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유기성*신우인목사설교+칼럼

[스크랩] 익숙함이 열쇠입니다. / 유기성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11. 9. 05:33


익숙함이 열쇠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하여 필요함은 인정하지만 예수님과 동행 일기를 써 보라고 권하면 힘들어 하거나 거부감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주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닙니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천주교 신자였던 이승훈이 배교하였다가 다시 천주학에 몰입할 때 정약용은 이승훈이 염려가 되어 “자형, 이제 서서(西署)는 그만 보시지요.” 라고 말했더니 “아니야. 역시 진리의 보고일세. 이 맛을 몰랐다면야 그만둘 수도 있겠지만 생수를 먹어본 자가 어찌 우물물에 족할 수 있겠는가?” 하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그 말에 정약용이 크게 웃으며 “그럼 저는 여태 우물 물밖에 못 먹었는가 봅니다.” 하였는데, 이승훈이 대답하였습니다. “아니지. 자네도 생수를 먹었지만 우물물에 더 익숙했던 것뿐이야. 인간은 익숙치 않은 것에 거부감을 느끼게 마련이지.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두가지 죄를 지적하였습니다.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정말 붙잡아야 할 하나님을 버린 것이고 터진 웅덩이인 주위 강대국을 의지하였을까요?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상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돈이 행복하게 해 주려나, 배우자가 행복하게 해 주려나, 자식들이 행복하게 해 주려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수의 근원이 예수님을 버리고 터진 웅덩이를 파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는 한가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익숙하지 않은 것입니다.
죄에 대한 회개도 알고 속죄에 대한 확신도 가졌고, 의롭다 함을 얻은 은혜에 대하여 알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과 주님과 연합하는 것과 매 순간 그 분의 임재와 돌보심을 경험하는 것에 대하여 배우거나 훈련받지 못한 것입니다.

많은 목회자들 조차 ‘목회 보다 주님을 바라보라’고 권하면 너무 막연하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그나마의 목회도 무너지면 어떻게 할까 걱정하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목회 현장과 교인만 바라보았지, 보이지 않는다고 주님을 바라보며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막연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목회하면서 진정 두려운 것은 교회가 성장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 설교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 안하고도 성결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설교도, 심방도, 상담도 할 수 있고 죄 짓고도 얼마든지 은혜롭게 보일 수 있는 것이 두려운 일입니다.

영성일기는 예수님과 동행 일기입니다. 초점은 일기 쓰기가 아니라 예수님과의 친밀한 동행에 있습니다. 보이지 않으시지만 지금도 함께 하시는 주님을 믿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만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 12:2)

우리는 예배에 참석하기를 힘쓰고, 말씀을 묵상하고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본질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다 종교생활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익숙하지 않더라도 주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을 믿고 예수님과 동행 일기를 써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컴패션 사역 현장을 둘러보기 위하여 필리핀 비젼 트립 중에 있습니다.
어제 새벽 한국을 떠나 필리핀에서의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여행을 할 때 마다 더욱 주님과 함께 함을 느낍니다. 어제도 순간 순간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생각하려고 애를 쓴 것이 아니라 그저 주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특별한 말씀을 들었거나 사건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하심은 너무나 분명히 느껴집니다. 저녁에 영성일기를 쓰면서 그것이 너무나 감사하였습니다.

주 예수님이 희미하게 보이는 사람이 있고 선명하게 보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이따금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항상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차이가 천국의 삶을 사는 차이입니다.


출처 : 삶과 신앙
글쓴이 : 스티그마 원글보기
메모 : 유기성 목사의 영성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