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訴訟]=자유 평등 정의

박근혜는 어떤 말로 ‘국정 파탄’을 부정해왔나 / 한겨레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10. 18. 05:09

박근혜는 어떤 말로 ‘국정 파탄’을 부정해왔나

등록 :2017-10-17 11:39수정 :2017-10-17 11:56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이후 사법체계를 불신해 온 결정적 말말말
박근혜 전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박근혜 전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추가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판 시작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6개월 동안 이어진 재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선 실세 최순실 등과 함께 국정을 파탄으로 만들었다는 증거와 진술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자신에 대한 수사와 재판을 ‘정치보복’으로 규정하며 본격적인 정치 투쟁에 나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수사 기관 등에 대한 불신과 배신감을 드러내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지지자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때로는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기도 했다. 자신에게 불리하면 무조건 적으로 규정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 말을 시간 역순으로 하나씩 되짚어봤다.

1.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는다.”
- 2017년 3월12일 탄핵으로 파면된 직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집으로 들어서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집으로 들어서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3월10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대통령직을 잃은 뒤 12일 저녁 7시15분께 청와대를 나와 서울 삼성동 집으로 향했다.

박 전 대통령은 삼성동 집에 도착한 뒤 마중 나온 친박근혜계 의원 등에게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는다”고 말했다고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전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대통령직을 잃었지만, 결정 이유에 대해 수긍할 수 없다는 메시지와 함께 이후 이뤄질 검찰 수사 등 사법 절차에서 일부 극우 보수층의 지지에 기대어 적극적으로 법적·정치적 투쟁에 나설 계획임을 시사한 것으로도 풀이됐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박 전 대통령은 끝까지 자신의 국정농단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였다. 여전히 헌재의 탄핵 인용에 불복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 충격적이고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국민의당도 장진영 대변인 논평을 통해 “진실은 밝혀진다 운운하며 끝내 헌법재판소 결정에 불복한다는 태도를 취한 것은 깊은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관련 기사 : 박근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것”…끝내 승복은 없었다

2.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오래전부터 기획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2017년 1월25일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티브이(TV)’와의 인터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주필이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 ‘정규재 티브이(TV)’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규재TV 갈무리.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주필이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 ‘정규재 티브이(TV)’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규재TV 갈무리.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1월25일 보수 성향의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주필이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 ‘정규재 티브이(TV)’와 인터뷰를 하면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 “쭉 진행과정을 추적해보면 오래전부터 기획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기획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긴 좀 그렇다. 하여튼 뭔가 우발적으로 된 건 아니라는 느낌은 갖고 있다”고 말했다.

최순실과 사실상 경제적 공동체가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런 것 없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희한하게 경제공동체라는 말을 만들어냈는데 엮어도 너무 엮은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또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여성 대통령이 아니면 그런 식으로 비하받을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인터뷰 당시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가능성이 커지면서 설 연휴를 앞두고 국민들의 탄핵에 대한 관측이 설왕설래하던 시점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출석은 거부한 상태에서 보수 논객이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무고함’을 스스로 증명하는 방식으로 연휴 밥상 여론전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전략을 택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보여주고 있는 ‘태극기 집회’에 대해 “촛불시위보다 두배도 넘을 정도로 정말 열성 갖고 많은 분들이 참여하신다고 듣고 있는데, 그분들이 왜 저렇게 눈도 날리고 날씨도 추운데 계속 많이 나오시게 됐나. 자유민주주의체제 수호해야 한다, 법치 지켜야 한다, 그런 것 때문에 여러가지 고생 무릅쓰고 나온다고 생각할 때 가슴이 미어지는 그런 심정이다”라고 밝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모습의 전형을 보여주기도 했다.

▶관련 기사 : 박대통령 “최순실 국정농단 허황된 얘기…누군가 기획”
박 “태극기 집회, 촛불 두배라는데…보면서 가슴 미어진다”

3. “(특검이) 완전히 엮은 것”
- 2017년 1월1일 신년 출입기자 간담회

박근혜 대통령이 2017년 1월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2017년 1월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7년 1월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갑자기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20여일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국민연금을 동원해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고 정유라 지원을 가능하게 했다는 뇌물 혐의에 대해서 “(특검이) 완전히 엮은 것”이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또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해서도 “사건이 터졌다는 것을 보고 받으며 정상적으로 체크하고 있었다. 그날 일정이 없어 관저에 있었다“며 “가족도 없는데 손님도 받을 수 있어서 일정이 없으면 관저에서 일을 챙긴다. 그런 날은 관저에서 일을 챙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최근 공개한 박근혜 청와대 시절 문서와 국가안보실 공유폴더 파일 내용을 확인해보면, 박근혜 청와대는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상황을 보고한 최초 시점을 30분 늦춰 발표하는 등 사실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세월호 참사 최초 보고서를 오전 9시30분에 보고했다고 적었다가 6개월 뒤인 10월23일 최초 보고 시점을 오전 10시로 수정했다. 또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위기관리지침엔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국가 위기 상황에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한다’고 적혀 있었지만, 2014년 7월말 김관진 당시 국가안보실장의 지시로 ‘안보 분야는 국가안보실이, 재난 분야는 안전행정부가 관리한다’고 지침을 불법 수정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박근혜 대통령 1일 새해 간담회 전문

4. “객관적 증거는 무시한 채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서 지은 사상누각일 뿐”
- 2016년 11월20일 검찰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중간수사 결과에 대해 정연국 대변인 통해 밝힌 청와대 공식 입장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담화 모습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담화 모습
검찰은 2016년 11월20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박근혜 대통령이 공모했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자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검찰의 발표에 대해 “객관적 증거는 무시한 채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서 지은 사상누각일 뿐”이라며 “검찰의 수사가 공정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앞으로 진행될 특별검사의 수사에 적극 협조해서 본인의 무고함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차라리 탄핵하라’며 완강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정연국 대변인은 “수사팀의 편향된 주장에만 근거해서 부당한 정치적 공세가 이어진다면 국정 혼란이 가중되고 그 피해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그런 경우라면 차라리 헌법상 법률상 대통령의 책임 유무를 명확하게 가릴 수 있는 합법적 절차에 따라 하루빨리 이 논란이 매듭되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은 결과적으로 모두 거짓이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4일 대국민 담화 당시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검찰이 11월15일과 16일 대면조사 일정을 통보하자 조사를 거부했다. 검찰은 11월18일까지 두 번째 대면조사를 요청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검찰의 직접 수사 요청에는 응하지 않고 중립적인 특검 수사에 대비하겠다”며 또 다시 조사를 거부했다. 검찰은 11월29일까지 세 번째 대면조사를 요청했지만 역시 “특검 임명 등 일정상 어려움이 있다”며 이마저도 거부했다.

특검 수사에 응하겠다는 말도 거짓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월초 박영수 특검과 대면조사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날짜가 언론에 유출됐다는 주장을 하면서 조사를 거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결국 특검 수사 기간이 종료되고,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이 난 뒤인 지난 3월21일에야 검찰에 출석하는 몽니를 부렸다.

▶관련 기사 : 청와대 “검찰조사 안받겠다”…‘탄핵하라’ 역공

5.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곧 헌법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이것은 헌법에 대한 도전이자, 체제에 대한 부정입니다.”
- 2004년 10월27일 한나라당 대표로 한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

2004년 10월27일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김정효 기자 hypod@hani.co.kr
2004년 10월27일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김정효 기자 hypod@hani.co.kr
법원의 추가 구속영장 발부와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특검과 검찰의 수사 등에 대해 부정하거나 반발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작 13년 전에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는 발언을 했다. 당시 헌법재판소가 노무현 정부의 신행정수도특별법에 관습헌법 논리를 들이대며 위헌 결정을 내리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승복 의사를 밝히면서도 국무회의에서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자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2004년 10월27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곧 헌법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이것은 헌법에 대한 도전이자, 체제에 대한 부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치주의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헌법에 대해 도발하고 체제를 부정한다면 나라는 근본부터 흔들리고 말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사법 체계가 박근혜 본인의 범죄에 대해 추궁하자 불만과 불신을 드러내며 사법 체계를 부정하는 발언을 반복하는 이율배반을 보여줬다.

▶관련 기사 : 13년 전 박근혜 “헌재 결정 존중않는 건 체제 부정”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814796.html?_fr=mt2#csidx878209722b8f7a39d7b3d85301b8c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