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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물장수와 어머니 [강명관]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12. 26. 17:51

방물장수와 어머니 [강명관]

                        보낸사람

다산연구소 <dasanforum@naver.com> 보낸날짜 : 17.12.22 03:45                
제 484 호
방물장수와 어머니
강 명 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은퇴한 지 오래된, 무척 존경하는 선배 교수님께 들은 이야기다. 20대 초반 여름 친구들과 어울려 캠핑을 하면서 전국을 주유하던 중 어느 날의 일이었다. 오후 늦게 강가에 텐트를 치며 하루를 묵을 채비를 하고 있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초로의 촌로 한 분이 걸음을 멈추고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하루를 자고 떠날 요량이라고 했더니, 펄쩍 뛰면서 우리 마을을 찾아온 사람들을 어찌 한데서 재우느냐며 빨리 텐트를 걷고 따라오란다. 실랑이 끝에 못 이기는 체 하고 따라갔더니 마을 공회당 넓은 방에 묵게 해 주고, 저녁까지 차려 주며 ‘없는 찬이나마 든든히 먹으라’고 호의를 베풀더라는 것이다.

   “아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그땐 그랬어, 요즘처럼 야박하지 않았거든. 꼭 그 마을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날도 늦었는데, 그냥 자고 가소”

   이 이야기에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인데도 그 날 일은 너무나 또록또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어느 날 오후 여자 손님이 찾아왔다. 머리에 이고 왔던 보퉁이를 펼치자 색실이며 바늘, 골무, 참빗, 따위가 있었다(이런 여성을 ‘방물장수’라 부른다는 것을 안 것은 또 한참 뒤의 일이다). 다른 물건들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또 어머니가 그 방물장수에게 무엇을 샀는지도 전혀 기억에 없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심심하다고 치마꼬리를 붙잡고 칭얼대는 나를 다독여 달래면서 어머니가 방물장수와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대화의 내용은 물론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희한하게도 꼬맹이의 기억에 ‘대동아전쟁’과 ‘육이오’란 단어만은 지워지지 않고 똑똑하게 남아 지금도 잊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하건대, 방물장수와 어머니는 두 차례의 전쟁을 거치면서 자신이 견뎌내었던 고단한 삶에 대해 경쟁하듯 말했을 것이다. 방물장수는 물건을 파는 것을 잊어버리고 아예 무당이라도 된 듯 넋두리를 하염없이 늘어놓았다. 모처럼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털어놓을 상대를 만났기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어머니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정 일어서려는 방물장수를 자꾸 말렸을 것이다.

   기운을 잃은 해는 서쪽 산에 반달이 되어 걸려 있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하고 방물장수가 보퉁이를 싸서 일어서려 하자, 어머니는 방물장수를 붙잡았다. “가긴 어딜 가요. 날도 늦었는데, 그냥 자고 가소.” 가벼운 실랑이 끝에 방물장수는 주저앉았고 어머니는 재바른 손으로 저녁상을 차려 왔다. 방물장수는 마당 건너 따로 떨어져 있는 작은 방에 묵었다.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어떻게 하나 조마조마했지만, 아버지 역시 방물장수라고 하는 어머니 말에 “그래?” 하고 말았을 뿐이었다.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다음 날 방물장수가 우리 집을 떠나던 장면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타인에 대한 호의와 배려가 있는 사회

   학교 출근하는 길 곳곳에 아파트 공사를 하고 있다. 단독주택을 헐고 30층, 40층 말쑥한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집은 모두 아파트로 변했거나 변하고 있다. 이제 아파트로 무엇을 팔러 오는 사람도 없거니와 있다 해도 집안으로 들일 사람도 없을 것이다. 밥을 먹이고 재워서 보낸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마을 어귀에 청년들이 와서 텐트를 치는 것을 보고, 이럴 수 없다며 데려다 공회당에 재우는 일도 더더욱 없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 않는, 이런 호의는 당연히 근대의 산물은 아니다. 벌써 50년 전의 일이니, 그것은 아마도 전근대 사회의 유물일 것이다. 나는 전근대 사회를 긍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신분제와 유교적 가부장제, 경제적 빈곤만 들더라도, 전근대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회임이 명백하다. 하지만 우리가 전근대를 벗어던지고 만든 이 사회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오직 화폐로만 매개될 뿐이다. 이 사회가 정말 우리가 그토록 바랐던 사회인가. 궁금하다. 혹 근대로 달려오면서 전근대의 쓸 만한 가치들을 모두 일괄하여 폐기해 버린 것은 아닌가. 조선후기 사회의 개혁을 고민했던 다산이 다시 살아난다면 화폐만으로 매개되는 이 사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 번 물어보고 싶다. 나아가 우리가 앞으로 만들고자 하는 세상에는, 보상을 바라지 않는, 타인에 대한 호의와 배려가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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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신태영의 이혼 소송 1704~1713〉, 휴머니스트, 2016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휴머니스트, 2015
〈홍대용과 1766년〉, 한국고전번역원, 2014
〈그림으로 읽는 조선 여성의 역사〉, 휴머니스트, 2012
〈조선풍속사 1,2,3〉, 푸른역사, 2010
〈열녀의 탄생〉, 돌베개, 2009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