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미국 콜로라도대학 2학년생 닉 라모스는 새 학기 등록금 1만4309달러를 모조리 1달러짜리 지폐와 1센트짜리 동전으로 바꿔 학교에 냈다. 이틀간 여러 은행을 돌아다니며 돈을 바꿨는데, 무게가 15㎏이나 됐다고 한다. 라모스는 등록금을 크게 올린 것에 항의하려고 이런 일을 벌였다. 학교 쪽에서는 직원 세 명을 동원해 한 시간을 들여 라모스가 낸 돈을 세야 했다.
다량의 동전으로 돈을 내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일은 등록금이나 통행료 인상, 벌금이나 세금 부과 등에 항의하려고 자주 쓰는 방식이다. 지난해 1월 미국 버지니아주 러셀 카운티에 사는 닉 스태퍼드는 자동차 2대의 취득세로 내려고 자동차국에 1센트짜리 동전 30만개를 손수레 다섯 대에 나눠 싣고 갔다. 돈은 무게가 725㎏에 이르렀다.
지폐가 널리 사용되면서 한때는 ‘돈 세는 일’이 은행 창구 직원 업무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외국에선 업무 효율성을 높이려고 지폐 계수기를 개발해 썼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산을 써보았지만, 헌 돈을 셀 때 오차가 심해 실용적이지 못했다. 국산 지폐 계수기는 최우순씨가 1983년 발명했다. 처음엔 책상 크기였던 것을 개량해 휴대용으로 만들었는데, 1초에 최대 25장을 셀 수 있었다. 이 발명품으로 최씨는 1985년 전국우수발명품전시회에서 세계지식재산권기구 사무총장상을 탔다. 정부는 1988년 지폐 계수기를 1차 국산화 대상 품목으로 선정했다. 신성전자가 상업화에 적극 나섰다. 한국기계연구원은 1995년에 지폐를 100장씩 묶어주는 기계도 개발했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재직 시절, 그의 자녀가 10억원대의 서울 강남 아파트를 사면서 대금을 전액 현금으로 치렀다고 한다. 요즘 계수기는 1분에 약 1천장을 센다. 5만원짜리였어도 최소 20분은 걸렸겠다. 자금 출처를 숨기려는 뜻이었음은 물어볼 필요도 없겠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