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관련자 모두 유죄 선고>
조윤선 1심 무죄 뒤집고 징역 2년 법정구속
특검팀 ‘청 캐비넷 문건’ 제출이 유죄 결정타
김기춘 징역 4년, 1심보다 형량 1년 늘어
1심에서 무죄 판단 대부분 유죄로 뒤집혀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블랙리스트' 사건 항고심 선고 공판이 열린 23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징역 2년으로 법정구속된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왼쪽)과 징역 4년을 받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각각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부터 청와대 비서관까지 예외는 없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자들에게 어떤 면죄부도 주어지지 않았다.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조영철)는 23일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임직원 등에게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이나 단체의 지원을 배제하도록 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로 기소된 김기춘(79)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징역 4년을, 조윤선(5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1심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황병헌)가 지난해 7월 김 전 실장에게 징역 3년을, 조 전 장관의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것보다 무거운 형이다. 풀려난 지 180일 만에 이날 다시 법정구속된 조 전 장관은 “할 말이 있느냐”는 재판부 질문에 고개를 가로젓고 구치소로 향했다.
조 전 장관의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 무죄가 유죄로 바뀌게 된 결정타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심 재판부에 제출한 ‘청와대 캐비닛 문건’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정무수석실·민정수석실 캐비닛에 보관된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블랙리스트 등의 문건을 발견해 이를 공개한 바 있다. 조 전 장관은 2014년 6월~2015년 5월 정무수석으로 근무했는데, 정무수석실에서 발견된 2015년 3월7일 실수비 회의(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결과 문건 중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 관련 지시사항 부분에 ‘종북 생태계 척결방안 마련. 정부지원 차단’ 등이, 2015년 3월9일 작성된 ‘비서실장 지시사항 이행 및 대책안’에는 ‘정부위원회, 공공기관임원, 심사위원 배제’ 등이 기재돼 있었다. 재판부는 “이 두 문건은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을 종북 척결의 계기로 삼으라는 2015년 3월7일 실수비회의 비서실장 지시사항 관련한 정무수석실의 지원배제 검토, 논의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와 같은 검토가 피고인의 지시나 승인 없이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앞서 1심은 “박준우 전 정무수석의 업무 인수인계와 신동철 당시 정무수석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의 업무보고만으로 블랙리스트를 자신의 업무로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인수인계와 업무보고로 “정무수석실의 지원배제에 관한 업무를 인식하고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다르게 판단했다.
김 전 실장의 징역형이 1심보다 1년 늘어난 이유는 강요 혐의를 제외한 1심 무죄 판단이 대부분 유죄로 뒤집혔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김 전 실장이 문체부 1급 공무원 3명의 사직을 강요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에 대해 “지원배제 실행에 소극적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유 없이 자의적으로 이뤄진 위법한 행위”라며 유죄로 판단했다. 또 1심에서 김 전 비서실장이 직접 개입하지 않았거나 퇴임 뒤 벌어진 일이라며 무죄로 판단한 일부 지원배제 혐의도 “지원배제 범행은 사업, 주체 불문하고 모두 포괄일죄(여러 행위를 한가지 범죄로 판단하는 것)에 해당된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좌파 배제 국정기조’를 내세운 박 전 대통령의 공모까지 인정한 재판부는 “정부를 반대하는 활동을 하거나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개인, 단체에 대해 지원배제 (…) 하는 위법행위를 국가 권력 최고 정점에 있는 대통령과 보좌진들이 직접 나서 조직적으로 (…) 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문화예술에 대한 편가르기와 차별은 용인될 수 없다”고 엄벌 이유를 설명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