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만·안봉근 재판서 검찰 진술조서 공개
이헌수 “5만원권 100장 묶음으로 전달”
지난해 ‘국정농단’ 의혹에 잠정중단…두달 뒤 재개
이 “안봉근, 대통령이 추석 앞두고 힘들다며 요구”
안 “국정원이 대통령 환심사려 한 것”
최순실 특활비 상납 관여 메모도 장시호가 제출
이헌수 “5만원권 100장 묶음으로 전달”
지난해 ‘국정농단’ 의혹에 잠정중단…두달 뒤 재개
이 “안봉근, 대통령이 추석 앞두고 힘들다며 요구”
안 “국정원이 대통령 환심사려 한 것”
최순실 특활비 상납 관여 메모도 장시호가 제출
최순실이 메모한 ‘문고리 3인방' 격려금 내역. 메모에는 BH라는 문구 옆에 J(정호성), Lee(이재만), An(안봉근)을 뜻하는 이니셜과 함께 지급 액수 내역이 적혀있다. ▶J(정호성) 13년 3,000만원, 14년 5,000만원, 15년 5,000만원(합계 1억 3,000만 원) ▶Lee(이재만) 정호성과 같다는 의미에서 ‘〃’ ▶An(안봉근) 13년 3,000만원, 14년 5,000만원, 15년 3,000만원(합계 1억 1,000만 원) ▶남은 금액 1억 2,000만 원 ‘Keep’(보관)이라고 적혀있다. 서울중앙지검 제공.
국가정보원이 청와대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구체적 경위가 9일 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 재판에서 공개됐다. 국정농단 의혹이 터지면서 잠정중단됐던 특활비 상납이 청와대 요구로 재개됐고, 2억원을 추가상납받은 박 전 대통령이 흡족한 반응을 보였다는 취지의 진술도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이영훈) 심리로 9일 열린 두 전 비서관 재판에서 검찰은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의 검찰 진술조서를 공개했다. 이 전 실장은 특활비 ‘전달책’ 역할을 했다.
그의 검찰 진술을 종합하면, 이 전 실장은 5만원권 100장을 한 묶음으로 만든 뒤, 가방에 5000만원 덩어리 2개를 넣어 매달 1억원을 준비했다. 2015년 추석과 2016년 설 연휴 땐 1억원을 추가해 모두 2억원을 마련했다. 이후 그는 감사원 근처, 헌법재판소 부근, 청와대 연무관 옆 골목길 등에서 안 전 비서관 등을 접선했다. 국정원 차량으로 해당 장소로 이동해 안 전 비서관 차량에 동승했고, 주변을 한 바퀴 돈 뒤 안 전 비서관이 청와대로 돌아가면 자신은 다시 국정원 차량으로 갈아탔다는 게 이 전 실장 진술이다. 안 전 비서관 역시 “연무관 옆길은 일반인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방식으로 2013년 5월부터 2016년 7월까지 매달 5000만원~2억원의 국정원 특활비가 청와대로 건너간 것으로 조사됐다.
2016년 7월 국정농단 의혹이 제기되면서 특활비 상납은 잠정중단 됐지만, 두달 뒤 다시 재개됐다. 이 전 실장은 2016년 9월께 안 전 비서관이 “대통령이 추석을 앞두고 금전적으로 힘들어한다”고 전해 정 전 비서관을 만나 2억원을 전달했다고 한다. 자금 전달 뒤 안 전 비서관이 전화와 “브이아이피(VIP·대통령)께서 흡족하면서 ‘우리 사정을 국정원에서 걱정해주는 거냐’고 했다”고 말했다고도 덧붙였다. 반면 안 전 비서관은 추가상납은 국정원 아이디어였다고 했다. 국정원 쪽에서 “명절인데 브이아이피께 해주고 싶은데 어떡하면 좋겠냐”고 물어왔고, 이에 자신이 “(대통령이) 금일봉이라든지 많이 쓰실 것 같다”고 답했다는 게 안 전 비서관 검찰 진술이다. 그는 또 “국정원에서 대통령의 환심을 사려고 2억원을 건넨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검찰은 2억원 뇌물수수 혐의로 이번주 두 전 비서관을 추가기소할 계획이다.
최순실(62)씨가 특활비 상납 관리에 관여했다는 증거로 검찰이 제출한 최씨 자필 메모는 조카 장시호씨가 검찰에 임의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메모에는 Lee(이재만), An(안봉근), J(정호성) 등 세 비서관 이름을 가리키는 표시와 함께 날짜와 금액이 적혀 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세 비서관에게 격려금 명목으로 국정원 상납금을 지급한 내역을 최씨가 정리했다고 파악하고 있다. 정 전 비서관 역시 검찰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서 받은 액수가 최씨 메모에 그대로 적혀 있었다. 최씨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매우 당황스러웠다”고 진술했다. 또 메모에 적힌 글씨체가 대통령 연설문 수정 때 본 최씨 글씨체와 일치한다고도 했다.
이 전 실장은 안 전 비서관에게 개별적으로 국정원 자금을 건넨 경위도 밝혔다. 안 전 비서관이 2013년 5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이 전 실장으로부터 8차례에 걸쳐 1350만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게 검찰 조사 결과다. 이 전 실장은 검찰조사에서 “대통령이 국정원 업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잘 건의해주고, 보안정보국에서 안좋은 말을 들으면 (개인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므로 도와달라는 취지였다”고 진술했다. 매번 50~300만원씩 전달한 이유에 대해선 “부담스러운 액수를 주기는 조심스러웠다. 그 정도 액수가 적당하다고 봤다”고 했다. 검찰은 또 이 전 실장이 한차례 사표를 냈지만 박 전 대통령의 반려로 복귀한 적이 있다고 밝히며 이같은 경험 때문에 안 전 비서관에게 뇌물을 공여했다고 주장했다. 안 전 비서관은 이날 법정에서 “당시에는 식사하고 용돈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공금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