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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고데기로 머리 손질까지 시켜”…하청 여직원 괴롭혀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12. 21. 18:19

고데기로 머리 손질까지 시켜”…하청 여직원 괴롭혀

등록 :2017-12-21 05:02수정 :2017-12-21 09:28

 

[한겨레-직장갑질119 공동기획] 멈춰, 직장갑질 대기업
사회공헌LG사이언스홀의 민낯

LG사이언스홀 부산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LG사이언스홀 부산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수진아, 나 수욜에 국장(관장)한테 억울한 이야기 다 할 건데. 국장이 내 손가락 이야기하면서 손 만지는 것도 말하고, 허리 다리 이야기도 하고….”

“엉엉.”

엘지(LG)그룹이 운영하는 ‘어린이 과학관’ 사이언스홀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하던 김수진(가명)씨의 카카오톡에는 2015년 10월 어느 날 직장 동료 박지민(가명)씨와 나눈 고통스러운 대화 내용이 여전히 남아 있다. 박씨는 원청 사용자인 엘지 소속 이아무개 관장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사실을 들어 회사에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난해 2월 직장을 그만뒀다.

대기업 사회공헌 사업장에서도 노동자들이 ‘직장 갑질’을 겪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기업 활동이 영리 추구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회 부문의 발전에도 힘을 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대기업들이 너나없이 홍보하는 사회공헌 사업장에서조차 하청 노동자를 향한 갑질이 이뤄지는 셈이다.

엘지 ‘어린이 과학관’ 사이언스홀
과학 동심 키워주려 하청 입사

관장이 점심값 떠넘기고
하청직원 이력서 맘대로 공개
결국 꿈 접고 상처 안은 채 사직
노동청 “임금체불만 처리” 외면

관장 “점심값은 돌려줬고
머리 손질은 호의로 생각”

김씨는 최근 <한겨레>와 만나 “본사(하청업체) 직원과 면담을 해도 바뀌지 않고, 노동청이나 경찰서를 찾아가도 해결이 안 되니 저나 친구 모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와 동료들은 진정이나 고소·고발을 위해 찾아간 노동청에서 “우리는 임금체불 사건만 처리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경찰서에선 “갑질에 해당하더라도 해결은 어렵다”는 말을 듣고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김씨는 재작년 외할아버지 장례식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이 관장에게 당한 황당한 경험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김씨는 “출근하고 밝게 인사를 안 하니까 이 관장이 부르더니 ‘얼굴 꼴이 그게 뭐냐’며 화장을 하라고 거울을 내게 들이밀었다. 그는 ‘시말서를 두번 이상 쓰면 어떻게 되는지 아냐’고도 말했다”며 “장례식을 마치고 왔는데 어떻게 웃는 얼굴로 있겠냐”고 말했다. 김씨는 또 “‘다리가 육상선수처럼 참 튼실해서 운동화가 잘 어울려’라든지 ‘다리가 튼튼해서 레깅스가 어울려’ 같은 이야기도 들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이렇게 하청 노동자의 ‘외모’는 원청 사용자의 통제 대상이 됐다.

김씨도 박씨가 퇴사한 뒤 일년 이상 버티려 노력하다 지난 5월 끝내 사직서를 썼다. 그 전에 정신과 병원에 다니며 약물치료까지 받았지만 거듭된 ‘직장 갑질’의 스트레스를 극복할 순 없었다. 김씨의 진단서를 보면 “본원에서 정신치료 및 약물치료 시행 중인 분으로 환자는 성추행 사건으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으며 향후 지속적인 정신과적 치료를 요함”이라고 돼 있다. 김씨는 “하고 싶은 연극도 하면서 사회공헌 파트에서 일할 수 있는 게 매력적이어서 입사했는데…”라며 말을 맺지 못했다.

대학에서 뮤지컬 연기를 전공한 김씨가 첫 직장으로 엘지사이언스홀에 발을 들인 것은 2013년 10월이다. 엘지그룹은 어린이들에게 과학의 꿈을 키워준다며 1987년 서울 여의도 엘지 트윈타워에 사이언스홀을 만들었다. 엘지 계열사인 에이치에스(HS)애드가 운영하며 과학기술 등을 소개하는 이곳은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개방해 30년 동안 572만명이 찾았다. 김씨가 전공을 살려 하는 과학 연극은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어린이들은 엘지사이언스홀에서 꿈과 희망을 키워 갔지만, 정작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꿈을 접고 희망을 꺾어야 했다. 김씨가 근무하는 동안 사이언스홀 운영을 맡은 하청업체 ‘사이엑스’ 노동자들의 퇴사가 잦았다고 한다. 10여명이 근무하는데, 1년에 6~7명이 일을 관뒀다. 김씨는 “내가 4년 차가 되자 가장 선임이 됐다. 관리자들 때문에 회사를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주장했다. 엘지사이언스홀은 에이치에스애드 소속 직원이 관장을 맡고 실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하청업체인 사이엑스 소속이다.

원청의 ‘갑질’은 하청 직원들의 개인정보마저 공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 관장은 ㄱ 직원을 다그칠 때 ㄴ 직원에게 ㄱ 직원의 이력서를 들이밀며 “이력서에 다 나와 있어. 쟤는 이래서 문제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김씨는 “나도 선배의 이력서를 봤다. 그곳에는 집안 사정, 어려움 등 개인정보가 다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다 들여다보고, 다른 이에게 공개되어선 안 될 내밀한 개인정보를 ‘무기’로 삼았다.

여성 직원들은 이 관장의 ‘헤어디자이너’ 구실도 해야 했다. 그가 하청 노동자에게 머리 모양을 만져달라고 해 ‘고데기’로 머리카락을 펴준 적도 있다. 심지어 관장은 하청업체 직원들과 함께 트윈타워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 밥값이 자신이 가진 식권 값(4000원)을 넘어서면 나머지 비용을 하청업체 직원들에게 내도록 했다.

이에 대해 이 관장은 “직원의 이력서나 가정사를 다른 직원에게 공개하며 말한 적이 없다. 식권 가격을 넘은 경우 간혹 직원에게 부탁한 적은 있지만, 이 경우 현금으로 주거나 음료수 등으로 되갚아 사주었다”며 “직원이 ‘고데기로 펴드릴게요’라고 해서 2~3회 머리를 한 적은 있지만, 윗사람을 챙기는 호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여직원 손을 쓰다듬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손가락 길이를 대봤을 뿐 쓰다듬은 적이 없고, 여직원의 신체에 대해서도 말한 적 없다”고 해명했다.

사이엑스 노동자들은 이 관장이 하청업체 노동자의 인사 및 운영에도 관여했다고 말했다. “입사 면접을 볼 때 이 관장과 사이엑스 전무가 함께 들어왔다”는 것이다. 사이언스홀에서 근무하다 그만둔 박준상(가명)씨는 “사소한 문제가 생겨도 관장님에게 불려가 혼이 났다. 시말서를 쓰게 하거나 잦은 면담을 했다”고 증언했다. 원청 관리자가 하청업체 노동자의 인사에 개입하고 일상적인 업무 지휘·감독을 하는 것은 도급계약을 위반한 것으로, 불법파견으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

사이언스홀이 1987년 처음 만들어졌을 때 직원들은 엘지 계열사 소속이었다. 사이엑스가 2005년부터 위탁운영을 맡으면서 사이언스홀은 외주화됐다. 관장은 그대로 엘지 직원이 맡고 엘지 출신 직원이 하청업체인 사이엑스 임원으로 옮겨 와 일했다. 정작 전시관 안내와 운영을 맡은 노동자들은 하청업체 소속이 됐다.

‘직장갑질 119’의 조혜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다른 곳에서 들여다보지 않는 작고 폐쇄적인 집단에서 발생하다 보니 직장 갑질이 시정되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된 사례로 보인다”며 “관장이 면접 자리에 나가 채용에 관여하고, 프로그램 기획에 지시도 하는 등 업무감독권과 인사권을 행사해 ‘불법파견’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원청인 에이치에스애드 쪽은 “회사가 사실관계를 철저히 확인해서 엄벌하겠다. 사이언스홀 운영은 100% 사이엑스가 하고 있어 불법파견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대기업이 ‘임원 낙하산’을 위한 하청업체 꾸리듯 사회공헌 사업을 운영해 문제가 된 사례는 적지 않다. 포스코가 탈북 이주민과 장애인 등을 고용해 설립한 사회적기업 송도에스이(SE)의 경우 올해 초 경영을 맡은 포스코 출신 상무가 여직원을 성희롱해 문제가 되자 퇴사하기도 했다. 포스코가 송도에스이에 준 주차관리 일감을 다른 곳에 넘기면서 청소 업무로 전환배치된 탈북 노동자가 빌딩에서 추락해 숨지는 사고도 났다. 송도에스이를 사회공헌 사업으로 자랑하던 포스코는 이후 송도에스이 지분을 다른 기관에 넘기는 등 발을 빼고 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사장님 갑질, 부장님 갑질, 정규직 갑질, 원청업체 갑질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직장갑질 빅뱅의 시대다. 40여일 전 문을 연 오픈카톡방 ‘직장갑질 119’에는 매일 700명 이상의 직장인이 들어와 자신이 당하는 직장갑질 사례를 제보하고 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에서 ‘갑질’을 검색하면 누구나 방에 들어올 수 있다. 저마다 털어놓는 온갖 애환을 보고 있노라면 ‘직장이 지옥’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직장갑질119와 <한겨레>가 공동으로 기획해 연속 보도한다. 제보: gabjil119@gmail.com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824462.html#csidx68f2e440f67f659be5907701f3542b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