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유기성*신우인목사설교+칼럼

[스크랩]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7. 10. 1. 주일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10. 8. 02:58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7. 10. 1. 주일


생사를 건 교회개혁 읽기(1)


서론적 제안


(오늘날 한국교회는 교인들을 우민화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교회 일에 관심도 없고 말도 할 줄 모르는 교인과 교회를 은혜스럽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 당회원을 비롯한 몇몇 소수의 사람들에게 많은 권력이 집중되면 교회는 부패할 수 밖에 없다.)

내가 동안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것은 91 12 2일이었다. 동안교회는 당시에도 교회가 속해있는 노회에서 가장 큰 교회였다. 따라서 교인들, 특히 당회원들 사이에는 나름대로 강한 자부심이 있어 젊은 목사가 목회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전통적인 장로교회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동안교회는 그와 같은 점은 미리 인식하고 참으로 혁신적이라고 할 만한 결정을 내려 주었다. 그것은 장로님들이 담임목사 청빙을 결정한 후 최소한 3년 동안은 이해가 되든 되지 않든 담임목사가 하는 일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하고 도장을 찍어준 것이었다.

그와 같은 협조로 나는 획기적이라고 할 만한 일들도 거침없이 해나갈 수 있었다. 몇 가지 일을 예로 들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예배당을 건축하기 위해 모아 놓았던 6억 원의 헌금을 일산에 개척교회를 건축하는데 먼저 쓰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파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일을 당회원들은 한 사람도 의의를 제기하지 않고 동의해 주었다.

그것은 당회원들이 모두 당회장과 공감해서만은 아니었다. 당회원들 중에는 나와 생각이 다른 분들도 아마 계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분들은 당회장이 기도하고 하는 일을 믿고 밀어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동의해 주었다. 당회원들이 그와 같은 마음과 자세로 당회장의 목회를 협력해주는 교회는, 당시는 물론이지만 지금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결과 비교적 평탄하게 목회에 전심할 수 있었고 교회는 짧은 시간 내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나름대로 전통적인 교회에 새로운 리더십이 성공적으로 이식되는 드문 예를 남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점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으며, 그와 같은 배려를 해준 동안교회 당회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동안교회의 부흥과 발전, 그리고 성장의 상당 부분이 당회원들의 그와 같은 이해와 협조에 힘입은 것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가 꼭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지난 7년 동안 거의 1년에 한번 꼴로 큰 충돌이 있었고, 그와 같은 충돌로 인한 갈등은 해가 갈수록 깊어져서 '97년에는 더 이상 목회를 계속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목회자인 나의 신앙인격의 미숙함이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굳어진 의식과 신성불가침으로까지 여겨지는 제도나 교회 구조 때문에 오는 충돌이 예상 밖으로 컸다.

동안교회는 교인들, 특히 당회원들이 이례적이라고 할 만한 의식을 가지고 당회장의 목회를 후원하고 지원하려는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식만으로 무의식에 눌러붙은 의식과 제도들을 단번에 다 바꿀 수는 없었다. 나는 평소 "우리 예배당을 건축하기 전에 먼저 개척 교회를 건축하자"고 주장해 왔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교회 안에 자리 잡은 잘못된 의식과 제도의 개혁'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당회원들이 여기까지도 이해해주고 협조해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
우리 예배당을 건축하기 전에 먼저 개헉교회를 건축하자는 안은 받아 주었지만 정작 자신의 역할과 자리를 개혁하자는 것까지는 쉽게 받아 주기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의식과 제도 개혁이 당회원들의 역할과 자리를 개혁하는데서 비롯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당회원들이 내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지를 못했다. 수용은 커녕 오해를 사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당회원들의 오해는 상당히 일리가 있는 것이었다. 자신들은 당회장의 목회에 적극 협력하고 있는데 당회장은 오히려 당회원들의 역학과 자리를 축소하려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회원들은 본능적으로 자신들의 자리와 역할을 방어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목회는 점점 어려워져 갔다.

(
목회는 전투같았고 교회는 특히 당회는 전장같았다. 몸이 감당할 수 없는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아야만했고 도저히 목회를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처하게 되었다.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자살을 선택했을지도 모를만큼 힘들었었다.)

(
생사를 건 교회개혁 15페이지 - 17페이지)


출처 : 삶과 신앙
글쓴이 : 스티그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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