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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과 관계를 맺으라! [기독교가 세상의 종교와 다른 것이 바로 이것이다.] / 이용규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1. 9. 06:10

그분과 관계를 맺으라! |삶을 위한 묵상

스티그마 | 조회 24 |추천 0 |2018.01.07. 19:49 http://cafe.daum.net/stigma50/7psK/1904 



말씀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시편 18편 1~3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5 20, 2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요한일서 3 1


내용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 다른 종교의 신을 믿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하나님과 우리가 진정한 관계 속에 하나가 되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은 이미 분이 하나가 되는 온전한 관계를 이루셨다.

관계를 사람과 관계 속에서 확장하시는 것이 그분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다.



하나님이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실 ,

애정을 다해 특별한 섬세함과 노력을 기울이셨다고 성경은 말한다.

이런 창조의 노력은 다른 종교의 창조론에서는 보이지 않는 특징이다.







대부분의 창조 설화는

세상이 신들의 전쟁이나 실수에 의해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다윈의 진화론도 결국은 세상이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하는 점에서

다른 창조 신화와 같은 관점을 가진다.

오직 성경만이 하나님과 세상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다른 이해를 준다.


이런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세상의 모든 종교가 설명하는 신관(神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다른 종교는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신을 이용하는 목적을 둔다.

그래서 신을 경배하고, 신에게 보이려 복종하고, 착하게 살아간다.

이는 현세에서 복을 받아

어려움 없이 편안하게 살기 위함이거나 내세를 보장받기 위함이다.


지난 여름, 일본에 집회차 갔다가 몇몇 지역을 여행하면서 신사와 절을 관람했다.

앞에는 항상 많은 일본인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몽골의 라마불교 사원에서 자주 보던 풍경과 다를 없었다.


그들은 신에게 자신의 마음을 나누고,

신이 자신의 삶에 찾아와 그의 생각과 마음을 나눠주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잠깐의 짧은 기도에 담긴 모든 내용은 절박한 소원을 아뢰는 것이다.


일본인의 집집마다 신이 있고, 마을마다 신이 있다.

가장 지배적인 신은 천황가의 조상신인 태양신이다.

이런 신관은 일본의 정치적 현실을 반영한다.

바쿠후 시대에는 상징적인 지배자인 천황 밑에 쇼군,

밑에 영지를 지배하는 다이묘,

그리고 작은 영지를 받아 다스리는 사무라이가 백성을 통치했다.


그들의 미움을 사면 어려움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할 있었다.

그래서 그들 앞에서는 허리를 굽혀야 했다.

그들은 자기 영역 안에 있는 백성을 보호하며 생업을 지켜주었고,

백성들은 노역과 세금을 바치며 지배자를 받들었다.

일본인들의 신은 바로 이런 통치자의 이미지가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다.


백성들은 자신의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지배자의 통치가 필요했고

그들을 멀리할 없었지만, 그렇다고 가까이에 머물기는 부담스러웠다.

신분의 차이 때문에

지배자와 가까이 지내며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는 것은 꿈도 없었다.

그저 각자의 역할을 감당하며 서로에게 방해만 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일본인에게 신의 존재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자기 수호신의 위치는 안방이 아닌 밖에 있다.

결국 신에게 비는 행위는 신을 사랑하거나 신과 하나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 비는 행위의 가장 중심에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리에는 자신의 안위가 있다.

결국 신사를 찾아 기도하는 일본인에게 궁극의 신은 바로 자신 셈이다.


일본을 넘어서 아시아권의 사찰과 신전에서 행해지는 기도나 종교 의식도

결국 자신을 챙기고 돌보는 행위라 있다.

열심으로 신을 조종해서 필요를 채우는 것이 기본적인 신앙의 동기이다.


세상의 일반 종교가 신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신과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신적 존재에 대한 복종이 요구되고,

그렇게 순종의 모양새를 갖추면 그만큼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

기브 테이크(give & take) 관계의 틀을 가질 뿐이다.


반면,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중심에 하나님을 초청하고 그분과 관계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다른 종교를 믿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다.



- 가정, 내어드림, 이용규 / 규장




기도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시고 받으시는 주님 앞에 오늘도 감사하며 나아갑니다.

깊은 교제를 원하시는 주님께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나아가 음성듣기 원합니다.

오늘도 주님만 바라보며 의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