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직장갑질 ① 공공기관
사장님 갑질, 부장님 갑질, 정규직 갑질, 원청업체 갑질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직장갑질 빅뱅의 시대다. 40여일 전 문을 연 오픈카톡방 ‘직장갑질119’에는 매일 700명 이상의 직장인이 들어와 자신이 당하는 직장갑질 사례를 제보하고 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에서 ‘갑질’을 검색하면 누구나 방에 들어올 수 있다. 저마다 털어놓는 온갖 애환을 보고 있노라면 ‘직장이 지옥’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직장갑질119와 <한겨레>가 공동으로 기획해 연속 보도한다. 제보: gabjil119@gmail.com
직장갑질 119가 마련한 직장갑질 피해자의 모임 ‘가면무도회’에 참가자들이 쓴 가면들이 놓여있다. 가면엔 ‘갑질NO’, ‘울지도 몰라’ 등의 문구가 적혀있다. 직장갑질 119 제공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이 정보시스템 유지·보수 업무를 하는 사내하청 성격의 노동자들에게 밤샘근무와 휴일근로를 시키고도 휴가조차 거의 보내주지 않는 등 갑질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좋은 사용자의 모범이어야 할 정부의 ‘컨트롤타워’마저 되레 직장 갑질에 앞장선 셈이다. 행정부처 전반의 정확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국무조정실 정보시스템 운영·유지·보수를 맡은 사내하청 ㅇ업체 전·현직 노동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들은 1주일에 한차례 이상 2~4시간짜리 야근을 하고 한 달에 1~2차례씩은 주말에도 불려나와 휴일근로를 했으나 정작 연차휴가는 물론 대체휴가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다. 3월에 입사해 9월에 업체를 그만둔 나갑철(가명)씨는 <한겨레>와 만나 “여름휴가 5일과 5월1일 노동절 빼곤 휴가를 써 본 적이 없다. 다른 직원들도 비슷한 상황”이라며 “국무조정실 공무원들에게 ‘하루 쉬겠다’고 하면 그쪽에서 ‘시스템 작동에 지장 없도록 하고 쉬라’거나 ‘업무의 연속 유지에 지장이 없으면 쉬라’고 했다. 우리로선 쉬지 말란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사실상 휴가를 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어쩌다 하루 쉬어도 다음날 “왜 연락이 안 됐느냐”는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는 게 노동자들의 증언이다.
정보시스템 유지·보수 노동자에
빈번히 야근·휴일근로 시켜놓고
쉴 틈 안줘 휴가라곤 사흘 남짓
빈번히 야근·휴일근로 시켜놓고
쉴 틈 안줘 휴가라곤 사흘 남짓
사업자엔 노조활동 대책 요구도
총리실쪽 “오해소지 문구 없앨것”
실제로 <한겨레>가 이날 국무조정실을 통해 확인한 결과, 7달 동안 대체휴가 하루를 쓴 박씨를 뺀 나머지 노동자 7명이 지난 1월부터 이달 15일까지 쓴 휴가는 모두 6일(2명), 7일, 8일, 8.5일, 10.5일, 12.5일이었다. 여기엔 여름휴가로 한번에 쓴 5일이 포함된 것이다. 절반 이상이 여름휴가를 빼곤 1년 내내 평일에 쓴 휴가가 하루에서 사흘 남짓에 불과한 셈이다. 10.5일을 쓴 이는 업체 관리자였다.
이들은 올해 들어서만 4차례 안팎 정보시스템 유지·관리·보수 업체 노동자의 고유 업무로 보기 힘든 새 티에프 시스템 구축 업무도 맡아 밤샘근무를 해야 했다. 첫번째는 지난 5월 중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준비 때였다. 서울 종로구 금융연수원에 마련된 준비팀원 50여명의 사무환경 구축을 위해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업체 직원 7명 가운데 4명이 서울에 올라와 작업하느라 2~3일 동안 하루 서너 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는 것이다. 준비팀 1인당 2대씩 모두 100여대에 이르는 피시에 운용·보안시스템을 깔고 인터넷·정부전산망·프린터 등을 랜선으로 연결한 뒤 정상 작동 여부를 점검해야 했다. 이후 국무조정실에 소통위원회,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살충제달걀티에프(TF)를 구성할 때도 규모만 다를 뿐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국무조정실이 이들을 각종 티에프 관련 구축 작업에 동원한 건 의무에 없는 일을 시킨 ‘갑질’에 해당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관련 서류와 법률을 검토한 직장갑질119의 윤지영 변호사는 “사업 계약 내용이 명확하지 않으나, 일반 계약의 원칙을 비롯해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등의 취지에 비춰 보면 티에프 관련 정보시스템 구축은 애초 계약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새로운 사업으로 봐야 한다”며 “티에프 정보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계약 내용을 변경하거나 새로운 발주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국무조정실은 올해 1월에 조달청 나라장터에 공고 한 정보시스템 운영·유지·보수 업체 입찰 제안요청서에 “본 사업과 관련해 투입되는 인력의 노조활동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이들 업체 노동자의 노동3권을 옥죄는 ‘정부 갑질’이자 부당노동행위라는 비판이 가능한 대목이다. 정부 계약 특성상 제안요청서 내용은 계약서와 효력이 같다.
관련기사
이에 대해 국무조정실 쪽은 “제안요청서에 ‘장비 설치와 업무용 소프트웨어 설치 지원’ 항목이 있어서 이들에게 티에프 사무실 등의 구축 업무를 맡긴 건 잘못이 아니다”며 “업체 직원에게 휴가 등 복리후생을 제공하는 것은 위탁 업체 소관사항으로, 국무조정실에서는 위탁 직원의 휴가에 대해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 활동 관련 제안요청서 내용에 대해선 “문구상 오해의 소지가 있어 내년도 사업 제안요청서에선 삭제하겠다”고 밝혔다.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