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운용 혐의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66)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79)이 공모했다고 인정했다. 공모를 인정하지 않은 1심 판단이 항소심에서 뒤바뀐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조영철 부장판사)는 23일 김 전 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등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운용하라고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등을 받고 있다.
재판부는 좌편향돼있는 문화예술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박 전 대통령 인식이 정책기조가 돼 김 전 실장이 부하직원들에게 구체적인 지원배제 계획을 지시했고 실행까지 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 전 실장은 지원배제 방안 마련을 지시했고 그 내용은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며 “대통령도 지원배제를 포괄적으로 승인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대통령의 지위를 더해 보면 박 전 대통령은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범행에 관해 김 전 실장 등과 순차적으로 의사의 결합을 이뤄 공모관계를 형성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며 “단순히 박 전 대통령이 바람직한 정책을 선언한 것에 그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국정 최고책임자인 자신의 직권을 남용하는 동시에 김 전 실장 등의 직권남용 행위에 공모한 것으로서 공모공동정범의 책임이 있다”고 했다.
앞서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황병헌 부장판사)는 보수주의를 표방해 당선된 대통령이 좌파에 대한 지원 축소를 표방한 것이므로 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고, 박 전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실행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실장의 공모를 인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