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구속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동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고소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만도 하다. 지난 1년4개월 동안, 그는 ‘법꾸라지’였고 ‘국민 밉상’이었다. 청와대에서 그가 했던 일들은 이제 사법적 심사와 단죄의 대상이다.
자신이 휘둘렀던 칼에 그대로 베인 것도 ‘숙명’이겠다. 그는 12월15일 구속됐다. 두 차례 영장 기각 뒤 세 번째 만이다. 9년 전인 2008년 12월17일, 우병우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 부장검사는 김평수 전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을 세 번째 영장청구 만에 ‘기어코’ 구속했다. 6개월 넘는 추가수사 끝이다.
우 검사만 집요한 게 아니다. 한 사람을 ‘탈탈 털어’ 기어코 구치소에 ‘입고’시킨 ‘실적’은 예나 지금이나 검사들의 자랑거리다. 기각도 다반사다. 2006년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의 구속영장은 4차례 연속 기각됐고, 2010년 시신훼손 사건의 구속영장은 다섯 차례 기각·각하됐다. 지금도 웬만한 사건에선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당연하다는 듯 재청구가 거론된다. 보통의 형사사건에서도 영장 재청구는 흔하다.
당하는 처지에선 지옥 같을 것이다. 두 차례 영장이 기각됐던 한 피의자는 “심리적 중압감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불안과 공포는 사람을 잠식하고 위축시킨다.
우리 형사사법 현실에서 구속은 그 자체로 형벌이다. 구속영장 발부만으로 사실상 유죄 판결로 취급된다.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아도 구속으로 인한 정신적·물질적 피해는 제대로 보상되지 않는다.
실제로 ‘6개월 구속 뒤 무죄 판결’과 ‘불구속 기소 뒤 집행유예’ 가운데, 후자를 무거운 처벌로 여기는 사람은 의외로 다수가 아니라고 한다. 응보 심리의 충족이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나 전과 기록보다 중요한 셈이다. ‘구속이 처벌이어선 안 된다’는 게 원칙이지만 ‘구속이 사실상의 형벌’인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전관예우는 그 틈을 타 발호하고, ‘유전무죄’의 사법 불신도 여기서 싹튼다.
검찰의 거듭되는 영장청구가 사실상의 형벌권 행사, ‘권력’인 것도 그 때문이다. 검사의 영장청구권은 헌법에 명시돼 있다. 수사권, 기소권과 함께 검찰의 독점적 권한이다.
검찰은 그 힘을 마음껏 휘둘러왔다. 유죄 판결을 받기 어렵거나 큰 처벌이 예상되지 않더라도 일단 구속과 압수수색부터 하고 나선 일이 여럿이다. 거액의 배상 청구로 입을 틀어막는 전략적 봉쇄 소송처럼, 검찰도 권력의 요구 등에 따라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자주 벌였다. 그렇게 양산된 것이 검찰 과거사와 적폐다. 이를 국가 형벌권의 정당한 행사로 볼 순 없다. 괴롭히는 것 말고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려운 사건이 많았으니, 그야말로 검찰의 권한 남용이다.
지금의 적폐 수사나 우병우 구속이 그렇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죄에 대한 처벌은 당연하고, 이를 위한 수사도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당장 입에 단 ‘속 시원한 사이다’라고 해서 집요하고 거친 칼질 세례의 악습까지 그대로 묵인하고 지나칠 수는 없다. 다른 이유는 두더라도, 그 칼질이 언제 누구를 향할지 알 수 없다. 견제하고 축소해야 할 지금의 검찰 권력은 칼질의 공포에 터 잡아 유지되고 강화돼왔다.
구속영장의 재청구에 대해선 법률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 그러나 새로운 증거나 사정 변경이 없는데도 기각된 영장을 다시 청구하는 것은 권한 남용이고 재판 불복이다. 형사소송법에 ‘동일한 범죄 사실’에 대해선 구속영장 재청구를 제한하는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 검찰개혁에는 ‘공수처 도입’ 말고도 할 일이 이렇게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