사)는 진 전 검사장과 김정주 넥슨 대표가 ‘지음’의 관계였고, 단지 진 전 검사장이 검사라는 신분을 가졌다는 이유로 광범위하게 직무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넥슨 주식을 취득한 대금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결국 이 부분은 항소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을 뒤집어 다시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판례는 뇌물죄를 판단할 때 사적인 친분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참작해야 한다면서도 교분상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명백하게 인정할 수 있을 때만 뇌물이 아니라고 한다.
법조계에선 학연·지연으로 접근해 뇌물을 주거나 ‘스폰서 관계’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은 현실을 외면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뇌물성이 부인되는 인적 관계는) 부부나 친·인척을 말하는 것이지 일반적인 친구 관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요즘 시대에 차용증도 안 쓰고 돈을 주겠느냐. 검사였으니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1회에 100만원 넘게 수수한 공무원은 무조건 처벌받는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대에 법원이 뇌물죄에 대해 지나치게 너그럽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해당 사건들의) 행위는 김영란법 시행 이전에 있었지만 법원이 돈의 성격을 해석할 때 김영란법의 취지를 반영해 과거 판례와는 차별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