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한번 당해보면 어른들이 왜 대기업 가라고 하는지 알 수 있다.” (엘지 하청업체 직원이 잡플래닛에 쓴 리뷰 내용)
20일 직장정보 사이트 ‘잡플래닛’이 올해 7월부터 11월까지 5달 동안 직장인들이 사이트에 남긴 글 30만4888건을 ‘갑질’이란 열쇳말로 분석한 결과, 10대 그룹(공정위 자산기준)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된 곳은 엘지그룹(44건·계열사 포함)인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삼성그룹(41건), 3위는 롯데그룹(39건), 4위는 현대차그룹(35건)이었다. 삼성과 현대차 쪽에 견줘 직원수가 많지 않은 엘지 쪽 갑질고발이 가장 많다는 것은 일상적인 기업 문화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사회공헌 사업인 어린이 과학관 ‘사이언스홀’에서 원청 사용자의 하청 노동자 대상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 배경이 무엇인지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잡플래닛 기업 리뷰는 그 기업의 전현직 임직원이 직접 사이트에 들어와 남긴 평가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기 보다는 자발적으로 남긴 리뷰라는 점에서 해당 기업의 전반적인 문화를 살펴보는 데 유용하다.
각 기업 내부에서 벌어지는 갑질은 리뷰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엘지에서 나온다고 하면 거의 전직원이 퇴근 없는 근무 모드, 엘지 직원이 까라면 까야 한다.” “삼성의 갑질 에스원의 을질. 시설 유니폼 입고 직원 식당에서 밥도 못먹게 하고 담배도 못피게 한다. 2차 하청 나부랭이는 다 이해합니다.” “(현대차는) 협력업체가 불쌍할 정도로 갑질을 하는 편. 자기 부모 농약 치는 데 협력업체 직원이 농약 사들고 가는 것도 봤다.”
롯데에 다니다 갑질을 반성하며 퇴사한 직원의 글도 보인다. “신입사원 들어오면 하청업체 데리고 가서 갑질 솔선수범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사원급 직원들이 그런 모습 보면 대기업 왔다고 좋아할 것 같습니까? 부끄럽고 창피해서 퇴사합니다.”
김지예 잡플래닛 이사는 “추출된 갑질 리뷰는 사내 상하관계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계열사간에 또는 원하청 기업 관계 속에서 나오는 갑질이 모두 포함됐다. 한국 기업 전반에 걸쳐 갑질 문화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잡플래닛 분석 결과, 10대 그룹을 포함해 올 하반기 ‘갑질’이 언급된 리뷰는 모두 2164건이었다. ‘심부름’ 이나 ‘까라면 까’ 등 다른 키워드로도 ‘갑질’을 유추할 수 있었지만, 명확한 분석을 위해 ‘갑질’이란 단어가 언급된 리뷰만 찾았다. 김 이사는 “이같은 문화를 가진 대기업이 사회공헌 사업을 벌일 때도 원가 관리 등 똑같은 방식으로 위탁업체를 관리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사회공헌 비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고, 사회공헌 사업장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비용 감축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사장님 갑질, 부장님 갑질, 정규직 갑질, 원청업체 갑질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직장갑질 빅뱅의 시대다. 40여일 전 문을 연 오픈카톡방 ‘직장갑질 119’에는 매일 700명 이상의 직장인이 들어와 자신이 당하는 직장갑질 사례를 제보하고 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에서 ‘갑질’을 검색하면 누구나 방에 들어올 수 있다. 저마다 털어놓는 온갖 애환을 보고 있노라면 ‘직장이 지옥’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직장갑질119와 <한겨레>가 공동으로 기획해 연속 보도한다. 제보: gabjil11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