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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8. 1. 8. 월요일3 / 생사를 건 교회개혁 읽기 (25)[장로교회는 '장로들의 교회'(?)]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1. 9. 05:22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8. 1. 8. 월요일3


생사를 건 교회개혁 읽기 (25)


장로교회는 '장로들의 교회'(?)

지금 한국교회 안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유형의 잘못된 인식과 힘이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첫째는 목회적인 성직의 파워가 너무 강해져서 감독정치 또는 교황정치 스타일로 가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이 어떻게 하면 교인들과 장로들을 꼼짝 못하게 주무를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회의 성패를 거기에 걸고 있습니다.

둘째는 교인들의 대표인 장로들의 파워가 커지면서 장로들이 교회의 주인이요 사주요 고용주인 것처럼 행세하는 스타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들은 장로교를 장로교파 사람의 교회’(presbyterian church)로 이해하지 않고 장로들의 교회’(elder's church)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목사와 장로들의 파워 게임에 의해 서서히 몰락해 가고 있다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현상을 직시하고 먼저 목사와 장로가 쓸데없는 힘 겨루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겸손히 자신의 면류관과 자리를 하나님께 내어 드려야만 합니다.

지금 우리가 꾸려가고 있는 장로교회는 진정한 의미의 장로교회가 아닙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장로교회의 정치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이 장로교회의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로교의 정치만이 유일한 성경적인 원리에 따른 정치는 물론 아니지만 장로교회의 정치가 가장 성경적이고 민주적이라는 데는 큰 이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동안교회와 한국 장로교회를 진정한 의미의 장로교회로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합니다. 지금 우리들이 속해 있는 장로교회는 장로교회 본질에서 좀 많이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당회에 집중되어 있는 권한을 제직회와 함께 분담하여야 합니다.

한국 장로교회에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당회로의 권력 집중입니다. 정책과 예산을 세우는 것도 당회가 주도적으로 하고, 정책과 예산을 따라 그 일을 집행하는 것도 당회원들이 앞장 서서 주도적으로 하고, 그것을 평가하고 감사하는 일도 당회가 주도적으로 다 합니다. 제직회와 공동의회가 있지 않느냐라고 하시겠지만 솔직히 대개 다 형식적입니다. 그것은 우리 동안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작을 때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정치를 하면 교회의 일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동안교회와 같이 자리가 잡힌 교회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당회에서 다 처리하는 것은 장점에 비해 단점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당회가 정책과 예산을 세우는 일을 하고 그 정책과 예산을 집행하는 실제적인 일에서 손을 떼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같은 일은 안수집사님들을 중심으로 한 제직회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당회원이 제직회 부장까지 다 맡아서 하고 있는데 제직회 부장은 안수집사님들과 권사님들 선에서 맡는 것이 좋습니다.

제직회는 당회가 결정한 정책과 예산의 범위 안에서 맡겨진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일을 수행하는 동안 생겨나는 문제들을 당회에 건의할 수는 있으나 스스로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결정은 당회가 하고 집행은 제직회가 해서 결정과 집행을 분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당회는 제직회가 수행한 일을 감사하고 평가해야 합니다. 잘 했으면 잘 했다 칭찬하고 격려하며 잘못했으면 책망하고 꾸짖어야 합니다. 교회에는 그와 같은 어른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 어른의 역할은 당회가 해야 합니다.

당회원이 제직회 부장까지 되어 교회의 재정을 결제하고 집행하면서 자신들이 한 일을 감사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당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없는 교회와 같이 권위가 없고 무질서한 교회가 된 것입니다.

지금은 당회원들이 일을 처리하고 그것을 제직회에 보고하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회보다 제직회가 더 상회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제직들이 일을 처리하고 그것을 당회에 보고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당회가 상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들은 지금 식대로 하면서도 제직회가 상회처럼 되지 않도록 해야 했기 때문에 제직회를 그저 가하면 예하시오만 하는 유명무실한 조직으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전에는 사람이 없어서 모든 일을 당회원들이 다 해야 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젊고 유능한 일꾼들이 교회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들에게 과감히 일을 맡겨야만 합니다. 당회의 많은 일을 저들에게 위임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저들을 믿음으로 지도하고 감독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교회, 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
실제로 동안교회의 장로들은 제직회 부장을 겸하지 못하게 되었다. 제직회 부장이 되지 못했다는 것은 재정에 대한 결재권을 안수집사나 권사들에게 넘겨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에 대한 저항(?)은 상상 이상이었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목회 못하는 줄 알았었다. 그 때의 훈장 같은 상처가 흔적처럼 아직도 내 몸에 남아 있다.)

둘째, 장로님들도 재신임을 물어야만 합니다.

목사도 재신임을 물어야 하고 장로도 재신임을 물어야 합니다. 재신임을 물으면 그로 인한 어느 정도의 혼란과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에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건강한 혼란과 갈등입니다. 무조건 안정되고 보장이 된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무조건적인 안정과 보장이 오히려 물을 썩게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목회직과 장로직이 보장됨으로써 교회의 물이 썩어가고 있습니다. 목사든 장로든 몇 년 동안 일을 했으면 하나님을 대신해서 교인들에게 평가를 받아야만 합니다.

한 번 위임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면 은퇴할 때까지 시무한다는 것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교만해지고 게을러지기 쉬운 죄인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옳지 않은 제도요 방법입니다. 목사도 재신임을 묻고, 장로도 재신임을 물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안식년도 지켜야 합니다.

재신임을 묻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문제가 생긴 목사와 장로를 잘라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목적 중의 하나일 수는 있지만 가장 중요한 목적은 아닙니다. 재신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예방입니다. 재신임제도가 있으면 만약의 경우 불신임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목사와 장로는 아무래도 긴장하게 되고 조심하게 될 것입니다. 재신임을 받기 위해 정신을 차리고 일하는 것과 재신임의 부담을 가지지 않고 일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그 동안 목사와 장로의 재신임을 묻지 않음으로 해서 대부분의 목사와 장로들의 경우 긴장감이 풀려 있고, 또한 월권을 하고 있습니다. 함부로 교인들 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를 나쁘게 만들고 있습니다.

셋째, 정확하고 깨끗한 은퇴를 해야 합니다.

장로는 봉사직이지 명예직이 아닙니다. 시무가 끝났으면 목사든 장로든 일반 신도의 자리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은퇴 장로님 방을 만들어 드리자는 안도 있었지만 제가 반대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원로목사님 방이 없습니다. 원로목사님 방이 없다면 원로 은퇴 장로님 방도 없어야 합니다.

말로는 은퇴 장로님 방을 만들어드리자는 안에 담임목사가 반대한다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 그것은 얼마나 힘들고 부담이 되는 일인지 모릅니다. 잘못하면 그 때문에 큰 문제가 생겨서 교회에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 부담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자꾸 사람을 위하는 쪽으로 가게 되면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그 부담을 가지고 반대를 하였던 것입니다.

목사와 장로는 시무할 때에 한해서 목사와 장로인 것입니다. 시무가 끝나면 이름은 목사와 장로로 계속 불려질 수 있지만 모든 일은 정확히 끝을 내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한국교회에는 정확한 의미의 은퇴가 없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목사든 장로든 은퇴한 후에도 은퇴 전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영향력을 얼마든지 행사할 수 있습니다.

목사든 장로든 끝을 낼 줄 알아야 합니다. 은퇴를 한 후에도 손을 뗄 줄 모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교만입니다. 자기가 없으면 교회가 안 될 것 같은 마음 때문에 손을 떼지 못하는 것인데 그것은 교만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없어도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과 좋은 교회를 만들어 가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정해야 합니다.

저는 명예권사 제도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직분은 명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무가 끝나면 그냥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호칭은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으로 불릴 수 있지만 그 자리는 교인의 자리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직분이 계급화 되고 그 계급에 따라 특권층화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막지 않으면 교회는 절대적으로 부패합니다. 생명을 걸고 막아야 합니다.

담임목사인 저도 목회의 많은 부분을 다른 교역자들에게 이양하려고 합니다. 장로님들도 젊은 집사님들에게 교회 살림을 이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장로님들은 담임목사와 함께 더 큰 일을 해야 합니다. 본문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모세가 혼자서 모든 일을 담당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담임목사와 장로는 교회의 어른이 되어야만 합니다.

담임고사와 장로님들은 앞으로 교회 안의 일은 부교역자와 집사님들에게 맡겨두고 교회 밖의 일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저와 함께 코스타도 좀 가보시고 다른 교회도 방문해보고 중요한 세미나에도 참여하여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안목을 높여야만 합니다.

밤낮 교회 안에서 돈주머니만 붙잡고 있으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답답한 교회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세가 혼자서 다 하던 일을 과감히 천부장과 백부장에게 맡기고 더 중요한 일에 마음과 시간을 썼던 것처럼 한국 교회의 당회원들도 그와 같이하여 우리가 섬기는 교회를 정말 민주적인 장로교회로 만들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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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인 교회(3) 출애굽기 18:13-27)

(
생사를 건 교회개혁 149페이지 부터 155페이지)

(98
년도의 설교였다. 그 때 48살 이었다. 그때로부터 꼭 2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내 생각은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내 생각대로 한국 교회가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내가 설교한대로 목회하고 싶었다. 그것이 결국 2001년 높은 뜻 숭의교회 개척으로 이어졌고, 나는 높은 뜻 교회에서 내가 생각하였던 목회를 실험해 보고 실천해 볼 수 있었다. 많이 부족했지만)


출처 : 삶과 신앙
글쓴이 : 스티그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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