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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송재소]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1. 9. 04:59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송재소]

                        보낸사람

다산연구소 <dasanforum@naver.com> 보낸날짜 : 18.01.09 03:42                
제888호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송 재 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2017년 11월 15일 경상북도 포항에 진도 5.5 규모의 큰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주택, 공공건물, 학교 등이 피해를 입어 62명이 부상당하고 1,537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집계된 잠정 피해액이 522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2018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주일 연기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이번 지진의 피해는 심각했다.

“종교계에 과세를 문다 하니까 포항에서 지진이 났다”

   이와 같은 국가적 재난이 일어난 바로 다음 날, 전남 영암의 삼호교회 이형만 목사는 서울 화곡동 성석교회에서 열린 부흥회에서 ‘종교계에 세금을 문다 하니까 포항에서 지진이 났다’는 요지의 설교를 했다. 그는 이 설교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에다 세금을 내라하나”,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지 않는다. 하나님을 건드릴 때 국가에 위기가 바로 다가오는 거다. 그걸 체험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철딱서니 없는 이형만 목사의 발언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니 우리를 어이없게 하고 우리를 분노케 한다.

   이형만 목사의 발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한 직후에 내뱉은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발언을 연상시킨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 국민이 신앙적으로 볼 때는 너무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목사와 조 목사가 내세우는 ‘하나님’이 정말 존재한다면 아마 전지전능한 그 하나님은 ‘하나님 무고죄(誣告罪)’로 이들을 처벌했을 터인데, 저들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건재한 것을 보면 과연 ‘하나님’이 정말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포항 지진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하늘의 준엄한 경고”라 한 당시 자유한국당 류여해 최고위원의 발언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른바 ‘태극기 집회’를 주도하며 ‘여자 홍준표’라 불리던 그녀가 그 홍준표로부터 서초갑 당원협의회 의장직을 박탈당한 후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간 거친 막말들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국회의원들이란 원래 막말을 즐기는 존재이긴 하지만.

“만절필동 공창미래(萬折必東 共創未來)”

   2017년 12월 5일 신임 노영민 주중대사가 신임장을 제정하는 자리에서 “만절필동 공창미래”라는 문구를 썼다. ‘만절필동’은 『순자(荀子)』「유좌(宥坐)」편에 나오는 말로, 공자가 동쪽으로 흐르는 큰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제자 자공(子貢)이 그 까닭을 물으니 공자가 강물의 여러 가지 품성(品性)을 열거하는 가운데 “其萬折也必東 似志(기만절야필동 사지)”라 답한 말이다. 즉 “(강물이) 만 번 꺾이지만 반드시 동쪽으로 흐르는 것이 (군자의) 의지와 같다”는 것이다. 군자의 의지는 확고부동한 것이어서 강물이 결국은 동쪽으로 흐르듯이 아무도 그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이 이 구절의 본뜻이다.

   이 구절은 후대에 여러 가지 의미로 원용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송시열(宋時烈)의 유언으로 만동묘(萬東廟)를 새운 이래 ‘명나라에 대한 변함없는 충절’의 뜻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만동묘는 ‘萬折必東’에서 따온 명칭으로 이곳에는 임진왜란 때 우리를 도와준 명나라 신종(神宗)과 마지막 황제 의종(毅宗)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명칭에는 사대주의적인 색채가 짙게 배어있다. 확대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중국의 천자를 향한 제후국들의 변함없는 충성’의 뜻도 내포하고 있다.

   노영민 대사가 ‘만절필동’이라 쓴 의도가 무엇일까? ‘군자의 굳은 의지’라는 본뜻과는 어울리지 않고 오히려 ‘중국에 대한 변함없는 충절’이라는 뜻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이 사건이 국내에서 문제가 되자 주중 대사관에서는 “한중관계가 우여곡절을 겪어도 반드시 좋아질 것”이라는 의미라 해명했다. 이렇게 해명하는 것이 전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다른 적절한 성어(成語)를 인용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하필이면 사대주의적인 혐의가 있는 용어를 선택한 노영민 대사의 사려 깊지 못한 처신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기보다 우리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하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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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송재소

·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 퇴계학연구원 원장

· 저서
〈시로 읽는 다산의 생애와 사상〉, 세창출판사, 2015.04
〈중국 인문 기행〉, 창비, 2015.03.
〈다산시 연구〉(개정 증보판), 창비, 2014
〈다산의 한 평생〉, 창비, 2014
〈역주 다산시선〉(개정 증보판), 창비, 2013
〈당시삼백수〉(공역), 전통문화연구회 2011
〈한국한시작가열전(송재소와 함께 읽는 우리 옛시)〉, 한길사, 2011
〈한국 한문학의 사상적 지평〉, 돌베개, 2005
〈주먹바람 돈바람〉, 문자향, 2004
〈몸은 곤궁하나 시는 썩지 않네〉, 한길사, 2003
〈한시 미학과 역사적 진실〉, 창작과비평사, 2001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