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논설위원
논설위원
4명.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에 투입된 구조대원 숫자. 이들을 포함해 지휘차, 소방차 대원 등 15명은 차량을 치우고 불길을 잡고 굴절차를 움직이고 에어매트를 설치했다. 이일 충북소방본부장은 통유리를 일찍 깨지 않은 이유에 대해 “사람이 모자랐다”고 말했다. 4명.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 간호사 숫자. 이들을 포함해 간호조무사, 의사 등 8명이 16명의 아기들을 지켰다. 한 간호사는 “한 명만 위급해도 간호사 네명이 전부 달려들어야 한다. 거의 동시에 네명의 신생아에게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는 건 정말 미쳐버리는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코 소방대원과 의료인력의 책임이 가볍다는 얘기가 아니다.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들의 직업윤리엔 엄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다만 ‘죽음의 벨’이 울리고 나서야, 우리가 몰랐거나 외면해온 현실을 계속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느껴졌다. 생명과 안전을 맡는 이들의 착취와 희생에 기댄 구조가 2017년 끊임없이 파열음을 냈다.
충북 제천시 하소동 두손스포리움 화재 현장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서 지난 22일 [시민들이 분향을 하고 있다. 제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돌이켜보면 올 한해 이들뿐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비명을 질렀다. 지하철 9호선 노동자들의 파업 전까지, 난 ‘지옥철’이라고 불평만 하지 그들의 상황도, 심정도 짐작 못 했다. 나흘간 1시간을 자고 홀로 열차를 몰던 기관사는 “여기서 지금 내려야 네가 산다는 환청이 내내 들렸다”고 털어놨다. 다른 노선 기관사가 1인당 매일 16만명 안팎을 수송할 때 9호선은 26만명을 수송한다. 중증외상센터의 현실을 토로하던 이국종 교수의 목소리엔 피가 맺혀 있었다. “나는 어느새 적자의 원흉이 되어 있었다. 무고했으나 죄인이었고, 나아갈 길은 보이지 않았다. 나의 목숨이 내게 오는 환자들과 다르지 않았다.”(<탁류청론>) 중증외상센터, 응급실, 신생아중환자실, 요양병원… ‘공공’과 직결된 ‘돈 안 되는 병원’들의 처지가 매한가지다.
보수정권 9년을 거치며 비용과 편의 우선주의는 서서히 모든 걸 집어삼키더니 이제 ‘괴물’이 되어버렸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무리한 민자화의 결과, 매해 서울시가 9호선에 500억~600억원의 비용 보전을 해도 안전과 인력 투자는 늘지 않는다. 그사이 외국계 자본은 ‘합법적’으로 투자액의 25배가 넘는 배당액을 가져갔다. 가장 두려운 건 사람들의 가치관을 바꿔놨다는 점이다. 최근 외과 전공의 모집에서 지원자가 모집인원을 넘은 건 서울대병원 등 ‘빅4’에 불과했다. 이국종 교수가 있는 아주대병원은 두해 연속 ‘0’이었다. 의료인으로서의 보람이나 긍지 같은 건 격무와 ‘돈벌이’ 되는 진료과목 앞에서 무색해진 지 오래다.
들여다보면 규정이나 제도, 지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방법은 구조대 팀당 인원을 6~8명이라 하지만, 그나마 사람이 가장 많다는 서울도 이에 미치지 못한다. 의료기관 인증평가 제도가 있지만, 병원들은 4년에 한번 평가 때 최대한 환자를 퇴원시키고 최대한 간호사들을 출근시키면 그만이다. 애초 4천억원을 투입해 3~4곳을 집중 육성해 전문의를 키우겠다던 중증외상센터 지원은 절반으로 줄어 전국 센터에 쪼개졌다.
너무 우리 사회가 멀리 와버린 게 아닐까. 그래도 누군가의 착취와 희생에 기댄 구조가 오래가지 못함을 인식하는 순간, 변화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외형과 통계에 매달리는 관료와 정치권, 사회적 책임보다 업계 이익을 우선하는 공급자, 일이 터지기 전엔 구조 감시를 게을리하는 언론이 바뀌어야 한다. 생명과 안전을 위해 비용과 불편을 기꺼이 시민들도 감수해야 한다. 더 많은 벨이 울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