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
Facebook. 2017. 12. 15. 금요일
다시 한 번 따져봐야겠다.
1.
나는 1951년 2월 피난지인 부산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조차 잘 믿어 주지 않았지만
난 어머니 등에 업혀 다닐 때의 기억도 있다.
세 돌 쯤 지나 서울로 올라왔으니 부산에서의 삶은 고작 3년에 불과했다.
그런데 나는 그 어렸을 적 피난 시절의 삶을 제법 기억한다.
2.
세 식구 덥고 잘 이불은 한 채 있었는데
깔고 잘 요가 없었다.
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동네 형아들과 함께 미군 찦차 좇아 다니며 기브미 쵸코렛 기브미 껌하던 생각도 난다.
3.
서울 올라와서 우리는 홍릉 청량사 절 근처 단칸방 셋방에서 살았다. 부엌도 없는.
57년도 아버지가 운 좋게도 학교 수위로 취직이 되어 우리는 학교에서 마련해 준 단칸 방에서 살았다.
65년도에 기적같이 집을 샀지만 단칸 방 생활은 벗어날 수 없었다. 방 하나를 제외하고는
다 세를 주었었기 때문이었다.
4.
6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학에 실패 한 후 세운상가 점원이 되었다.
첫 월급은 7,000원이었고 몇 달의 수습 기간이 끝난 후 정식으로 받은 월급은 만 원이었다.
78년 신대원을 졸업하고 전임전도사가 되어 받았던 봉급은 7만 원이었었다. 당시 버스 안내양의 봉급이 막 10만 원선을 넘어설 때였었다.
5.
82년도 영락교회 부목사가 되면서 부터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었던 것 같다. 당시 부목사
봉급이 거의 60 만원 가까이 되었었다. 웬만한 교회 담임목사
봉급과 맞 먹었다. 그때 부터 평생 몸에 붙어 살았던 가난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 승동교회 담임목사로 몇 년 나가 있다가 88년도에 다시 영락교회의
협동목사가 되었다. 38살이었다. 그 때 영락교회는 협동목사인
나에게 담임목사와 똑같은 봉급을 주었다.
6.
그 이후로 동안교회 담임목사와 높은 뜻 교회 담임목사를 하다 작년 은퇴를 하였다.
어머니도 참 살림을 야무지게 하셨는데
아내가 어머니 못지 않게 살림을 야무지게 하였다.
아내와 어머니가 닮은게 딱 하나 있는데
그건 자신의 소비에는 엄격하고 헌금에는 후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작년에 은퇴했지만
집도 하나 있고
매달 꼬박 꼬박 나오는 국민연금과 총회연금이 있어서
부족함 없이 풍족하게 감사하며 잘 살고 있다.
7.
인도네시아 참 빛 교회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 교회 안수집사와 함께 꽤 좋은 골프 장엘 갔었다.
비행기가 밤 10시 비행기였기 때문이었다. 골프장이
있는 지역은 중국 부자들이 모여사는 동네였다.
중국인들 부자들이 아에 도시 하나를 통채로 새로 건설한 것 같아 보였다. 골프 장 옆으로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고 그 강을 끼고 중국 부자들이 경쟁하듯 집을 짓고 있었다. 아니 성을 짓고 있었다. 아무리 작게 잡아도 몇 백 억 이상을 호가할 집 같아 보였다. 정말
큰 집(성)은 천 억원도 넘을 것 같아 보였다. 중국 부자들의 씀씀이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8.
좋을까?
행복할까?
9.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잤다.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젼을 보다보니
우리 집도 좋다.
인도네시아 골프장에서 봤던 중국 부자들의 집에 비하면
1/100도 안 되는 집인데
찬찬히 살펴보니
이것도 과하다.
10.
사촌 형님이 외국생활 하시다가 돌아오시면서 가지고 와 한 20년을 쓰셨을 법한 소파 큰
조카가 바꿔주었다. 우리 집 소파 치우고 들여놓으니 근사하다. 진짜
부잣집같다. 아들 놈이 지 엄마 회갑이라면서 사준 전기안마기까지 있으니 더 폼 난다. 밖은 영하 10도 가까이 되는 모양인데 집은 더 없이 따뜻하다. 17층 베란다에서 내다 보이는 야경도 근사하다.
11.
더 욕심부리며 살았다면
최소한 지금보다 꼭 곱절 쯤은 더 좋은 집에서
꼭 곱절쯤은 더 많은 돈 쓰며 살 수 있었을꺼다.
대충 계산해 보면
집과
생활비
하나님과 50대 50쯤 공평하게 나누며 산 것
같다.
정직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쬐끔 더 쓴 것 같다.
아닌가?
하나님이 쬐끔 더 쓰셨을라나?
12.
난
나 만큼 열심히 살다가
나 만큼 나이 먹었을 때
모든 사람이 나 만큼 살았으면 좋겠다.
살아 보니 솔직히
좋다.
더 이상은 필요 없는데
이쯤 사는 건 좋아 보인다.
너무
주관적인 판단일지도 모른다.
이것도
힘들고 어려운 분들에게는
골프장 옆 중국 부자들의 몇 백 억원짜리 성 같이 보이겠지?...
13.
아무일에든지
다툼과 허영으로 하지 말라는 빌립보서(2장 3절)의 말씀이 생각난다.
허영
虛榮
14.
몇 백 억
몇 천 억짜리
집
아니
성을 짓고 있는 그 부자들을 지배하는 마음은
虛榮이다.
틀림없는 虛榮이다.
15.
그런데
지금
나는
아닌가?......
한 번
다시
곰곰히 생각해봐야겠다.
따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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