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황준범 정치에디터석 데스크 jaybee@hani.co.kr
“신라 이후로 대구·경북은 주류(메인스트림) 의식이 강한 곳이다. 이곳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퇴임 뒤 돌아가실 때까지 주류의 중심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최경환이나 유승민 같은 사람들은 박정희-박근혜로 이어지는 큰 강물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 하나에 불과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지난해 초 친박계의 한 핵심 인사가 사석에서 한 말이다. 한참 전 얘기가 다시 떠오른 건 최근 박 전 대통령의 ‘옥중 정치투쟁’을 보면서다. 지난 3월10일 대통령직에서 파면돼 4월에 재판에 넘겨진 뒤 법정에서 침묵해온 그가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진술한 내용은 “누구로부터도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들어준 사실이 없다”, “다시 구속 재판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혀졌으면 한다”고 했다.
이 발언에 당황한 건 보수 진영이었다. 전직 대통령이, 그간의 재판 과정에서는 입 다물고 있다가 구속이 연장되자 그제야 내뱉은 말이 ‘정치보복’ 주장과 ‘재판 부정’이라는 점에 자유한국당에서조차 “이제 와서 어쩌자는 건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라는 탄식이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의 법정 진술 직후 국제컨설팅회사(MH그룹)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이 인권 침해를 받고 있다”는 주장이 외신에 보도된 것을 보노라면, 박 전 대통령의 정치투쟁 선언이 지향하는 청자와 그 효과는 분명해 보인다. 골수 지지층은 이번 주말 ‘태극기 집회’에 총결집하자고 독려하고 있고, 결국 ‘무고한 박 전 대통령이 차가운 감옥에서 탄압받고 있으니 석방하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위에 적은 친박계 인사의 지난해 발언처럼 박 전 대통령이 온전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깨졌지만, 이번에도 박 전 대통령은 대구·경북으로 상징되는 핵심 지지층의 끝자락을 향해 구조 요청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더구나 그는 자유한국당의 ‘마지막 부탁’인 자진 탈당을 거부하고, 20일 자유한국당에서 ‘쫓겨나는’ 그림을 선택했다.
돌이켜 보면, 박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에도 국민을 위해, 통합을 위해 행동한 적이 없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시대착오적이고 극우적인 정책과 행보로 보수와 진보를 갈라쳤고, ‘유승민 찍어내기’나 ‘친박 공천’에서 보듯 여권 내부에서의 헤게모니 장악에 골몰했다. 전체보다는 내부를 향해, 통합보다는 분열의 정치를 해온 것이다. “한 사람(최순실)에 대한 믿음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배신으로 되돌아왔다”며 결백 주장을 되풀이하는 그이기에 애시당초 자유한국당을 제 발로 떠날 가능성은 없던 것이다.
그의 정치투쟁은 성공할까? 현재로서 그의 외침은 메아리 없는 초라한 투쟁일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의 출당 조처에 태극기 집회 인원이 잠시 늘어날 수 있지만 국민 다수의 정서와는 괴리된 지 오래다. 정치권에도 ‘박근혜 세력’은 힘이 빠진 지 한참 되었다. 107석 자유한국당이 2012년과 2016년 두 차례의 ‘박근혜 공천’으로 의원 다수가 친박계라고는 하지만 박근혜 출당에 공개적으로 반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정갑윤·최경환·김태흠·박대출·김진태·이장우 의원 등 소수다. 재판을 통해 형이 확정되고, 투옥 시간이 흘러가고 통합 여론이 무르익을 즈음 문재인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단행하는 시나리오가 그나마 실현 가능성 있는 수순일 것이다. 그마저도 박 전 대통령이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한 여론이 움직이긴 어렵다.
국민들에게 상처와 분노를 준 데 이어 수치심까지 안기면서, 그는 아버지의 유산마저 탕진하고 끝 모를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궤멸에 이른 보수 진영에서는 그를 두고 “스스로 내려놔서 거름이 되기는커녕, 재기해보려는 보수의 발목을 끌어당기는 늪”이라고 말한다. 쉽사리 ‘과거’가 돼버리지 않으려는 그에 관한 내외신 뉴스를 우리는 언제까지 더 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